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자의 길은 단순히 세속을 떠나는 행위로만 설명할 수 없다. 붓다가 제시한 길은 개인의 해탈에만 머무르지 않고, 불교공동체를 지탱하는 책임을 함께 포함한다. 출가자는 탐욕과 번뇌를 끊고 청정한 삶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자일 뿐 아니라, 신도와 사회를 이끄는 스승이자 지도자이며 동시에 사회적 책무를 지닌 존재이다. 따라서 승려의 삶은 개인적 해탈과 공동체적 책임을 함께 짊어지는 무거운 길이며, 그 무게는 곧 승가라는 불교공동체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첫째, 계율은 단순한 금지 규범(規範)이 아니라 수행자가 자신의 삶을 정화하
한국불교태고종의 사법기구인 호법원은 단순한 징계나 분쟁 해결을 넘어서 종단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승단의 조화를 이끄는 핵심축이다. 종헌과 종법이라는 명확한 기준 아래에서 공정한 판단을 수행하는 호법원은, 종도들에게는 신뢰받는 심판자이며 종단 전체에는 정의의 보루로 자리 잡고 있다.무엇보다 호법원의 최우선 과제는 '공정성'이다. 모든 종도에게 동일한 법적 기준이 적용되고, 외부의 영향이나 내부의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사건을 심리하는 일은 종단의 신뢰 회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실제로 크고 작은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호법원
불교의 예수재(豫修齋)는 윤달이라는 특별한 시기에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공덕을 쌓으며 내일의 행복을 기원하는 한국불교의 소중한 전통문화다.‘예수’란 ‘미리 닦는다’는 뜻으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지은 죄업(罪業)을 참회하고, 공덕(功德)을 쌓기 위해 스스로 행하는 자기성찰의 의식이다. 죽은 뒤 남의 빚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산 몸으로 내가 주인이 되어 ‘금생(今生)의 마무리’와 ‘내세(來世)의 준비’를 동시에 이루는 자각적 수행이기도 하다. 불교는 삶과 죽음을 단절된 현상이 아니라 연기(緣起)의 흐름으로 본다. 죽음은 끝
불기 2569년 을사년(乙巳年) 새아침이 밝았다. 새로운 기대와 희망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지난 해의 시련과 아픔을 딛고 도약과 발전을 위한 결의를 다지며 새해를 맞는다. 하지만 여느 해와 달리 올해는 새해를 맞는 감회가 기쁘지만은 않을 듯하다. 전세계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이스라엘과 중동의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인류의 평화를 깨뜨리는 전쟁상황은 해를 넘겼다고 해서 쉽게 끝날 것 같진 않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전쟁종식을 위한 메시지를 연일 날리고 있으나
올여름은 날씨가 여느 해 보다 더 무더웠다. 열대야가 30일이나 지속됐다. 에어컨을 돌리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점점 더 진행되는 지구 온난화라고 하니 내년에는 “작년 여름이 더 시원했다”라고 말할 것만 같다. 모두들 예언자가 된 것처럼 그런 말들을 한다. 그런데 기후 환경 위기를 극복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다면 여름이 지금처럼 무덥지 않았던 시절에 친자연적으로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궁금해진다.더웠던 계절이 지나고 이제 다시 입추와 말복이 지나고 처서가 성큼 지나갔다
2024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한 해 동안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시기다. 필자에게는 올해 유독 길었던 무더위만큼이나 마음 한구석을 끈질기게 불편하게 했던 말이 있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라는 말이 그것이다. 제각기 알아서 자신의 살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라는 뜻인데, 우리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나타내는 표현이라서 더욱 씁쓸하다.물론 각자도생이라는 말 자체는 다양한 개인의 개성과 가치가 존중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 말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사회가 앓
사회적 분노의 극단적 발현이라 할 수 있는 ‘증오 범죄’가 좀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증오 범죄’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와 시간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줍니다. 따라서 ‘증오 범죄’에 대한 예방차원의 대책들이 다각도로 마련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증오 범죄’의 원인과 동기는 사회에 대한 분노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극단적인 분노와 증오를 줄여주는 게 중요한 예방책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분노를 다스리는 데 부처님은 어떻게 말씀
사람의 일상생활이 늘 즐거움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현실은 항상 희로애락(喜怒哀樂)이 함께 공존합니다. 희로애락은 예기치 않게 찾아와 인간을 울리기도 하고 웃게도 만듭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삶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늘 즐거움이 있기만을 바랍니다. 이것은 당연한 심리입니다. 누가 즐거움 보다 슬픔을 가까이 두려 하겠습니까?사람이 견디기 힘든 고통 중의 하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라고 합니다. 인류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합니다. 친숙한 관계망이 형성될 때 더욱 즐겁고 기쁜 일들이 만들어지기 때문
요즘 들어 힐링 프로그램이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복잡다단한 세상을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쉽사리 몸과 마음이 지치는 일이 많다. 병원이나 약에 의존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힐링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서점에서도 명상서적이나 심리학 종류의 책들이 많이 읽히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현대인들의 심리적 스트레스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정신질환 유병율에 따르면 연간 18%에 가까운 사람들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 성인인구 1백 명 중 18명이 정신
세손 시절 정조대왕은 도성 주변의 풍경을 노래한 ‘국도팔영(國都八詠)’에서 태고사(太古寺)에 대해 ‘대은암의 서쪽이요 태고사의 동쪽으로는/시냇가의 한 길이 온통 고운 단풍뿐인데/짐짓 삼추의 야박한 서리 이슬을 혐오하여/능히 이월의 번화한 붉은 꽃을 이루었도다[大隱巖西太古東 緣溪一路盡明楓 故嫌霜露三秋薄 能作繁華二月紅]’라고 읊었다.태고사는 고려말 태고보우 국사가 중흥사 주지로 있으며 절의 동쪽에 태고암을 창건하고 ‘태고암가’를 지은 곳이다. 태고보우 국사가 입적한 후에는 태고비가 이곳에 세워졌다. 지금도 태고사에는 원증국사탑비(보물
얼마 전 우리나라의 문학계에 낭보가 전해졌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등을 쓴 한강 작가를 선정, 발표한 것이다. 한강 작가가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 것이다. 한림원에서는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은 규칙에 맞서고,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선정 이유를 밝히고 있다.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
근래엔 선진국가의 척도가 사회적 소수자(小數者)와 약자(弱者)를 위한 정책수립과 국민적 포용이 어느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느냐에 있다고 한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란 인종, 민족, 언어, 종교,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수의 사람들과 구별되고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미흡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사회적 소수자들은 사회적 약자에 해당한다. 사회적 약자가 그렇듯이 주류에 포함되지 않을 뿐 아니라 다수 사람들의 편견과 억압 등으로 극심한 불평등을 겪는다. 사회적 소수자라 하면 이주민, 난민, 탈북자, 성소수자, 장애인 등이다.우리나라도 선진의
오래전, ‘글쓰기 기초’ 강의시간에 베트남에서 온 한 유학생을 만났다. 한류드라마를 보고 한국에 매력을 느껴 국비유학생으로 온 그는 무척 야무져 보였다. 베트남에서 한류드라마를 보며 한국어를 습득했다는 그는 의사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우리말의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말하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에도 능숙하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잘 어울렸고, 교수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또한 그는 모든 일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중간고사가 끝난 이후 학생들에게 ‘부모님께 드리는 글’을 써보라는 과제를 냈다. 어버이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이 시는 1937년 12월에 발표한 조지훈의 ‘승무’의 일부분으로, 육수장삼을 입은 무용수가 긴 소매를 펼쳤다가 모으고 감아내는 승무의 춤동작을 잘 묘사하고 있다.한국 전통춤의 백미로 알려져 있는 승무(僧舞)는 ‘중’을 뜻하는 승(僧)과 춤을 뜻하는 ‘무(舞)’가 결합된 것으로, 그 근원은 불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 장삼을 입고 춤이 이루어지므로 장
얼마전 챗GPT는 세상을 놀라게 했다. PC초기시대 인터넷의 혁명은 스마트폰으로 지구 전체와 소통이 가능하게 하더니, 이제는 사람, 사물, 공간을 초연결하는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현실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과 소수의 인력으로 운영되는 식물공장이 국가 단위로 필요한 식자재를 대량생산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게 될 것이고, 택배와 배달음식은 드론이 담당하며, 전 국토의 도로가 자율주행용 스마트 도로로 대체될 것이다. 가상현실을 넘나들고, 의료혁명과 수명증가는 누구나 예측가능 할 만큼 뻔 한 내일이다. 하지만 보고도 믿을
최근 전국에 첫 폭염주의보가 발효되면서 올여름 무더위 기승이 심상치 않다. 34도까지 치솟던 6월 18일, 기상청은 전국에 예년보다 이른 폭염주의보를 발령했다. 고온다습한 무더위는 열대성 기후의 폭우도 동반하는데, 7~8월 기상청은 평년보다 극심한 집중호우를 예상하고 있으므로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를테면 2022년 여름, 강남 한복판에서의 물난리도 그러한 예에 속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반지하방에서 세 가족이 익사한 인명 사고에 있다.나의 어머니께서도 이런 물난리의 피해자셨다. 현재는 임대아파트로 거처를 옮기셨지만, 수
벚꽃이 개화한 4월에 이어 가정의 달인 전월에도 언론을 통한 자살 보도가 부쩍 많았다. 지지난달에는 강남역 오피스텔 옥상에서 투신한 여고생이 자살 과정을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생중계하여 큰 충격을 줬다. 더구나 투신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히도록 거치대를 사용하는 바람에 이십여 명의 시청자는 그 끔찍한 장면을 목격해야만 했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또 경악할 만한 사고가 발생했다. 강남의 한 중학생이 동급생의 목을 찌른 뒤 아파트에서 투신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틀 뒤에는 유명 아이돌이 자택에서 숨져 대중들을 충격
동해 무릉별유천지가 있는 곳, 두타산 자락의 산들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뻐꾸기와 소쩍새가 울고, 모내기 준비로 무논의 봇도랑마다 개구리들 합창이 경쾌하다. 어릴 적 찔레를 꺾어먹고 자랐던 찔레 순에는 흰 찔레꽃이 소담스럽다. 마당 꽃밭에는 마가렛이 꽃구름처럼 피고 있다. 가끔 무적교가 있는 신흥천 뚝방길로 저녁 산책을 나서면 우연찮게 목청을 높여 인사하는 고라니와 조우하기도 하고, 길고양이들과 눈빛 인사를 나눈다.동해 무릉계 삼화사, 삼척 미로 천은사, 강릉 정동진 등명락가사 등 전국의 사찰 경내마다 한창 피는 불두화가 불자들의 발길
깡통전세란 전세가가 매매가에 근접하여, 세입자가 보증금을 떼일 위험도가 높은 상황을 말한다. 금융시장 관점에서 보면 전세는 집주인이 타인의 자본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높이는 수단이자, 부동산 대출과 금리에 연결되어있는 서민형 금융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상품은 사기꾼들로부터 보증금을 지켜 낼 확실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이다.돈이 오가는 곳에는 문제들이 숨어있다. 시세를 잘 알 수 없는 신축 빌라나 오피스텔 위주로 사기가 발생하는데,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들에게 전세대출이 잘 나오기 때문에, 주로 피해 대상이 된다, 뻔히
4월 초,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한 달 전부터 기다리고 계셨던 터라 무척 설레고 좋아하셨는데 마음과는 달리 몸은 영 불편해 보였다. 급기야 다리가 아프니 쉬어가자고 들어간 부스가 서예가 정기옥 선생님의 ‘불설대보 부모은중경’의 병풍이 전시된 곳이었다. 갑자기 바닥에 쭈그리고 앉는 노 스님을 보고 보살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자리를 내주셨다. 고마워하면서 이 병풍 만드느라 애쓰셨다니까 새벽 세 시면 일어나 금니로 쓰신다는 데 올해 일흔아홉이라고 한다. ‘부모은중경’! 그제사 눈이 번쩍 뜨이며 병풍을 찬찬히 들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