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개화한 4월에 이어 가정의 달인 전월에도 언론을 통한 자살 보도가 부쩍 많았다. 지지난달에는 강남역 오피스텔 옥상에서 투신한 여고생이 자살 과정을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생중계하여 큰 충격을 줬다. 더구나 투신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히도록 거치대를 사용하는 바람에 이십여 명의 시청자는 그 끔찍한 장면을 목격해야만 했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또 경악할 만한 사고가 발생했다. 강남의 한 중학생이 동급생의 목을 찌른 뒤 아파트에서 투신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틀 뒤에는 유명 아이돌이 자택에서 숨져 대중들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트렸다. 가정의 달을 맞이한 5월에는 노원구에서 아내를 살해한 30대 남성이 갓난아기와 함께 추락해 숨지는 참극이 벌어졌다. 또한, 젊은 트로트 가수가 유서를 남기고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청년 고독사도 증가하는 추세다. 장기화된 팬데믹으로 실업률이 급증하고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소외되는 계층 또한 증가하면서 생겨난 사회적 병폐로 볼 수 있겠지만 단순히 팬데믹만 탓할 건 아니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런 참담한 현상에는 좀 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한국은 OECD 국가 42개국 가운데 압도적인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인구 10만 명당 24명꼴로 OECD 평균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전체 자살자 수는 다소 줄어드는 반면에 10대, 20대의 자살률이 크게 늘었다는 데 있다. 30대 역시 자살이 사망원인 1위로 보고되었다. 이처럼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일이 우리 주변의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기꺼운 선택지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날보다 물질적으로 훨씬 풍족해진 시대에, 그것도 세계적으로 선진화된 대한민국이란 국가에서 부동의 자살률 1위가 이어지고 있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국가에 비해 빠른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친 대한민국은 그 유례가 없는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단기간에 이룬 경제적 번영은 가히 세계적인 업적이라고도 평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희생도 상당했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 세대가 그랬다. 수많은 아버지들이 주 6일제 근무에 야근을 밥 먹듯이 했고, 매일 직장 상사의 핍박에 시달렸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집안 살림과 남편,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는 일에 인생을 바쳐야 했다. 정신적 손실을 당연시하던 부모님 세대는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자식 교육에 이바지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습성이 인간의 잠재의식 중 일부라는 한 정신과 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이 같은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가족은 서로에게 상처를 안기는 불순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오랜 시간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면 그게 삶의 전부인 양 여긴다. 빨리 달려야만 한다는 속도의 논리, 등수의 논리를 주야장천 발설한다. 당사자들이 그런 방식으로 자부할 만한 삶을 살아왔고, 그게 먹히는 시대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의 확고부동한 신념은 유치원 때부터 대학생, 직장인으로까지 이어지는 무한경쟁의 사회를 만들었다. 끊임없는 경쟁과 비교,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한다는 강박 심리를 정당화했다. 수단과 방법을 불문하고 돈만 많이 벌면 장땡이라는 생각이 암암리에 진리처럼 주입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어쩌면 그러한 시대적 압력을 수용하고 추종하면서 우리는 점점 곪아가는 주변의 여러 이웃을 희생양으로 내몬 것일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개인의 자율적 선택의 값어치를 이야기하는 문화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여전히 적게 갖는 삶의 위대성, 정신적 자유의 가치에 대해 가르치는 교육기관은 드문 것 같다. 대부분 물질적 가치와 실적에 대해서만 떠들어대기 일쑤다. 서서히 개인의 행복을 지향하는 쪽으로 바뀌곤 있다지만, 이미 학습화된 ‘인생은 성적순’이라는 가치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듯싶다. 불제자로서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잠재울 열쇠 중에 불법만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연기법과 인과를 이해하면 더는 물질과 등수놀이에 목매지 않게 된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받아들이고 자연히 복덕을 짓겠다는 자세를 견지하게 된다. 과학 문명이 발전할수록 정신적 탐구와 자기 성찰에 핵심을 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물질의 허무와 창조주의 허상이 낱낱이 밝혀지는 첨단시대를 우리는 걷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신문 2023 신춘문예 단편소설 입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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