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비구니 팔경법

효능 스님.
효능 스님.

부처님께서는 왜 비구와 비구니가 법랍 순으로 앉는 것을 거부하셨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있지만 먼저 승가의 기능 유지 차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승가의 질서 유지에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법랍에 따라 좌차(座次)를 정하는 일이다. 법랍은 우안거(3개월)를 마쳤을 때 1세가 된다. 승가에서는 출가 이전의 세속 나이는 무시하고 장유(長幼)를 법랍으로 정하여 자리를 배정하고 승가의 분배물을 차례대로 나누는 전통이 있다. 그러나 비구니 승가가 생겨남으로 인해 비구와 비구니가 동일한 장소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상황이 생기게 되었는데 비구, 비구니 구분 없이 법랍의 순서대로 좌차를 정하게 된다면 비구와 비구니가 섞여 앉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양 승가 구성원의 금욕적인 수행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불필요한 의심으로 재가자의 존경과 신뢰를 잃어버릴 수 있었다. 이전 연재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승가는 걸식에 의존해야 한다. 승가 내에서는 음식을 조리할 수 없어 공양에 관한 한 전적으로 재가자에게 의지해야 했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보면 비구, 비구니가 구분 없이 섞여 있을 경우 재가자의 의심을 사게 되어 승가에 대한 존경심으로부터 제공되는 공양을 받을 수 없는 심각한 국면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몰론 공양청을 받아 재가자의 집에서 공양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시주자가 마련해 주는 음식을 먹어야 하기에 걸식과 근본적인 의미로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비구니의 좌차를 비구 뒤에 두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법랍이 오래된 비구니가 법랍이 얼마 되지 않은 비구에게 합장하고 공경해야 하는 점에 대해서는 불교의 양성평등사상에 근거하여 보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부분의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고대 인도의 사회적 상황에 따른 여성 지위에 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고대 인도의 여성 지위에 관한 이해 필요

구자상 선생은 그의 책 『여성 성불의 이해』에서 마스타니 후미오의 주장을 인용하며 리그베다 시대에는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러나 브라흐마나 시대로 접어들면서 여성의 지위는 점점 약해져 불교가 흥기하던 시대에는 그 정점에 이르렀다고 한다. 심지어 『마누법전』에는 여성을 죽인 살인죄에 대한 보상금은 그 신분에 따라 각각 가죽 자루, 활, 염소, 양을 주어야 한다는 규정을 들면서 여성은 수드라와 동격이거나 그보다 못한 존재였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런 시대상을 반영해보면 부처님께서 여성 출가자를 불교 교단 내에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여 계급이나 성별에 어떠한 차별도 있을 수 없음을 설했던 부처님께서 만약 조금이라고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세상에 비구니 승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팔경법은 부처님의 비구니 승가의 설립을 위한 선방편이었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당시의 사회 전통을 전복시켜 교세를 확장하려는 욕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혁명가도 아니었다. 단지 괴로움의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방법을 제시해 올바른 수행의 길로 이끌어 주는 위대한 스승일 뿐이었다.

동방불교대학교 교수

스리랑카 국립 켈라니야대학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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