‘동지’는 겨울 동(冬), 이를 지(至)로, 겨울의 중심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쓰인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로 예부터 세시명절로 여겨왔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동지를 기준으로 해가 바뀌니 실제 이날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 이러한 이유로 옛 문헌과 기록엔 동짓날을 한 해의 시작, 즉 ‘아세(亞歲)’라 했으며, ‘작은 설’이라 하였다. 동지가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에 들면 노동지라 하였다.첫 번째 드는 애동지는 음력 11월 10일이 채 못되어 드는 동지이다. 애기동지, 아동지라고도 불리는데, 이날은 팥죽
계급과 성별에 관하여 평등함을 설하신 부처님께서 비구니 승가의 조직을 미루게 된 것은 당시 인도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문제와 비구 승가 내부의 반대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 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승가는 재가자의 보시에 의해 유지되며 그 보시자의 대부분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경시하는 바라문 전통에 물들어 있다는 점이다. 여성 차별을 넘어서 여성 멸시적인 당시의 사회 통념에서 볼 때 여성을 그들의 정신적인 종교 지도자로 받아들이고 예경하는 것은 쉽게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고 여성의 출가는 남성 중심의 사회기반을 흔드는
차도가(茶道家)에서 어떤 스승의 계보를 잇는지 어떤 가법(家法)을 잇는지가 중요하다. 수많은 차도가가 있어서 차에 대해서는 어디서든 배워도 좋다. 배우는데 제약이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차법(茶法)과 차도정신(茶道情神)을 이야기할 때는 정확히 자신의 스승을 밝혀야 한다. 티베트 불교에서도 기본스승이 있고 그 외에 다른 스승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법통이 어디로 전해져왔고 어디로 전했는지를 정확히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티소믈리에를 했든가 차예사를 했든가간에 아니면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전공을 했거나 차인회에서 교양대학(원)을 다
소설(小雪)이 지나고 이어서 오는 대설(大雪)은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절기는 중국 화북지방(華北地方)의 계절적 특징을 반영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대설 절기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고 볼 수는 없다. 절기상 눈이 많이 내리는 대설(大雪)은 음력으로는 11월이다. 양력으로는 12월 7일이나 8일 무렵에 해당하며 음력 11월에 드는 대설과 동지(冬至) 그리고 음력 12월의 소한(小寒), 대한(大寒)까지를 겨울이라 한다.음력 11월은 동지와 함께 한겨울을 알리는 절기로 농부들에게 있어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보위에 오른 수양대군의 계유정란 소식을 듣고 3일 동안 통곡하고 유서를 모두 불태운 뒤, 설악산 오세암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법명을 ‘높고 눈 덮인 산’이라는 의미의 설잠(雪岑)이라 하였다. 이후 그는 전국을 유랑하고 은거하면서 잘못된 시대적 상황에 대해 울분을 토하고 그것을 선심(禪心)으로 표출하였다.시구는 언제나 한가로움 속에서 얻고 詩句每因閑裏得선심은 거의 다 고요함 속에서 끌리네. 禪心多向靜中牽청산은 억지로 어리석은 이를 보고 웃고 靑山强對癡然笑명월은 누가 나누어 작은
‘직지심경’으로 알려진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불조직지심체요절》을 저술한 백운경한(1298~1375)은 1351년 53세 때 원나라에 들어가 지공화상에게 법을 묻고, 최후에 하무산 천호암에 주석하는 임제종의 거장 석옥청공(1272∼1352)을 찾아가 무념무심의 진종을 배우고 여래의 더없는 묘도(妙道)를 깨달았다. 경한의 무심무아의 깨달음의 경지는 ‘흰 구름’이라는 상징을 통해 잘 표현되고 있다.흐르는 물은 산에서 흘러도 산을 그리워하지 않고 流水出山無戀志흰 구름은 골짜기를 감돌아도 또한 무심하네 白雲歸洞亦無心이 한 몸 가고 옴도
다솔사 최범술(崔凡述) 스님을 존경하는 차인들이 참 많다. 그러나 효당 선생을 처음 본 사람들 가운데는 남루한 양복과 땅딸보 대머리 행색으로 무섭게 보는 이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효당 최범술의 이름을 모르는 차인도 있다. 하지만, 효당은 진주 아니 우리나라 차계를 대표하는 큰 인물로 차계(茶界)의 종장(宗匠)이나 중시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다. 차계에서 전라도 무등산에 의제 허백련이 있다면 경상도 봉명산 다솔사에 효당 최범술이 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초의 스님의 《동다송》 이래로 근세 한국 최고의 차 이론서인 효당 스
부처님께서는 왜 비구와 비구니가 법랍 순으로 앉는 것을 거부하셨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있지만 먼저 승가의 기능 유지 차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승가의 질서 유지에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법랍에 따라 좌차(座次)를 정하는 일이다. 법랍은 우안거(3개월)를 마쳤을 때 1세가 된다. 승가에서는 출가 이전의 세속 나이는 무시하고 장유(長幼)를 법랍으로 정하여 자리를 배정하고 승가의 분배물을 차례대로 나누는 전통이 있다. 그러나 비구니 승가가 생겨남으로 인해 비구와 비구니가 동일한 장소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상황이 생기게
중3 때 효당 찾아 다솔사 방문반야심경 접하고 마음 병 치유효당 수제자로 12년 동안 공부15기까지 1천여 명 제자 배출차의 나라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중국과 일본을 떠올린다. 물론 인도나 스리랑카도 있고 대만도 있다. 하지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우리나라는 아닌 것은 비슷할 듯하다. 사대주의나 친일과는 별개로, 차의 종주국은 중국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또한 차인이라면 영화 속에 나오는 기모노를 입고 말차를 만드는 일본 차인들의 모습이 뇌리에 박힌 듯이 늘 떠오른다. 아울러, 중국의 차문화가 아편전쟁과 공산화 그리
첫눈 내린다는 스무 번째 절기소설에 부는 바람은 ‘손돌바람’북(北)방은 수(水), 검은색, 짠맛‘수’는 자유자재 반야지혜 상징24절기 중 스무 번째 절기는 이날 첫눈이 내린다고 하는 소설(小雪)이다. 옛 어르신들 말씀에 날씨가 추워야 보리농사가 잘되기 때문에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고 했다. 또 얇은 옷에서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니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고도 했다. 소설이 지나면 날씨가 급강하하면서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겨울에 든 것은 아니고 아직 따뜻한 햇살이 비치므로 소춘(小春)이라고 부
7멸쟁법의 일곱 번째는 여초복지(如草覆地)로 마치 풀처럼 바닥에 엎드리듯이 서로 참회를 한다는 뜻이다. 승가 구성원 전원이 논쟁에 의하여 두 파벌이 생기고 서로 악구(惡口)를 범하게 되면 승가가 제대로 운영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때 양쪽이 서로 참회를 하여 상대방의 죄를 면하게 해주는 것이 여초복지이다.이상으로 비구계에 대한 이야기는 끝났다. 비구니계를 다루기에 앞서 잠깐 한숨 돌리는 의미에서 잡설을 조금 하려고 한다.승려라면 누구나 이러한 의문을 가져 보았을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 만들어 진 계율을 현시대에 지켜야 할까?” 혹
부휴선수(1543~1615)는 ‘만일 자식을 얻으면 출가시키겠다’고 서원하고 기도를 올렸던 모친이 신승으로부터 구슬을 받는 태몽을 꾸고 태어났다고 한다. 17세 때 지리산 영원사 신명 장로에게 출가하여 부용영관의 심법을 이어 받았다. 문자를 떠난 격외선을 배워 참구하였던 선사는 도는 다른데 있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 있으니 항상 조주선 참구를 강조하였다.도는 다른 데 있지 않고 오직 내게 있으니 道不在他唯在我모름지기 멀리서 구하거나 하늘에서 구하지 말라 不須求遠不求天마음 거두고 고요히 산창에 앉아서 收心靜坐山窓下밤낮으로 항상 조주선을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는 입동(立冬)이다. 가을이 끝나가고, 긴 겨울을 날 채비를 해야 하는 시기다. 입동 전후 5일 내외에 김장을 하면 맛있다고 하지만 요즘이야 김치냉장고가 좋아진 환경 덕분에 개의치 않고 김장을 한다. 입동에 즈음하여 예전에는 음력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하여 곳간과 마루 외양간에서 고사를 지냈다. 이때 농사철에 애를 쓴 소에게도 고사 음식을 가져다주며 이웃들 간에 나누어 먹었다.입동에는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미풍양속도 있었다. 치계미란 입동, 동지, 제석(除夕)날에 일정 연령
세간이든 출세간이든 사람이 사는 곳엔 분쟁이 끊이지 않는 법이고 이 쟁사(諍事)를 없애기 위하여 세간에는 법을 비롯한 제반 규범이 있고 출세간에는 계율이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서부터인지 승려 사회에서도 계율이나 종헌 종법보다는 사회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양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종단의 종헌 종법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회법으로 먼저 해결하려는 행위인데 이런 사람은 종헌 종법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종단의 위상을 짓밟는 사람이라 종도라 할 수도 없고 승려의 자질이 의심되는 사람이
‘이효리’ 덕택에 더 유명해진 제주도 애월쪽으로 찾아가면 해심재라는 곳이 있다. 찻집이기도 하고 행복한 쉼터라고 하기도 하는 문화공간이다. 제주도의 차인들과 몇 번 찾아갔는데 시간을 못 맞춰 결국 밖에서만 살펴보곤 말았다. 결국 들어가서 차 한잔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곳이다.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초등학교를 일찍 명예퇴직한 이완국 선생님은 웃음치료 및 스카프 제작으로 유명한 행복한 쉼터의 대표이다. 애월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차한잔의 여유와 그리고 행복을 전해왔다. 주변의 육지것들(외지인들을 부르는 제주도 속어) 조차도 매우 존경하
서산대사의 제자로 자비덕화가 출중했던 청매인오(1548~1623)는 임진왜란 때 의승장으로 출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 후 선사는 변산 월명암, 지리산 연곡사, 실상사, 영원사 등에서 수행 정진했으며, 도솔암을 세우고 ‘청매문파’를 열어 선풍을 크게 떨쳤다. 청매선사는 보조국사 지눌이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참선수행 정진에 힘쓰던 시절의 감회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땔나무 해오고 물 길어 오는 일 외엔 하는 일 없네 般柴運水野情慵참 나를 찾아 현묘한 도리 참구에 힘쓸 뿐 參究玄關性自空날마다 변함없이 소나무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