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별로 풀어가는
천연염색 이야기 ⑮ – 대설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고 대설

새해 맞이할 준비하는 농한기

신체상 장기로는 대장과 방광

수의 기운으로 맛으로는 짠맛

문양염.
문양염.

 

소설(小雪)이 지나고 이어서 오는 대설(大雪)은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절기는 중국 화북지방(華北地方)의 계절적 특징을 반영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대설 절기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고 볼 수는 없다. 절기상 눈이 많이 내리는 대설(大雪)은 음력으로는 11월이다. 양력으로는 12월 7일이나 8일 무렵에 해당하며 음력 11월에 드는 대설과 동지(冬至) 그리고 음력 12월의 소한(小寒), 대한(大寒)까지를 겨울이라 한다.

얼음염색법.
얼음염색법.

음력 11월은 동지와 함께 한겨울을 알리는 절기로 농부들에게 있어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할 준비하는 농한기(農閑期)이기도 하다. 대설은 자월(子月)이다. 자월은 한겨울에 해당하며 농사일이 한가한 시기이고 가을에 수확한 곡식들이 창고에 가득 쌓여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먹을 것 걱정은 하지 않아도 풍성한 시기이다. 대설 시기에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눈과 관련해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있다. 눈이 많이 내리면 눈이 보리를 덮어 동해(凍害)를 적게 입어 보리 풍년이 든다는 말이다.

한겨울에 들어선 자월이다. 정북방에 가까워졌다. 어둠이다. 한가하다. 자월을 상징하는 것은 쥐다. 쥐는 겨울날 창고 곡식들이 가득한 곳에서 생활한다. 하지만 활동 범위가 넓지 않은 것이 쥐의 특성이다. 쥐는 인류의 역사와 거의 궤를 같이할 정도로 오래전에 지구상에 등장하여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공존하고 있다. 곳간의 창고에서 곡식을 훔쳐먹고 질병을 퍼트리는 등 우리의 삶에 해악을 끼치는 동물이지만, 상징성은 풍요와 다산, 근면과 성실, 지혜와 재치를 가진 영물로 취급되고 있다.

어린 시절 시골집 천장에 쥐가 우르르 몰려다니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엄청 많은 무리가 우르르하는 소리에 천정을 한번 쾅 하고 쳐 주거나 막대기로 탁탁 몇 번 두드리면 조용해지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처럼 쥐는 무슨 일이 생기면 숨는다. 숨는 데는 선수다. 뭐 하다가 두려움을 느끼면 조용해진다. 보통 쥐의 상징성은 어둠이지만 또 다른 쥐가 있다. 박쥐다. 역시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보통 쥐와는 다르게 비행을 할 수 있다. 박쥐는 서양에서는 마녀의 상징이나 악마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으나 동양에서는 오히려 오복(五福)의 상징으로서 경사와 행운을 나타내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채회염.
채회염.

북쪽 방향을 상징하며 흑색을 상징하는 천간 임수(壬水)는 제비를 상징하며 계수(癸水)는 박쥐를 상징한다고 《사주첩경》 이라는 책에 나와 있듯이 각 방향마다 상징하는 동물들과 특성들을 비교해보면 사계절이 품고 있는 자연의 변화하는 이치와 동물과 식물 역시 계절에 따라 품고 있는 성향들이 다르다. 천연염색을 하다 보면 바로 채취한 염재와 묵은 염재의 색상 발현은 계절에 따라 다르게 보이듯이 말이다. 뱀은 여름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지만 겨울이 되면 꼼짝 못한다. 반대로 쥐는 겨울에 왕성한 활동을 하지만 한여름 태양 아래 나와 있으면 갈 곳을 잃어버리고 안절부절 못한다.

자월은 춥다. 어둡다. 세상 밖에서 인간관계를 이어 나가는 사회생활은 밝은 낮에 밖에서 이루어진다. 조용한 어두움 그 속에 생각이 많아지고 지혜가 생겨난다.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십이지 동물 가운데 포유류(단궁류)는 9마리이며 석형류 2마리(파충류인 뱀과 조류인 닭)와 상상의 동물인 용이 1마리 들어 있다. 자(子), 즉 쥐를 맨 앞에 놓은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옥황상제가 지상의 동물들에게 지위를 내리고자 고심하다가, 드디어 천상의 문에 맨 먼저 도달한 동물에게 높은 벼슬을 내리겠다고 선포하였다. 여러 동물이 서로 앞을 다투며 경쟁하였는데, 우직하며 참을성이 많은 소가 절치부심 준비를 한 끝에 거의 문 앞에 도착하였다. 그 순간 약삭빠른 쥐가 소의 등에 올라타 있다가 폴짝 뛰어내려 1등을 차지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쥐가 12간지의 첫 번째 동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간파하고 이를 극복할 치밀한 꾀를 찾아낸 덕분이었다.

홍화염.
홍화염.

 

역학에서 쥐를 뜻하는 단어인 ‘서’(鼠) 대신에 ‘자’(子)를 쓰게 된 것은 쥐가 자손을 번창하는 다산의 동물이어서 잉태할 잉(孕)에서 새끼칠 자(子)로 대체하였기 때문이다. 23시에서 새벽 1시를 이르는 자시에는 하늘이 열린다고 하여 천개어자(天開於子)라 한다. 천개어자(天開於子) 지벽어축(地闢於丑) 인생어인(人生於寅)이라 하여 자시(子時)에 하늘이 열리고 축시(丑時)에 땅이 움직이며 인시(寅時)에 사람이 일어난다고 한다. 쥐를 처음에 놓는 것은 종자를 의미하며 쥐는 태어나면서 앞발톱이 4개 자라면서 뒷발톱이 5개가 된다. 발달과정에서 발톱으로 음(陰)에서 양(陽)으로 변하는 모양을 보인다.

에코염.
에코염.

검은색을 만드는 이치도 음에서 양으로 변하는 이치와 같다. 색과 색을 더할수록 깊어지는 검은 색감은 응축된 종자의 씨앗과 닮았다. 북쪽의 여름철이 시원하다면 북쪽의 겨울철은 더 추워진다. 모든 색을 더하면 검은색이 만들어진다. 검은색의 자월(子月)은 지혜를 상징한다. 밤에는 보이는 것보다 소리에 민감해지니 귀를 상징한다. 방향성으로는 정지된 상태이며 신체 부위로는 하체 다리 쪽을 말한다. 신체상 장기로는 대장과 방광을 말하며 수의 기운으로 맛으로는 짠맛이다.

신장 방광인 수(水) 기운을 좋아지게 하는 맛은 짠맛이며, 신장 방광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하는 맛은 화(火)의 붉은색인 쓴맛과 중앙(中央)의 황색 토(土)인 단맛이다. 요즘 사람들은 짠맛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인해서 짠맛인 소금은 아주 많이 줄이면서 상대적으로 단맛, 특히 설탕과 쓴맛인 커피는 매우 많이 먹고 있다. 단맛으로 황색 토(土)의 기운 비장, 위장과 붉은색 쓴맛으로 화(火)의 기운 심장, 소장은 좋아지게 하면서 상대적으로 짠맛의 검은색 수(水)의 기운 신장, 방광의 기운을 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강계령작.
강계령작.

 

단맛과 쓴맛은 신장 방광이 관장하는 장부, 방광 자궁 전립선 뼈(골다공증 치아), 허리 뒷골, 귀(이명 청력) 등의 기운을 약하게 만든다. 검은색 수(水)의 짠맛의 음식이 신장을 좋아지게 하지만 요즘 짜게 먹으면 안된다 하니 싱겁게 먹더라도 신장 방광의 기운이 좋아지고 싶으면 상대적으로 붉은색 화(火)의 쓴맛 황색 토(土)의 단맛의 음식을 덜 먹어야 좋지 않겠나 싶다. 충분한 휴식을 위해 자연의 이치에 맞게 몸은 밤에 쉬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겨울에 잘 쉬어야 한다. 계절적으로 겨울은 신장이 더욱 피곤해지는 시기이다. 10시 이전에 잠을 자는 것이 신장과 방광을 좋게 하는 보약이다.

눈사람염색법.
눈사람염색법.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에 대한 《한국민족대백과사전》의 설명을 살펴보자. 사천왕들은 고대 인도의 신이었다. 본래는 귀신들의 왕이었으며, 후에 부처의 제자가 되어 부처와 불법을 지키는 신장(神將)이 된 것이다. 불교의 많은 신(神) 중에서 지위가 가장 낮아 수미산 중턱에 살고 있으며 제석천을 섬긴다. 사천왕들은 여러 부하를 두고 있는데 이 부하들이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선악을 살핀 후 사천왕에게 보고하고, 다시 사천왕들이 제석천에게 보고한다. 매월 8일에는 사천왕의 사자(使者)들이, 14일에는 태자(太子)가 사천왕에게 보고하며, 15일에는 이를 종합하여 사천왕 자신이 제석천에게 보고한다고 알려져 있다. 사천왕들은 원래 귀족의 옷을 입고 있었으나, 우리나라에서 호국적인 성격으로 변하여 갑옷과 투구를 쓴 장수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북방의 다문천왕은 수미산 북쪽 수정타에 사는데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웃고 있으며, 비파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부처의 설법을 빠짐없이 다 듣는다고 해서 다문(多聞)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힌두 신화에 나오는 쿠베라는 신이었다고 하며, 불교에 귀의한 후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천왕이 되었다고 한다. 나찰과 야차가 그의 부하이다. 야차는 숲에 사는 무서운 귀신이지만 사람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매화.
매화.

코로나와 더불어 많이 힘들어진 요즈음, 지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눈 내리는 하얀 겨울을 바라보자. 대자연 속의 산사에 울려퍼지는 저녁예불 목탁소리에 번뇌망상을 내려놓고 고요한 명상에 들어보자.

(사)한국전통문화천연염색협회 이사장

광천 관음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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