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경한, ‘흰 구름’, ‘부채를 선물받고’, ‘초옥’

 

‘직지심경’으로 알려진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불조직지심체요절》을 저술한 백운경한(1298~1375)은 1351년 53세 때 원나라에 들어가 지공화상에게 법을 묻고, 최후에 하무산 천호암에 주석하는 임제종의 거장 석옥청공(1272∼1352)을 찾아가 무념무심의 진종을 배우고 여래의 더없는 묘도(妙道)를 깨달았다. 경한의 무심무아의 깨달음의 경지는 ‘흰 구름’이라는 상징을 통해 잘 표현되고 있다.

흐르는 물은 산에서 흘러도 산을 그리워하지 않고 流水出山無戀志
흰 구름은 골짜기를 감돌아도 또한 무심하네 白雲歸洞亦無心
이 한 몸 가고 옴도 운수 같아서 一身去來如雲水
몸은 오고 가지만 눈에는 처음인 듯 새롭구나. 身是重行眼是初

자성의 공함과 자재함의 경지가 ‘흐르는 물’ ‘흰 구름’과 같은 시어로 표상되고 있다. 오고 감이 본래 공한 것이고 보면, 그 본질에 있어서는 ‘흐르는 물’이나 ‘흰 구름’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물아일체, 진속불이의 자연은 이러한 선적인 깨달음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이는 곧 우주와 일체가 된 경한의 무심 경지이다. 또한 그러한 무심의 세계가 달의 이미지를 통해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다.

내 마음 가을 달과 같아서 吾心似秋月
온 세상 차별 없이 두루 비추네 任運照無方
삼라만상 제 그림자 절로 나타나 萬相影現中
눈부신 광명이 온통 드러나네. 交光獨露成

어느 것에도 얽매임이 없는 마음(無心), 즉 깨달은 마음의 세계가 가을 하늘에서 온 세상을 두루 비추는 달빛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이처럼 불가에서 말하는 ‘선기(禪機)’란 깨달음을 얻은 선승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쓰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기발한 선기는 경한선사가 신광 총 장로로부터 부채를 선물 받고 감사의 마음을 담은 시에서 잘 나타난다.

둥그런 부채가 내 손에 들어오니 圓扇落吾手
시원한 바람이 분에 넘치게 불어오네 淸風分外吹
찌는 무더위와 치성한 번뇌는 사라지고 煩蒸熱惱滅
가을날 동정호반에 나를 앉히네 坐我洞庭秋

부채질을 하면 더위는 사라지더라도 치성한 번뇌까지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사는 부채질을 하면 더위가 사라지듯이 마음의 지혜를 터득하면 번뇌가 사라진다는 깊은 선취를 읊고 있다. 마지막 행의 가을날 중국의 동정호반에 앉아 있는 듯한 선사의 심경은 선열의 경지에 소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스승 석옥과 이별을 한 후 잠시 휴휴선암에서 머물렀던 경한은 1352년 3월 귀국하여 보법사에서 태고를 만났다. 그리고 1353년 정월 17일, 영가대사의 <증도가> 중의 “무명의 실성(實性)이 곧 불성이요, 환화(幻化)의 공신(空身)이 곧 법신”이라는 대목에 이르러 대오하고 무심이 되었다고 한다. 이듬해 1354년 6월, 석옥의 제자인 법안이 석옥의 전법게인 <사세송>을 가지고 와서 해주 안국사에 머물고 있던 경한에게 전하였다.

흰 구름을 사려고 맑은 바람을 팔았더니 白雲買了賣淸風
살림살이 바닥나 뼈에 사무치게 가난하네 散盡家私徹骨窮
남은 건 한 칸 띠로 얽은 집 하나뿐이니 留得一間芽草屋
세상 떠나면서 그것마저 불 속에 던지노라 臨行付與丙丁童

‘백운’은 백운경한을 상징하고 ‘청풍’은 석옥의 가풍, 나아가 임제종의 종풍을 상징한다. 1행은 백운을 제자로 삼기 위하여 석옥의 가풍을 온전히 다 넘겨준다는 의미이다. 2행은 일체의 번뇌 망상이 소멸된 경지를 의미하며, 3행의 한 칸의 초옥뿐이라는 것은 아직 생명이 붙어 있는 육신을 두고 한 말이다. 이마저 떠날 적에 불에 태워 화장하고 말 것이라 한다. '付與'라는 말에는 석옥이 백운에게 법을 부촉하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눈 열린 제자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스승으로서, 법을 잘 지키고 이어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자상승의 전형적인 게송이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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