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슌냐타의 선견 비구

삼안국에는 반달곰을 키우는 뿌르나와 그를 사랑하는 아내 반야가 살고 있었다. 뿌르나는 아내를 닮은 예쁜 딸이 생기기를 부처님께 항상 기도했다. 어느 날 기원정사에 계신 부처님이 선견 비구를 불렀다.
“선견아, 네가 그동안 나를 도와주고 수행자로서의 모범을 보였으니 이제 너의 혜안으로 삼안국에 내려가 뿌르나의 딸을 구해주도록 하여라. 그리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의 딸을 보살펴주도록 하여라.”
“예, 그러하겠습니다.”
오랫동안 부처님을 모셨던 선견 비구의 잘생긴 얼굴은 꼭 부처님을 닮아 있었다. 그는 삼안국 숲속을 거닐며 뿌르나의 반달곰 동산을 살펴보았다. 이미 배가 불룩해진 반야와 함께 뿌르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곰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여보, 얘도 나처럼 배가 불룩하네요. 우리 아기도 이제 곧 세상에 나오게 생겼는데, 새끼 반달곰이랑 우리 아기랑 친구하면 되겠어요.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럼, 그럼. 우리 아기는 당신 닮아서 착하고 예쁠 거야. 아무쪼록 아기가 태어나면 정성껏 잘 키워 봅시다. 근데 정말 딸일까?”
“당신이 열 달 동안 늘 기도 했으니 부처님께서 예쁜 공주님을 주지 않으실까요? 우리 부처님은 자비로우시잖아요.”
“그렇지 진짜 잘생기고 늠름하시고 자상하시고….”
“아이고, 말로 다 표현이 안 되네, 호호호….”
그때 선견 비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척 하면서 뿌르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시오! 날씨가 참 좋습니다.”
“예, 스님. 오늘은 날씨도 따뜻하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서 반달곰들이 놀기 좋은 날씨네요.”
반야가 보름달같이 환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뿌르나는 선견 비구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부처님과 똑같이 닮은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부처님 칭찬을 많이 했더니 부처님이 내려오신 건가?’
선견 비구가 그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나는 선견이라고 하는 스님이요. 반야보살님을 보니 곧 아기가 태어날 것 같군요.”
“아, 예. 근데 제 아내 이름이 반야인 것을 어떻게 아셨나요?”
“하하하! 당신이 매일 기도하지 않소. 우리 아내 반야 건강하고, 그리고 우리 아기 무사하게 해달라고요.”
“그랬지요, 근데 어디서 들으셨나요?”
“나는 부처님 심부름을 왔습니다. 이제 곧 태어날 당신 딸을 잘 보살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뿌르나와 반야는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아이고,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부처님의 자비로우심에 눈물이 나려고 해요. 우리 가족을 돌봐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반야가 얼굴이 빨개지면서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태어날 아이의 이름은 슌냐타라 지으시고 반야보살님은 아기에게 주고 싶은 귀한 선물을 잘 싸서 작은 유리병에 담아 햇빛이 들지 않는 찬장 구석진 곳에 놓아두시오.”

삽화=서연진 화백
삽화=서연진 화백

 

오년 뒤, 뿌르나와 반야는 새끼 곰들이 반달곰 동산 끝자락 절벽 쪽으로 뛰어가는 것을 막으려다 사고로 함께 떨어져 죽었다. 하지만 친척들은 아무도 슌냐타를 돌보지 않으려 해, 절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 맡겨졌다. 슌냐타는 아빠의 기도대로 예쁘고 착하게 잘 자라 어엿한 아가씨가 되었다.
열아홉 살이 되던 날, 선견 비구가 슌냐타를 불렀다.
“슌냐타,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앞으로 무얼 할 지 생각해봐. 그동안 반달곰 동산은 절 식구들이 돌봐 왔지만 다시 네게 돌려줄게.”
슌냐타가 슬픈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스님. 저는 어릴 때 아빠 엄마랑 동산에서 즐겁게 놀았던 추억만 간직하고 싶어요. 뛰노는 곰들을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 너무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리고 세상이 참 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삭발염의하고 스님이 되고 싶어요.”
선견 비구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동네에서 슌냐타가 삭발염의 후, 스님이 된다는 소문이 돌자 친척들이 그녀를 찾아왔다.
“안녕, 나는 작은 아빠야, 이름은 두흐카란다. 형수님 닮아서 예쁘게 잘 컸네.”
“안녕, 나는 마라 고모야. 이십 년 지났지만, 지금부터라도 친하게 지내자.”
“뭐? 반야 닮았어? 뿌르나 오빠 닮았네. 치! 나는 우나 고모야”
슌냐타는 처음 만난 삼촌과 고모들 입에서 부모님 이름이 나오는 게 듣기 싫었지만 꾹 참고 물었다.
“근데, 무엇 때문에 절 만나러 오셨나요?”
“으응, 그게, 차츰 알게 되겠지만….”
“그래 오늘은 그만하고, 네 얼굴 보는 걸로 충분해. 그만 가자!”
그러나 그들은 열흘이 멀다 하고 찾아와 반달곰 동산을 휘젓고 다니면서 슌냐타를 괴롭혔다. 결국 두흐카 삼촌이 얼굴을 무섭게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야, 슌냐타. 너 이제 중이 된다고 하였으니 여기 집이랑, 곰동산 필요 없잖아. 내가 관리 할테니 내게 넘겨.”
“아니 오빠,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셋이 똑같이 나눠야지, 왜 오빠가 다 가져?” 우나 고모가 두흐카 삼촌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그러자 마라 고모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손가락질을 했다.
“똑같이는 왜 똑같이야, 네가 막내이니까 제일 조금 받아야지.”
“뭐라고? 언니면 다야! 조금 받으라는 게 말이 돼?”
“그럼, 너는 집을 갖고, 오빠랑 나는 반달곰 동산을 반으로 나눠 가지자.”
고모와 삼촌들의 욕심 싸움 하는 것을 보고 슌냐타가 조용히 말했다.
“정말 슬프네요. 부모님 돌아가시고 아무도 저를 키우지 않겠다고 할 때도 슬펐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속상하고 슬퍼요. 저는 여러분들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 주세요.”
“어린 것이 미쳤나? 어른을 몰라보고. 한 대 맞아야 정신 차릴래? 어디서 가라마라야!”
“맞아요. 죽지 않을 정도로 때려줍시다.”
“흥, 맞아 죽어도 싸지. 에잇!”
마라 고모와 우나 고모가 두흐카 삼촌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슌냐타는 그들에게 몹시 맞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캄캄한 하늘에 한줄기 빛이 보이더니 반야보살이 그 빛을 타고 내려왔다.
“아가! 일어 나거라. 우리 딸, 예쁘게 잘컸네. 선견 스님이 잘 돌봐주셨구나... 고마우신 분, 자상하신 분, 다 부처님 덕분이야! 아빠가 기도 많이 했거든. 슌냐타! 일어나. 그리고 찬장 구석진 곳 유리병 찾아봐. 귀한 선물이 있어. 아가, 내 아가야. 그만 일어나렴.”
으으, 으음. 슌냐타가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엄마! 엄마야?”
그러나 눈을 뜨자마자 한줄기 빛은 사라졌다. 그녀는 몸을 질질 끌며 찬장 쪽으로 기어갔다. 하지만 몸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기진맥진하여 다시 눈을 감으니 사라진 빛속에서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 보고 싶었어요. 왜 이제야 나타나셨어요?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었는데 왜 꿈길로 안오셨어요?”
슌냐타가 흐느끼며 말했다.
“꿈속에서라도 만나고 싶었지. 그렇지만 아가야, 꿈에서 보고 나면 더 보고 싶어질까봐 두려워서 꿈길을 갈 수가 없었어. 보고 싶은 마음, 하늘보다 더 커서 눈을 감고 있었지. 내 소중한 아가! 보고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었던 내 딸! 널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단다.”
“날 데려가요 엄마!”
“그건 안 된다. 넌 좀 더 커서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지 알아야 해.”
“엄마,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삼촌과 고모가 날 때려서 흑흑.”
“알고 있단다. 그 사람들은 다음 생에는 어둡고 습한 땅속, 지렁이 같은 벌레로 태어날 거야. 불쌍한 사람들이지, 욕심에 눈이 어두워 하나 밖에 없는 조카를 때리다니….”
“엄마, 엄마!”
슌냐타는 엄마를 힘껏 껴안았지만 연기처럼 빛속으로 사라져갔다. 눈물을 닦고 한참 지난 후, 찬장 구석에 오래된 유리병을 찾아냈다. 뚜껑을 열어보니 콩알같은 게 한지에 싸여져 있었고 작은 편지가 들어 있었다.
- 안녕, 슌냐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아기에게 귀한 선물을 준비하라고 해서 아빠랑 의논한 끝에 준비한 거란다. 반달곰의 웅담가루야, 백일동안 찌고 말려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게 정성들여 만든 거야. 네가 커서 이것을 유용하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동산 앞 보리수나무 아래에 묻힌 항아리를 찾아봐.-
슌냐타는 웅담가루를 손으로 찍어 먹어 보았다. 약간은 비릿하고 썻지만 기운차리는데는 도움이 되었다. 유리병을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일어나 선견비구를 찾아갔다.
“스님, 제가 친척들을 이십여 년 만에 만나면서 반갑고 좋기보다 비통하고 슬펐습니다. 그들과 재산 싸움은 하기 싫고, 모든 것이 무상함을 느꼈습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선견비구가 말했다.
“그래서 네 이름이 슌냐타란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제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 나 대신 네가 부처님 시봉을 하거라.”
“부처님 시봉을 어떻게 하면 됩니까?”
“꼭 부처님 옆에서 시봉을 하는 것만 시봉이 아니고, 무상보리심을 내어 부처님 이름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주는 거지. 무주상보시.”
“예, 혜안, 자안, 법안을 두루 갖추신 선견스님이시여, 꼭 그러겠습니다.”
그 후 보리수나무 아래 항아리는 전염병으로 힘든 사람들과 지진이 나서 어려워진 사람들에게 쓰여졌다. 반야보살이 시집올 때 받은 금덩어리였으며 반달곰 동산은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세워졌다.
‘뿌르나와 반야 병원’

-2022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

【각주】

뿌르나 : 원만한 지혜의뜻을 가짐.
반야 : 지혜
슌냐타 : 공 (비어있음).
찬장 : 반찬을 넣어놓는 장롱.
삭발염의: 머리를 깎고 잿빗옷을 물들여 입음.
두흐카 : 욕심이 지나친 사람.
마라 : 더러움으로 물든 것.
우나 : 어리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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