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모이네 동산의 자재주 동자

선재와 보리가 선견 비구를 만나 슌냐타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혜안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보살의 넓고 크고 깊은 마음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선견 비구도 선재 동자의 무상보리심을 깨달은 것을 알고 칭찬하여 주었다.
“착하고 훌륭하구나, 선재야. 이제 보살도를 구하러 가야 하니 내가 명문국의 자재주 동자에게 데려다주겠다. 자재주 동자는 옛날에 문수보살님께 남을 치료할 수 있는 의술과, 궁궐을 짓고 집도 지으며 동산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먹고 살 수 있는 농사짓는 법, 수리와 계산을 할 줄 아는 상술 등 온갖 기술을 두루 다 배운 동자라서 어른들도 무시하지 못하는 아이란다. 그가 살고 있는 모이네 동산에는 동자들이 만 명이나 모여 살고 있지.”
“엥! 마 – 안 명, 우와, 대단하다.”
보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선재는 선견 비구의 말에 동자지만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 그의 한량없는 보살도를 배우고 싶어졌다. 모이네 동산에 도착하고 보니 여러 명의 동자가 모래사장에서 씨름하고 있었다.
“으랏차차, 이래도 안 넘어갈 거야?”
붉은 명주실로 머리 상투를 질끈 묶은 자재주 동자가 친구를 넘어뜨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놀고 있는 거는 여전하구만. 나는 이제 임무를 마쳤으니 돌아가겠네. 잘들 있게나!”
“어? 선견 스님이시네, 잘 계셨어요? 슌냐타 누나는요? 병원은요?”
선견 비구는 물어볼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고 돌아서서 손을 흔들었다.
“예에, 그럼 안녕히 가세요!”
자재주 동자가 폴짝폴짝 뛰면서 배웅하고 보리를 쳐다본다.
“누나는 또 누구야?”
선재가 보리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으응, 우리는 자재주 동자님께 보살도를 배우러 왔습니다, 요.”
“큭큭, 동자님! 그리고, 왔습니다, 요? 큭큭! 이름이 뭐야? 그리고 형, 말 높이지 않아도 돼.”
“아, 그래, 그러면…, 나는 선재라고 해. 얘는 보리야.”
“흥흥흥! 문수보살님이 말씀하시던 누나구나, 화엄경 약찬게를 삼 년 동안 매일 노래하듯 염송했다며? 음, 화염경 약찬게가 4.3조에 110줄이니까 770개, 일 년이면 770 곱하기 365는 281,050개. 거기다 3년이면 글자 수는 843,150개네.”
보리와 선재는 그의 암산 실력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선재는 생각했다. 문수보살님께 배웠다는 게 사실이구나, 겉으로 봐서는 그냥 천진난만한 동자인데. 정말 존경심이 저절로 생기네. 선재는 자기도 모르게 두 손 모아 합장하고 고개 숙여 절을 하였다. 그때 저만치서 두 동자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자재주 동자를 찾아왔다.
“너희들은 어디서 왔어? 또 왜 다쳤어?”
두 동자가 바지를 걷어 시퍼렇게 피멍이 든 다리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파키스탄에서 왔는데 나는 안나푸르나고 얘는 남동생 마나슬루야, 오다가 쌍봉낙타를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를 했더니 자기를 놀리는 줄 알고 우리한테 침을 뱉으면서 물었어.”
자재주동자는 그들을 동굴로 데려가서 약초를 발라 주며 말했다.
“낙타가 목이 말라서 예민해졌나 보네. 평소에는 순한데 물을 못 먹어서 그래.”
“맞아, 낙타주인도 그랬어. 먹을 게 없어 밀짚과 선인장만 먹더니 목이 말라 그런 거 같다며, 오아시스로 데려가 물을 주는데 백 리터 통에 담긴 물을 다 먹더라고, 대단하지!”
“근데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자재주 동자가 물었다.
“낙타주인이 가르쳐 줬어. 여기 가면 친구들도 많고, 먹고 살게 해준다고.”
보리와 선재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부모님은 어디 계셔?”
“……”
“돌아가셨구나.”

삽화=오연진 화백
삽화=오연진 화백

 

보리는 동자들이 불쌍해서 두 팔을 벌려 꼭 껴안아 주었다. 자재주 동자가 안나푸르나를 보더니 ‘풍요의 여신’ 마나슬루를 보고는 ‘영혼의 산’이라면서 부모님은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산의 짐꾼이라고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
보리가 묻자 선재 동자도 궁금한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안나푸르나와 마나슬루는 히말라야의 산14좌에 들어가는 이름이야.”
“14좌?”
그러자 자재주 동자가 눈을 감고도 책 읽듯이 말했다.
“응. 1, 에베레스트. 2, K2(갓윈 오스틴), 3, 칸첸중가. 4, 로체. 5, 마칼루. 6, 초오유. 7, 다울라기리. 8, 마나슬루. 9, 나인가 파를 분야. 10, 안나푸르나. 11, 가셔브룸①. 12, 브로드피크. 13, 가셔브룸②. 14, 샤샤(시샤팡마). 그러니까 8좌가 마나슬루, 10좌가 안나푸르나야.”
“그래서 부모님이 풍요의 여신과 영혼의 산을 닮으라고 지어주셨구나. 근데 짐꾼은 또 뭐야?”
“말 그대로 높은 산에 올라갈 때 짐이 많으니까 들어주는 짐꾼이지, 산이 험하고 높은데다 설산이라 산사태가 자주 나거든.”
그제야 마나슬루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아빠는 산 중턱에, 엄마는 산 아래 텐트 친 곳에 묻혀있어. 아직 눈 속에 파묻혀 있어서 찾지 못했어.”
안나푸르나가 동생 마나슬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자재주 동자를 찾아가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도 가르쳐 준다고 해서.”
자재주동자는 말없이 그들을 모이네 동산 아래 넓은 연못으로 데리고 갔다. 동산 위 바위에서 내려오는 물은 맑고 차갑고 깨끗했다. 그리고 그 속에 연꽃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이 연못에서 피는 연꽃은 분홍색, 하얀색, 파란색, 노란색 연꽃들이야.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연꽃들을 키우면, 팔아서 너희들을 먹고 살게 해줄 수 있어,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인 거지. 나도 사실은 문수 보살님한테 다 배운 거야. 우리 꽃은 곱디고운 색깔과 싱싱해서 온 동네 사찰에서 다 사 가거든. 또 꽃들에게 항상 웃으며 잘 크라고 노래하듯 기도로 키우고 있어.”
보리와 선재는 어린 자재주 동자가 총명하고 지혜롭기가 어른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우러러보았다.
“근데 숫자라든가 이름들을 어떻게 그렇게 잘 외워?”
어깨를 으쓱하며 자재주 동자가 말했다.
“나는 숫자는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어. 바닷속에 사는 물고기 숫자라든가, 모래사장에 똥을 싸고 가는 괭이갈매기의 수라든가, 바위 속에 숨어있는 소라게가 몇 마리인지, 고동이나 조개껍데기의 수 같은 거.”
“정말이야?”
보리가 발을 동동 굴리며 물었다. 선재는 갑자기 부처님이 모습을 바꾸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재주동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척, 세웠다. 보리가 말했다.
“그럼, 바닷속에 사는 물고기는 전부 몇 마리야?”
“어떤 물고기? 고래? 상어의 수? 아니면 고등어? 도미?”
“아니, 전부 다.”
“음 물고기들 다! 일백락차가 한 구지요, 한 구지가 한 아유타, 아유타는 나유타, 나유타는 빈바라, 빈바라는 한 궁갈라, 그리고 울파라, 울파라가 한 파드마, 파드마는 아승지, 아승지는 취, 취는 비유, 비유는 무수, 무수는 셀수 없음, 셀 수없음은 곱 셀 수 없음, 곱 셀 수 없음은 곱곱 셀 수 없음이야!”
“머? 곱곱 셀 수 없음? 우와 ! 정말 기가 막힌 셈이네.”
보리가 손뼉을 짝짝 치며 말했다. 이어서 선재가 물었다.
“모이네 동산 모래사장의 모래는 전부 몇 알갱이야?”
“그거야 쉽지. 곱곱셀수 없음에 일컬을 수 없음. 일컬을 수 없음에 곱 일컬을 수 없음. 그리고 생각할 수 없음, 곱 생각할 수 없음에 헤아릴 수 없음. 헤아릴 수 없음에 곱 헤아릴 수 없음. 그 다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이야.”
“하하하, 하하하, 모래 알갱이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데, 맞는 말이긴 한데 왜 웃음 이 나지?”
“그러면 백사장에 똥을 싸고 가는 갈매기는?”
선재 동자는 웃음을 꾹 참고 물었다.“2,954마리! 바위 속 소라게는 369,172개, 조개껍데기는 10만 4천 108개. 아 ! 지금 갈매기가 또 똥 싸고 간다. 2,955마리!”
보리와 선재가 너무 놀라 입을 딱 벌리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자재주 동자가 말했다.
“나는 보살들이 산수하는 법으로 한량없는 유순의 광대한 모래더미를 계산하여 그 안의 알맹이 수를 다 알고, 세상에 있는 넓고 좁고 크고 작은 것들의 이름과 중생들의 업과 보살, 진리의 이름을 다 알고, 여러 가지 신통력과 지혜의 광명을 알고 있지만 그 수행에 있어 보살도를 깨우치거나 바라밀다의 경계는 알지 못해. 문수보살님이 일러 주셨는데 남쪽 해주성에 구족 우바이를 찾아가서 그 답을 얻어보라고 하셨어.”
선재 동자는 나이는 어리지만 만 명의 동자를 먹여 살리고 공부를 가르쳐 주는 자재주 동자의 무한한 능력에 눈물이 나올 만큼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저 모습은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부처님의 화신인 것 같아! 그게 아니면 달리 생각할 수가 없어.’
여러 동자에게 둘러싸여 손을 흔들고 있는 그의 머리 위로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아우라처럼 빛이 났다. 보리와 선재는 앙모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삼배를 올린 뒤 남쪽 해주성으로 길을 떠났다.

-2022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 부문 입상자

【각주】

이구동성 : 입을 모아 똑같은 소리로 말함.
14좌 : 히말라야 산맥의 8,000미터가 넘는 14개의 봉우리.
설산 : 눈으로 덮힌 산.
유순: 거리를 재는 기본 단위, 13,5km. (통상4km에서 23km 추정)
앙모 : 우러러 그리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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