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62조 도유유아부녀계(度有乳兒婦女戒)는 유아가 있는 부녀자를 제도하여 구족계를 주면 안 된다는 계율로 전조인 도임부계(度姙婦戒)와 유사한 이유로 제정되었으며 조문 해석의 어려움이 없어 조문만 소개하기로 한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유아가 있는 부녀를 수구족(受具足)하게 되면 바일제이다.”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63조 도비구니불학육법정학녀계(度比丘尼不學六法正學女戒)의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이우기육법(二雨期六法)으로 학계(學戒)하지 않는 정학녀(正學女)를 수구족(受具足)하게 하면 바일
莫思向前 常思於後 常後念善 名爲報身一念惡報 却千年善心 一念善報 却千年惡滅無常已來 後念善 名爲報身從法身思量 卽是化身 念念善 卽是報身 생각을 앞세우지 말고 늘 생각의 뒤로 향하라. 항상 되돌려서 생각을 바르게 하면 이름하여 보신(報身)이라 한다. 한 생각의 악한 과보는 천년의 선한 마음을 쫓아버리고 한 생각 선한 과보는 천 년 동안의 악을 물리친다. 무시 이래로 생각을 돌이켜 바르게 하면 이름하여 보신(報身)이라 한다. 법신(法身)을 사량하면 곧 화신(化身)이 되고 생각에서 생각이 바르면 보신(報身)이 된다.보신(報身)의 개념을 설명함
선재와 보리가 사자궁에 다다르자 그들의 눈앞에는 여덟 개의 대문과 금빛으로 빛나는 십 층의 대 저택이 펼쳐져 있었다.“우와아, 굉장하다. 오빠 담 좀 봐. 다 은이야. 그리고 저 뒤쪽 연못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네!”보리가 사자궁을 둘러보며 환호성을 지르는 사이, 선재 동자는 법보계 장자를 찾아 그의 곁을 수없이 돌며 합장한 후에 말하였다.“거룩하신 이여, 저에게 보살행을 가르쳐 주옵소서. 제가 능히 깨닫고 의지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데 모든 이에게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착한 남자, 선재, 선재야. 내 집을 보라!”법보계 장자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58조는 부주수교계공주사계(不住受敎誡共住事戒)로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교계(敎誡)와 공주사(共住事)에 가지 않으면 바일제이다.”본 조문에서 이야기하는 교계란 비구니가 지켜야 할 팔경법을 말하며 공주사란 승가에서 행해지는 갈마, 혹은 집회를 의미한다. 비구니계가 구족계를 받을 때는 팔경법을 지키는 것이 전제되므로 팔경법에 대한 교계가 있을 시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하고 또 일반적인 회의에도 참석해야 한다는 내용이다.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59조는 반월불청교계계(半月不請敎誡戒)로 조문은 다
名爲淸淨法身 自歸依者 除不善行 是名歸依何名爲千百億化身佛 不思量 性卽空寂思量卽是自化 思量惡法 化爲地獄 思量善法化爲天堂이름하길 청정 법신이다. 자신에게 귀의한다는 것은 선(善)하지 못한 행을 없애는 것이다. 이름이 귀의이다. 어찌하여 천백억 화신불이라 칭하는가? 사량할 수 없는 성품으로 텅비어 고요하기 때문이다. 사량하는 즉시 자기화 된다. 법을 잘못 사량하면 지옥이 되고 바르게 법을 사량하면 천당이 된다. ‘자귀의(自歸依)’라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의 몸을 먼저 떠올리거나 몸 안에 귀의할 대상이 있는지를 살필 것이다. 그리고 만법이 청
선재 동자와 보리는 대흥성으로 내려가면서 선지식들이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복을 짓는 지, 그래서 모든 사람이 의지하고 존경하고 있는지 차츰차츰 알게 되었다.특히 선재는 선지식들을 만나면서 모든 일들이 원만해짐을 알고 그들을 의지함으로 복이 생기며, 받들어 섬김으로 자비로운 심성이 자라고 청정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을 깨달았다.보리는 점점 말이 없어진 선재 동자가 조금 어려워졌지만 갈수록 오빠의 얼굴이 빛나는 걸 보고 있으면 왠지 선지식들을 닮아 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명지 거사는 대흥성 사거리에서 청정한 거위 깃털로 만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54조 수청불만족식계(受請不滿足食戒)는 비구니가 재가자의 공양청을 받아 그 집에서 음식을 충분히 먹지 않고 다른 재가자의 집에 가서 음식을 다시 먹으면 안 된다는 계율로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먼저] 초청을 받아서 만족할 때까지 음식을 받은 후에 [거듭] 단단한 음식을 먹거나, 혹은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면 바일제이다.”재가자가 비구나 비구니를 집으로 초청하여 공양을 대접할 때는 당연히 그 비구나 비구니가 음식을 충분히 먹기를 바란다. 굳이 출가사문이 아니더라도 친구나 친척을 초대하여
何名淸淨身佛 善知識 世人性本自淨萬法在自姓 思量一切事卽行依1)惡 思量一切善事 便修於善行知如是 一切法盡在自姓 自姓常淸淨어찌하여 청정한 법신(法身)이겠는가? 선지식아! 세인의 성품은 본래 스스로 청정하다. 만법은 자기 성품에 존재하는 것이다. 일체를 사량하는 일은 싫어하는 마음에 의지하여 행해지는 것이니 모든 선한 일을 사량하여 선행을 닦음으로써 익혀내야 한다.이와 같이 알지라, 일체법이 다하는 것이 자성이 나타나는 것이니 자성은 항상 청정하다. 청정한 법신(法身)인 비로자나 부처님에 대해 설명하시는 것은 중생 각자가 비로자나 부처임을
선재 동자는 바다에 머무르는 남쪽 해주성을 찾아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여태 내가 만난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보면 마치 봄 날씨 같아서 모든 착한 법의 씨앗을 자라게 하니 나의 스승이 되고, 연못에 비치는 해가 연꽃을 피우게 하고 푸근한 보름달과 같으니 모든 세상을 다 품어주는 나의 사랑이 되고, 온갖 지혜의 꽃과 열매가 되니 나의 희망과 마침내 보살도를 깨닫는 목적지가 될 수 있겠구나!’ 싶으니 그 고마움에 가슴이 벅차오르며 설레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보리도 데리고 잘 공부시켜서 보살도를 이루어줘야 하는 사명감이 생기자 보리의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49조가 축생주를 배우는 금하는 계율이었다면 제50조교타주술계(敎他呪術戒)는 축생주를 가르쳐서도 안 된다는 계율로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축생주를 가르치면 바일제이다.”전 조문에서 비구니는 축생주를 배워서 안 된다고 하였고 본 조문에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타인에게 축생주를 가르치거나 같이 합송하는 등의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내용으로 조문 해석의 어려움은 없다.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51조 유비구승원불문입계(有比丘僧園不問入戒)의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비구가 있는
善知識 惣洎自體 與受無相戒 一時 逐惠能口道令善知識 見自三身佛 於自色身 歸依淸淨法身佛於自色身 歸依千百億化身佛於自色身 歸依當來圓滿報身佛 (已上三唱)선지식이여, 자신의 본체(體)에 스며드는 모양 없는 계를 받으시오. 동시에 혜능의 입의 도를[口道] 따라하라. 친애하는 선지식이여, 자신의 삼신불을 보아라! 자기 색신의 청정법신에 귀의하라. 자기 색신의 천백억화신에 귀의하라. 자기 색신의 당래 원만보신불에 귀의하라. (이상 삼창) 육조단경은 전통적인 수계(受戒)형식을 거부하여 위엄이 넘치는 계단(戒壇)의 격식을 과감히 생략하였다. 무상(無相
선재와 보리가 선견 비구를 만나 슌냐타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혜안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보살의 넓고 크고 깊은 마음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선견 비구도 선재 동자의 무상보리심을 깨달은 것을 알고 칭찬하여 주었다.“착하고 훌륭하구나, 선재야. 이제 보살도를 구하러 가야 하니 내가 명문국의 자재주 동자에게 데려다주겠다. 자재주 동자는 옛날에 문수보살님께 남을 치료할 수 있는 의술과, 궁궐을 짓고 집도 지으며 동산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먹고 살 수 있는 농사짓는 법, 수리와 계산을 할 줄 아는 상술 등 온갖 기술을 두루 다 배운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49조와 제50조는 외도(外道)의 주술(呪術)과 관련된 계율이다. 먼저 제49조 송학주술계(誦學呪術戒)의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축생주(畜生呪)를 배우면 바일제이다.”여기서 말하는 ‘축생주(畜生呪)’란 빨리어 띠라차나윗자(tiracchānavijjā)의 한역으로 외도들이 배우는 무의미한 것을 뜻한다. 단어를 구분해서 보면 띠라차나(tiracchāna)는 ‘짐승’, ‘축생’이란 뜻이고, 윗자(vijjā)는 ‘밝은 지혜’, ‘명지(明智)’, ‘비법(秘法)’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본 조문
삼안국에는 반달곰을 키우는 뿌르나와 그를 사랑하는 아내 반야가 살고 있었다. 뿌르나는 아내를 닮은 예쁜 딸이 생기기를 부처님께 항상 기도했다. 어느 날 기원정사에 계신 부처님이 선견 비구를 불렀다.“선견아, 네가 그동안 나를 도와주고 수행자로서의 모범을 보였으니 이제 너의 혜안으로 삼안국에 내려가 뿌르나의 딸을 구해주도록 하여라. 그리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의 딸을 보살펴주도록 하여라.”“예, 그러하겠습니다.”오랫동안 부처님을 모셨던 선견 비구의 잘생긴 얼굴은 꼭 부처님을 닮아 있었다. 그는 삼안국 숲속을 거닐며 뿌르나의 반달곰 동
開口卽說人是非 爲道違背 着心着淨 却是障道因緣今記汝於一切 是此法門中 何名座禪 此法門中一切無碍 外於一切境界上 念不去爲坐 見本姓不亂爲禪입을 여는 즉시 사람의 시비(是非)를 말한다. 그러면 도(道)에 위배 된다. 마음에 집착하고 정(淨)에 집착하면 도리어 도(道)에 장애를 일으키는 인연을 짓는다. 이제 기억해 보라! 여러분은 모든 법문 중에 무엇을 선(禪)의 자리(:座)라 하겠는가? 이 법문에 일체의 걸림이 없어야 한다. 밖으로는 일체의 경계상에서 생각을 물리치려 하지 않는 것을 ‘좌(坐:앉다.)’ 라하고 본래 성품을 보기에 산란치 않음을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45조 불영작화해투쟁사계(不令作和解鬪諍事戒)는 비구니들에게 분쟁이 생겼을 때 화해를 시켜야 한다는 계율로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오라, 존매(尊妹)여, 이 쟁사를 없애 주시오’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낙(諾)’이라 동의하면서도 그 비구니에게 장애 없이 쟁사를 없애지 않거나 또한 없애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바일제이다.”비구니 간 다툼이나 쟁사가 발생하여 승가에서 그 일을 중재해 주기를 요청하였을 때 허락[諾]을 하고 중재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계율이다. 어떤 단체나 조직을 막론
世人離見 不起於念 若無有念 無念 亦不立 無者 無何事念者何物 無者離二相諸塵勞 眞如是念之體 念是眞如之用姓起念 雖卽見聞覺之 不染萬鏡而常自在세상 사람들이여, 견해를 여의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생각을 짓지 않으면 생각은 없는 것이니 ‘무념’ 또한 세울 수 없다. ‘없음’은 무슨 일이 없다는 것인가! ‘생각’이란 어떤 물건인가? ‘없다.’는 것은 모든 번뇌에서 두 가지의 상을 여읜 것이다. 진여는 생각의 체(體:본체)이고 생각은 진여의 용(用:쓰임, 작용)이다. 본성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즉시 보고, 듣고, 알더라도 만물 경계에 물
보리는 선재 동자의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고 힘을 꾹 주면서 말했다.“오빠, 나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날 버리고 가지마.”선재가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널 버렸어?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다고 했잖아.”“그 말을 어떻게 믿어? 나는 정말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다니까.”그러자 갑자기 선재가 가던 길을 멈추고 화난 표정으로 보리에게 말했다.“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네게 나를 소개해준 문수보살님이나 부처님도 못 믿겠다는 소린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부처님께서 네게 화엄경약찬게의 53 선지식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41조는 관왕궁원림계(관왕궁원림계)로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왕궁이나 회화당(繪畵堂), 원림(園林), 유원(遊園), 연지(蓮池)를 보기 위해 가면 바일제이다.”율장을 보다 보면 부처님께서 좀 심하셨다고 느낄 정도의 계율들이 보이는데 본 조문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한다. 비구니가 왕궁이나 회화당, 동산이나 연꽃이 핀 연못 등을 보기 위하여 가면 바일제를 범하게 되는 것으로 요즘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행동들이 범계행위인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옛 궁궐이나 수목원 심지어 불교의
無住者 爲人本性 念念不住 前念念念 後念念念相讀 無有斷絶 若一念斷絶 法身卽是離色身念念時中 於一切法上無住一念 若住念念卽住名繫縛於一切法上 念念不住 即無縛也 以無住爲本머무름 없음은 사람의 본래의 성품이다. 생각에 생각이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앞선 생각의 생각 생각이 뒤이은 생각의 생각 생각과 서로 셈을 하게 되어 단절됨이 없게 된다. 만일 한 생각이 끊어지면 법신은 곧 색신을 여읜다. 생각에서 생각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볼 때 모든 법에는 한 생각도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생각에 생각으로 머무르면 즉시 이름에 계박 된다. 모든 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