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해심재 이완국 선생과 밀크티의 약진

밀크티 카페로 변모한 해심재
커피 시장에 믹스 커피 공헌 커
홍차가 비싼 건 유통 마진 때문
녹차 맛 전할 방법 화두 삼아야

‘이효리’ 덕택에 더 유명해진 제주도 애월쪽으로 찾아가면 해심재라는 곳이 있다. 찻집이기도 하고 행복한 쉼터라고 하기도 하는 문화공간이다. 제주도의 차인들과 몇 번 찾아갔는데 시간을 못 맞춰 결국 밖에서만 살펴보곤 말았다. 결국 들어가서 차 한잔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곳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초등학교를 일찍 명예퇴직한 이완국 선생님은 웃음치료 및 스카프 제작으로 유명한 행복한 쉼터의 대표이다. 애월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차한잔의 여유와 그리고 행복을 전해왔다. 주변의 육지것들(외지인들을 부르는 제주도 속어) 조차도 매우 존경하는 그의 미소는 늘 따스함과 뭔지 모를 안정감을 전한다.

이완국 선생은 행복은 괴롭지 않은 마음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물통을 하나 들고 있어 보자. 그 속에 돈 되는 것이라도 들어있다면 그걸 놓지 않으려고 애쓸 것이다. 손수 직접 들고 있으려면 그리 오래는 못 간다. 너무 오랫동안 들고 있으면 팔이 힘든 것을 넘어 아프고 나중에는 골병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린 왜 그리 놓지 않고 잡고 있는 걸까?

해심재의 옛모습.
해심재의 옛모습.

 

해심재 선생의 손가락은 정말 신비한 묘기와 같이 움직인다. 자유자재로 움직이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인간인지라 우리보다는 훨씬 잘해도 역시 잘 안되는 부분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면서 따라 하다가는 손가락에 ‘쥐’가 나는 경우를 처음 체험하기도 한다. 내 손가락, 나아가 내 몸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서 우리는 왜 남을 조정하려고 드는 것일까? 내 자식도 내 맘대로 못하면서 왜? 아니 나 자신도 못 챙기면서 왜 남까지?

그렇게 괴롭힘을 계속하면 그도 나도 행복하지 않다. 행복은 괴롭지 않은 마음이라는 측면이 온전히 드러난다. 내가 행복하려면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먼저 괴롭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 내가 지적하고 조정하려는 것은 대부분 내가 문제로 여기는 어쩌면 나의 문제이다. 내가 못 고치면서 남에게 고치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까닭에 남 탓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오히려 화를 내게 만드는데 그것이 괴롭기 때문이다.

만약 괴롭힘이 목적이라면 그건 못된 것이다. 그런 못된 어쩌면 미운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인류 보편적인 가치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늘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차한잔이 아닐까? 그와 함께 따스한 마음 먹기 하나도 곁들여야 한다.

다름이 아니라, 늘 문제가 생기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마법의 말을 우리는 떠 올려야 한다. 그런 말을 무의식까지 심어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을 낼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괴로움에서 점점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심재 앞 바위에 새긴 글.
해심재 앞 바위에 새긴 글.

 

해심재 창가로 들여다본 돌에는 색이 칠해져 있다. 문 앞의 돌 위에도 차실의 차포에도 마음에 닿는 글로 가득하다. “행복이란 인생이란 도착지가 아니라 지금 걷는 길 위에 있다” “안녕 언젠가는 그리워질 오늘 하루” “저녁을 먹고 허물없이 찾아가 차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등등.

아쉽게도 앞으로 우리는 해심재를 직접 만나지 못한다. 홍차 전문점 네코야티하우스가 운영하는 밀크티 카페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음료용 고급 페트병에 소용량으로 포장된 십여 종의 믹스된 홍차 아니 밀크티가 우리를 반긴다. 밀크티의 반전에 가까운 대단한 약진이 아닐 수 없다.

홍차에 우유를 넣는 영국의 밀크티와 다르게 로얄 밀크 티(Royal Milk Tea)는 밀크 팬 같은 용기에 우유와 홍차 잎을 함께 넣고 끓이면서 차가 우려져 나오게 하는 것이다. 네팔에서 만나는 “챠이(또는 찌야)”가 그런 종류의 것이다. 일본 교토의 립톤(Lipton)이라는 홍차 샵이 1965년에 개발했다고 알려진 이 차가 페트병의 담긴 밀크티의 원조인 셈이다. 홍차의 대중화에서 오후의 홍차(블랙티)를 비롯해서 로얄 밀크티도 한몫했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커피 시장이 이렇게 크고 고급화된 데는 믹스 커피의 공헌이 크다. 믹스 커피의 개당 가격도 100원에서 300원 전후이다. 영국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홍차 티백의 개당 가격이 40~50원 수준이다. 기호식품인 차를 서민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가격이 낮아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수입 홍차 가격은 비싸다.

커피의 경우 생두 기본세율이 2%, 볶은 원두가 8%에 불과한 것에 반해 홍차에는 40% 관세가 부과된다. 수입 녹차에 붙는 513.6%의 관세에 비해 싸지만, 그래도 만만한 관세는 아니다. 까닭에 차 마시는 인구를 늘이기 위해, 차 시장이라는 전체 파이를 키워야 녹차 시장도 커진다는 측면에서 홍차에 대한 관세를 내리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요즘 녹차를 만드는 우리 장인들은 홍차나 백차, 청차를 가리지 않고 잘 만든다. 아직은 배우는 중이고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라 아쉬운 점도 없지 않지만 일부에서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홍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따라서 우리 홍차를 더욱 장려하기 위해서라도 관세는 거꾸로 올릴 필요도 있지 않나 싶다는 의견도 상존한다.

사실 홍차가 비싼 것은 관세가 아니라 유통 마진이 높은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수입 홍차가 비싸기에 우리 홍차도 거기에 가격을 맞추거나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대중화의 목표는 가격도 큰 문제이지만 어쩌면 커피믹스처럼 맛있는 녹차 믹스 등을 잘 만드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제주도 올티스가 새로 말차로 만든 녹차 라떼의 맛이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 수제차의 잠재력을 무시한 발언일 수 있다. 녹차는 홍차와 다르고 우유와의 상생력이 떨어진다. 우리 녹차는 그냥 우려 마시는 게 정말 최고다. 까닭에 정공법으로 어떻게 하면 그 맛을 제대로 전할까에 대한 화두를 놓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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