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비구니 팔경법

효능 스님.
효능 스님.

계급과 성별에 관하여 평등함을 설하신 부처님께서 비구니 승가의 조직을 미루게 된 것은 당시 인도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문제와 비구 승가 내부의 반대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 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승가는 재가자의 보시에 의해 유지되며 그 보시자의 대부분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경시하는 바라문 전통에 물들어 있다는 점이다. 여성 차별을 넘어서 여성 멸시적인 당시의 사회 통념에서 볼 때 여성을 그들의 정신적인 종교 지도자로 받아들이고 예경하는 것은 쉽게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고 여성의 출가는 남성 중심의 사회기반을 흔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무시하고 비구 승가와 동등한 지위의 비구니 승가가 설립되었다면 아마 누구도 그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승가에 보시를 하지 않고 대규모의 지원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승가의 이탈자가 생기고 교단에는 큰 위기가 닥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마성 스님, 구자상 선생 등이 이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으며 필자도 여기에 동의한다.

둘째, 부처님께서는 비구 승가 내에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비구들과 바라문 출신 비구들의 반발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부처님의 법과 율에 따라 출가하였지만 남성 우월 사상이 강한 바라문 전통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였으므로 아무리 법랍이 높은 비구니라 하더라도 비구가 일어나서 예경한다는 것은 도저히 수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법에 관한 한 60종이 넘는 외도 사문들을 굴복시킬 만큼 논리적이고 물러남이 없는 붓다였지만 승가의 평화를 위해서는 사회 저변에 깔린 여성에 대한 인식과 비구 승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함은 물론 출가를 희망하는 여성의 염원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붓다는 이들의 중재자로서 여성의 출가를 위한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불교 교단 문제, 사회 현상과 연결돼 있어

그러나 여성폄하의 이 문제점들을 불교의 전통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낸시 아우어 포크는 그의 논문에서 “비구니를 비구보다 낮게 여기고, 비구니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젠더 관념에 기반하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전통이라기보다 당시 불교계를 둘러싼 사회의 규준이었다.”라고 하며 성차별 양상을 사회 현상과 무관한, 불교 교단만이 가지는 문제로 치부되는 것을 경계했다. 즉 불교 교단의 문제는 사회 현상과 연결이 되어있다는 말이다.

주지하듯이, 불교의 목표는 깨달음이다. 깨달음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승가의 평화가 유지되어야 하고 구성원 개개인의 평화가 유지되어야 한다. 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수승(殊勝)한 사상과 수행 방법을 보유하고 있는 불교라 하더라도 사회 관념에 역행하여 대립과 마찰이 지속적으로 조장된다면 오히려 평화를 깨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평화의 유지를 위해서는 사회와 탄력 있는 접촉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이 필요하며 사회와 승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도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팔경법은 여성에 대한 성차별 요소가 아니라 비구 승가와 사회의 비판적 여론을 불식시키기 위한 붓다의 차제설법(次第說法)이자 대기설법(對機說法)이며 비구와 비구니의 구분 없이 승가 구성원 모두를 절대 평화의 경지(涅槃)로 이끌려고 했던 붓다의 적극적인 양성평등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을 토대로 나머지 경법(敬法)을 살펴보고자 한다.

동방불교대학교 교수

스리랑카 국립 켈라니야대학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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