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무릉별유천지가 있는 곳, 두타산 자락의 산들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뻐꾸기와 소쩍새가 울고, 모내기 준비로 무논의 봇도랑마다 개구리들 합창이 경쾌하다. 어릴 적 찔레를 꺾어먹고 자랐던 찔레 순에는 흰 찔레꽃이 소담스럽다. 마당 꽃밭에는 마가렛이 꽃구름처럼 피고 있다. 가끔 무적교가 있는 신흥천 뚝방길로 저녁 산책을 나서면 우연찮게 목청을 높여 인사하는 고라니와 조우하기도 하고, 길고양이들과 눈빛 인사를 나눈다.

동해 무릉계 삼화사, 삼척 미로 천은사, 강릉 정동진 등명락가사 등 전국의 사찰 경내마다 한창 피는 불두화가 불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부처님의 머리 모양을 닮은 꽃이라고 해서 승두화라고도 불리는 불두화의 꽃말은 은혜와 베풂이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있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한다.

몇 해 전, 길고양이가 어린 새끼 네 마리를 본가의 농기구 쟁기가 있는 창고에 물어다놓고 영영 무지개다리 건너 고양이별에 갔다. 한창 엄마 품에서 젖을 먹으며 자라야할 어린 고양이들이 밤낮 없이 어미를 찾느라 몇날 며칠 구슬프게 울었다. 그게 안쓰러워 고양이 네 마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뒤 지금은 고양이 집사가 되어 함께 살고 있다.

1세대인 얼룩이가 구름이, 무지개, 별이, 천둥이를 낳았고, 2세대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를 낳았다. 3세대의 고양이가 바비와 곰돌이라는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낳았다. 그리고 올 봄에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 일곱 마리를 낳았는데,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다행이다. 우리 가족은 아기 고양이들 생김새와 특징을 한 달 가량 관찰한 후에야 새벽이, 햇살이, 노을이, 밤중이, 오디, 자두, 그리고 막내인 살구라는 일곱 마리 아기 고양이의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새 생명의 탄생과 축복과 함께 아기 고양이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시어머니가 구순을 바라보는 아픈 시아버지를 두고 하늘나라에 갔다. 갑자기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힘들어하는 가족들, 엄마 없이 집사 손에 자라는 아기 길고양이들, 오래 전에 엄마를 떠나보낸 나나, 우린 모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가정의 달 오월을 맞이한다. 며느리에게 정을 가득 주었고, 세상에서 최고였던 시어머니의 빈자리를 실감하며, 연로한 시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시골살이는 만만치 않다. 그럴 때면 텃밭에 채소를 가꾸어 이웃과 나누어 먹고, 꽃밭에 꽃을 가꾸고 고양이들 돌보며 많은 교감도 나누고 위로도 받는다. 한식구로 지내는 고양이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모두 어머니의 따스한 젖가슴이 그리운 사람들이다. 또한 틈틈이 글을 쓰거나 좋은 시를 찾아 읽거나 시집을 주문해 읽으면서 마음의 위안과 평온을 얻는다.

인터넷서점에서 시집 몇 권을 주문해 놓고 손꼽아 기다리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친절한 택배기사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흐른다. “여보세요? 마당에 파라솔이 있고 고양이가 많은 집 맞죠?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며칠 전 주문한 정현종 시인 시집이었다.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셔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그래, 정현종 시인의 시처럼 ‘비스듬히’ 기대에 보거나 누군가가 기댈 수 있도록 기꺼이 어깨를 내주는 오월이면 좋겠다.

5월은 근로자의 날을 비롯해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그 어느 달 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많은 호칭이 붙을 만큼 계절의 여왕 5월만큼은 어려운 이웃을 먼저 둘러보고, 가족들, 일가 친척들, 친구, 지인들에게 안부를 전하면 좋겠다. 그리고 5월 27일(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 날을 봉축하며, 온누리에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교육학박사ㆍ시인ㆍ시치료사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