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별로 풀어가는
천연염색 이야기 ⑬ –입동

겨울 시작 알리며 방향은 북방
‘치계미’는 노인 대접하는 풍속
스팀기로 처리 에코염색 유행
‘해시’는 만물이 잠드는 시간

감낙엽문양.
감낙엽문양.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는 입동(立冬)이다. 가을이 끝나가고, 긴 겨울을 날 채비를 해야 하는 시기다. 입동 전후 5일 내외에 김장을 하면 맛있다고 하지만 요즘이야 김치냉장고가 좋아진 환경 덕분에 개의치 않고 김장을 한다. 입동에 즈음하여 예전에는 음력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하여 곳간과 마루 외양간에서 고사를 지냈다. 이때 농사철에 애를 쓴 소에게도 고사 음식을 가져다주며 이웃들 간에 나누어 먹었다.

입동에는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미풍양속도 있었다. 치계미란 입동, 동지, 제석(除夕)날에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풍속을 일컫는다. 치계미는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이라 하는데,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풍속에서 기인된 것이라 한다. 치계미 대신에 도랑탕 잔치라는 것도 있었다. 입동 무렵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어있는데, 이때 도랑을 파서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하였다.

먹문양염.
먹문양염.

 

입동 즈음 동면하는 동물들은 땅속에 굴을 파고 숨으며, 산야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풀들은 말라간다. 《회남자(淮南子)》권3 「천문훈(天文訓)」에 의하면 “추분이 지나고 46일 후면 입동인데 초목이 다 죽는다.”라고 하였다. 낙엽이 지는 데에는 나무들이 겨울을 지내는 동안 영양분의 소모를 최소로 줄이기 위한 자연의 이치가 숨었다.

초목 염색을 하려면 나뭇잎이 광합성 작용을 왕성하게 하는 5, 6월의 나뭇잎을 채취하여 염색을 해야 나뭇잎 속의 영양성분이 높고 색소 함량도 높다. 겨울엔 뿌리 쪽으로 영양소가 내려가기에 채취한 열매나 뿌리를 염료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때쯤이면 에코염색을 많이 한다. 에코염색이란 떨어진 낙엽이나 미리 준비해 둔 나뭇잎들을 얹어서 나뭇잎 문양을 천에 돌돌 말아 꽉 잡아맨 다음 스팀기로 장시간 처리해주면 생생하게 찍혀져 나오는 나뭇잎의 모양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작업하는 방법에 따라 염색법의 이름도 다르게 붙인다.

이영자작.
이영자작.

 

입동이 있는 10월은 해월(亥月)이다. 만물을 거둬들이며 씨앗을 만들며 열매들이 떨어져 땅속으로 들어가 다시 씨앗으로 연결되는 시기다. 겨울이 시작되었으며 방향(方向)으로는 북방(北方)에 속하며 오행상으로 수(水)에 속하니 색으로는 흑색(黑色)이다. 해시(亥時)는 시간상으로 밤 9시부터 밤 11시 사이를 말한다. 고요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만물이 잠드는 시간이다.

상징하는 동물은 돼지다. 돼지는 한자어로는 저(猪)·시(豕)·돈(豚)·체(彘)·해(亥) 등으로 표기한다. 돼지의 특징 중 하나는 근육이 없다는 것이다. 발굽 역시 두 개로 양분되어 음(陰)에 속한다. 돼지꿈은 재물이 생길 꿈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돼지를 지칭하는 한자의 음이 돈(豚)이기 때문이라는 풀이도 있다. 「돼지꿈 해몽」이라는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어떤 사람이 돼지꿈을 꾸었다고 하자 해몽하는 사람이 먹을 것이 생길 것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러하였다. 그래서 그 사람은 또 돼지꿈을 꾸었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입을 것이 생긴다‘고 해몽하였는데 과연 그러하였다. 그 사람은 해몽자를 찾아가 또 돼지꿈을 꾸었다고 하니 이번에는 몽둥이찜질을 받을 것이라고 풀이하였는데 과연 매를 맞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몽의 근거를 물어보니 돼지가 처음 꿀꿀거리면 먹을 것을 주고, 다음에는 깃을 우리에 넣어주고 다시 소리를 치면 작대기로 때려주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전시장.
전시장.

 

속담에는 결함이 많은 사람이 오히려 결함이 적은 사람을 나무랄 때 ‘똥 묻은 돼지가 겨 묻은 돼지 나무란다’고 하고, ‘그슬린 돼지가 달아맨 돼지 타령한다’는 속담도 있다. 돼지에 관한 이야기는 핀잔을 줄 때 ‘돼지 멱 따는 소리’라고 핀잔을 주고, 격에 맞지 않는 치장을 빗대어 ‘돼지 목에 진주, ‘돼지 우리에 주석 자물쇠리고 한다. 또 본 일보다 부수적인 일에 더 큰비중을 둘 때 ‘돼지 값은 칠 푼이요, 나무 값은 서돈’이라고도 말한다. 이렇듯 돼지의 이야기는 주위에 차고도 넘치며 친근감 있게 다가온다.

무엇이든 식성이 좋은 돼지의 상징성은 식복이 있다는 것이다. 돼지는 의외로 아이큐가 높은 동물이다. 영리하다고 하는 동물이다. 돼지는 평상시는 조용하다가도 불만족스러운 것이 있으면 꽥꽥거리며 난리를 치기도 한다. 파워플하며 액티브하기까지 한 돼지의 특성이다. 색으로는 흑색이며 방위상으로는 북방이며 시간상으로 어두운 밤이며 성장을 멈춘 정지된 시기이지만 안으로는 바쁘게 이리저리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다. 잠들기 전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많은 생각이 오고 가는 시기다. 장례식 의상으로 검정색을 착용 하지만 검정색이 주는 무게감으로 권위를 나타내기도 하며 보스의 기질을 연상하기도 한다. 검정색은 모든 색을 흡수하는 색으로 절제되어 있으며 엄숙하고 위엄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검정색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저승사자, 죽음, 신비주의, 비밀, 권력 등 보이지 않는 깊은 물속과도 같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이미지가 강하다.

호건.
호건.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으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천왕으로 암흑계를 관리한다. 수미산 중턱의 북쪽 구로주(瞿盧州)를 수호하는 천왕으로 비사문천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며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것을 많이 듣는다고 해서 다문천(多聞天)이라 불린다. 고대 인도의 신화에서는 다문천왕이 암흑계에 머무는 악령의 우두머리로서 재물과 복덕을 주관하는 존재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다문천왕이 불교에 흡수되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듣는 호법신이 된 것이다.

다문천왕은 지물(持物)로 보탑을 들고 있어 특징적이다. 불교미술의 수많은 신장상 중에서 사천왕을 구별해 낼 수 있는 중요한 표식이기도 하다. 《다라니집경》에는 다문천왕이 왼손에 창을 잡고 오른손에는 불탑(佛塔)을 든다고 하며, 《약사여래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에는 왼손에 막대를, 오른손에 탑을 든다고 하였다. 어둠 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얼굴이 검은 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다문천왕은 권속으로 야차·나찰을 부린다. 야차는 행동이 민첩하고 가벼우며 음악과 환락·음식·오락·바람을 주관하며, 숲속이나 묘지, 골짜기에서 산다고 한다. 나찰은 두려운 존재라는 뜻으로 혈육(血肉)을 먹고 탐내는 존재라고 《한국의 불화》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홍화염색.
홍화염색.

좋은 시절이 가고 삭막한 겨울이 다가오니 인생무상을 느끼는 시기다. 누구나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다음 해 봄을 위해 준비된 씨앗들을 창고에 보관한다. 끝났으나 끝난 것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해 준비하는 단계를 절처봉생지(绝处逢生地 )라 한다. 해월 돼지의 이미지를 유추해보면서 긍정과 부정 속에 숨어있는 새로운 기운 봄의 기운을 기다려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노인의 삶 속에 녹아난 지혜와 경륜은 내 삶을 윤택하게 해줄 지혜의 보고(寶庫)다. 젊은 세대에게 너희도 나날이 늙어 가니 어른을 존중하며 배우고 활용하라고 이야기한다.

(사)한국전통문화천연염색협회 이사장

광천 관음사 주지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