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매 인오, ‘상무주암에서’, ‘금털사자’, ‘물고기’

 

서산대사의 제자로 자비덕화가 출중했던 청매인오(1548~1623)는 임진왜란 때 의승장으로 출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 후 선사는 변산 월명암, 지리산 연곡사, 실상사, 영원사 등에서 수행 정진했으며, 도솔암을 세우고 ‘청매문파’를 열어 선풍을 크게 떨쳤다. 청매선사는 보조국사 지눌이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참선수행 정진에 힘쓰던 시절의 감회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땔나무 해오고 물 길어 오는 일 외엔 하는 일 없네 般柴運水野情慵
참 나를 찾아 현묘한 도리 참구에 힘쓸 뿐 參究玄關性自空
날마다 변함없이 소나무 아래 앉았노라면 日就萬年松下坐
동녘 하늘 아침 해가 서쪽 봉우리에 걸려 있네 到東天日掛西峯

집착 없는 무심의 무주대(無住臺) 수행이 묘출되고 있다. 물 긷고 나무 하되 지음에 지음 없으면 한가하고, 함이 없되 하지 않음도 없는 수행자의 모습이다. 날마다 변함없이 아침 해가 서산에 질 때까지 소나무 아래 선정에 들었다는 것은 ‘참 나’ 찾기의 치열한 수행을 말해준다.

운문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청정법신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꽃이 난간을 둘렀다.” 스님이 말했다. “곧 이렇게 갈 때 어떠합니까?” 선사가 말했다. “금털 사자(金毛)다.” 청정법신이 눈에 보이는 사법의 진실임을 난간 두른 꽃으로 대답했지만, 사법의 모습에는 모습이 없되 모습이 없음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법의 모습은 그것에 그것이 없고 그것 없음도 없어 오직 살아 움직이는 행으로 주어짐을 ‘금털사자’라고 다시 말한 것이다. ‘청정법신’을 답한 운문의 법어를 바탕으로 청매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산색과 시냇물소리 얼굴과 눈에 섞이고 山色溪聲面目渾
금털사자는 푸른 구름에 들어가며 金毛獅子入靑雲
옥 같은 꽃에 해는 길어 호걸은 많은데 玉華長日多豪傑
취해 붉은 난간 넘어뜨리니 벌써 밤이 되었네 醉倒紅欄到夜分

당송 8대 문장가인 소동파는 산색과 시냇물 소리 등 모든 소리가 법문이 아닌 것이 없고, 그대로가 청정법신이라 했다. 산색과 시냇물 소리가 얼굴과 눈에 비쳐 하나로 되는 모습, 이는 곧 청정법신의 화현이다. ‘금털사자’는 뒤돌아봄이 없이 앞으로 내달리는 맹수의 왕이다. 그래서 가고 옴을 취하지 않고 머묾도 취하지 않는 행을 ‘금털사자’로 말했다. 그러나 그 머묾이 없는 행이 그대로 고요한 법신이 됨으로 청매선사는 ‘금털사자’가 구름에 들어간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이처럼 선사들의 비유와 상징은 상식을 초월하는 방편으로 사용된다.

한 바다에 많은 물고기들 노니는데 一海衆魚游
물고기들 저마다 한 큰 바다 가지고 있네 各有一大海
바다는 분별심이 없으니 海無分別心
모든 부처의 법 이와 같을 뿐이네 諸佛法如是

분별심이 없는 그 자리가 ‘일심(一心)’, 진여의 세계임을 말하고 있다. 한 바다에 많은 고기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하나 가운데 여럿이 있음[一中多]을 비유한 것이고, 물고기들 저마다 한 큰 바다를 가지고 있다고 한 것은 여럿 가운데 하나[多中一]을 언급한 것이다. 바다의 입장에서 보면 물고기들은 바다 안에 있는 각각 개체들이지만, 물고기의 입장에서 보면 물고기들에게는 한 바다는 각각의 바다가 된다. 이때 물고기는 전체가 되고 각각의 바다는 또 각각의 개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바다는 물고기를 품고 있다는 생각도, 물고기는 내 바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무념의 경지는 사량 분별로 헤아려질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경지이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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