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채 / 문학평론가
사이채 / 문학평론가

 

 

어린이가 미래다. 어느 때나 어디서나 이보다 날카로운 경구(警句)는 없다. 당연히 오늘의 어린이가 행복하고 건실해야 밝고 돋올한 미래가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잘 사는 시대에도 행복하지 않은 아기들이 있어 큰 문제다. 종종 갓 태어난 아기를 유기(遺棄)하거나, 영아를 방치하는 비정한 사건이 일어나 안타깝기만 하다.

불교에서는 어린이를 귀하게 여긴다. 어린이법회도 하고, 어린이여름불교학교도 연다. 어린이불경과 불경만화, 불교설화애니메이션도 나오고, 여러 행사도 개최한다. 지난 4월 27일 구인사에서 제15회 천태어린이, 청소년 글그림 대잔치가 열렸다. 지난해 대잔치에서 대상을 차지한 정하연 학생이 ‘I♡Korea’를 주제로 그린 그림은 황금탑의 기단부를 하회탈로 꾸몄다. 불탑의 진지함에 해학을 얹은 이 상상력은 기발하기만 하다.

4월 20일에는 천태종립 금강유치원 원아가족 본산 참배가 열렸다. 구인사 광명전을 가득 채운 아이들의 발랄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은 그야말로 천진불이었다. 어린이날에 즈음하기도 하고 오는 5월 15일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봄날에 열린 이 행사들은 아이들이 불교와 친숙해지고 불성을 닮아가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봉축법요식의 중요한 의례 가운데 하나는 관불(灌佛)의식이다. 룸비니동산을 상징하는 화단을 조성해 아기 부처님을 안치하고, 표주박으로 감로수를 떠서 아기 부처님 정수리에 붓는 의식이다. 이는 싯타르타의 탄생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싯타르타가 탄생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고, 왼손으로 하늘을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쳤다. 이어 하늘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물을 뿜어 석가모니를 씻기고, 여러 천신이 그의 탄생을 기뻐했다.

관불의식을 행할 때 아기 부처님을 보면 정호승의 시 한 수가 떠오른다.

경주박물관 앞마당

봉숭아도 맨드라미도 피어 있는 화단가

목 잘린 돌부처들 나란히 앉아

햇살에 눈부시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

조르르 관광버스에서 내려

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

자기 머리를 얹어본다

소년 부처다

누구나 일생에 한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

-정호승 <소년 부처> 전문

‘머리 없는 부처’는 서글픈 역사의 단면이다. 조선시대 유생들이 불상의 목을 잘랐다고 하는 말이 있다. 그런데 시인의 상상력은 누구나 한번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 스스로 목을 잘랐다고 묘사한다. 이 시처럼 ‘소년 부처’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일찌감치 자기의 신체 일부를 내어 준비한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에 사찰에서 봉축법요식을 마치고, 우리도 부처님처럼 준비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관불의식을 행하면 좋겠다. 부처처럼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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