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휴선수, ‘조주선’, ‘무생’, ‘어떤 선승에게’ 등

 

부휴선수(1543~1615)는 ‘만일 자식을 얻으면 출가시키겠다’고 서원하고 기도를 올렸던 모친이 신승으로부터 구슬을 받는 태몽을 꾸고 태어났다고 한다. 17세 때 지리산 영원사 신명 장로에게 출가하여 부용영관의 심법을 이어 받았다. 문자를 떠난 격외선을 배워 참구하였던 선사는 도는 다른데 있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 있으니 항상 조주선 참구를 강조하였다.

도는 다른 데 있지 않고 오직 내게 있으니 道不在他唯在我
모름지기 멀리서 구하거나 하늘에서 구하지 말라 不須求遠不求天
마음 거두고 고요히 산창에 앉아서 收心靜坐山窓下
밤낮으로 항상 조주선을 참구할지니라 晝夜常參趙州禪

‘부휴’라는 선사의 호가 의미하듯이, 선사는 속세를 떠나 운수행각하며 청빈하고도 무욕의 삶을 살았다. 그 삶의 향기가 다음의 시에 그대로 녹아 있다.

깊은 산 홀로 앉아 있으니 만사 가볍고 獨坐深山萬事輕
문 닫고 온 종일 무생을 배우네 掩關終日學無生
생애를 돌아보니 남은 것 없고 生涯點檢無餘物
햇차 한 잔, 한 권의 경전뿐이네. 一椀新茶一券經

제자 벽암각성에게 준 시편이다. 선사에게는 문을 열고 닫음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만, 무생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문을 닫고 선정에 들었다. 그리고 평생의 삶을 돌아보니 남긴 물건 하나 없고, 한 잔의 햇차와 한 권의 경전뿐이라 했다.

부용영관의 법을 이어받은 부휴는 지리산에 토굴을 마련하고 정진하던 어느 해 가을, 함께 지내던 개가 서리 맞은 잎을 물고 오는 것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 깨달음을 선정에서 깨어나 학을 타고 오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가을 산중에 성근비가 지나가고, 秋山疎雨過
서리 맞은 잎 정원 이끼 위에 떨어지네 霜葉落庭苔
하얀 개에게 소식을 전하고 白犬通消息
선정에서 깨어나 학을 타고 오도다. 罷禪御鶴來

부휴선사는 도를 배우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소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것이고, 또한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결기가 있다면 금강(金剛)의 눈을 얻을 수 있고,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부처가 눈앞의 ‘空華’에 지나지 않음을 설파한다.

스승을 찾아 도를 배우는 것 별다른 것 아니요 尋師學道別無他
다만 소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것이네 只在騎牛自到家
백척간두에서 능히 활보할 수 있다면 百尺竿頭能闊步
수많은 부처조차도 눈앞의 꽃에 불과하네. 恒沙諸佛眼前花

임천(林泉)에 은거하며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고자 했던 부휴선사는 교교한 달빛과 설한(雪寒)에 외로움이 더해지는 깊은 밤, 잠 못 이루며 내면의 세계를 관조하기도 하였다.

흰 눈에 달빛 어리고 밤은 깊은데 雪月三更夜
떠나온 고향생각 끝이 없네 關山萬里心
맑은 바람 뼛속 깊이 파고들고 淸風寒徹骨
홀로 떠도는 나그네 시정에 젖네 遊客獨沈吟

공림사라는 절에서 유숙하면서 지은 시이다. 출가자에게는 고향이 따로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화자는 고향생각을 만리심이라 하였다. 이 때 맑은 바람의 한기가 방안을 차갑게 하다못해 뼈 속으로 찾아든다고 하였다. 부휴선사의 선심의 시심화가 한결 돋보인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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