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41~44조

재가자 위해 일하는 행위 바일제 해당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41조는 관왕궁원림계(관왕궁원림계)로 조문은 다음과 같다.

“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왕궁이나 회화당(繪畵堂), 원림(園林), 유원(遊園), 연지(蓮池)를 보기 위해 가면 바일제이다.”

율장을 보다 보면 부처님께서 좀 심하셨다고 느낄 정도의 계율들이 보이는데 본 조문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한다. 비구니가 왕궁이나 회화당, 동산이나 연꽃이 핀 연못 등을 보기 위하여 가면 바일제를 범하게 되는 것으로 요즘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행동들이 범계행위인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옛 궁궐이나 수목원 심지어 불교의 상징인 연꽃이 핀 연못을 보는 것을 목적으로 이와 같은 장소에 가면 계를 범하는 것이니 계율을 잘 지키고 승려 생활하는 것은 현재에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42조 좌와고상교각상계(坐臥高床交脚床戒)는 비구니가 높은 의자나 침상 혹은 아름답게 장식된 상의 사용을 금하는 계율로 조문만 소개하기로 한다.

“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고상(高床) 혹은 교각좌상(交脚座床)을 사용하면 바일제이다.”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43조는 방적계(紡績戒)로 조문은 다음과 같다.

“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실을 자으면 바일제이다.”

본 조문은 비구니가 길쌈을 하면 바일제라는 이야기인데 역시 현재 승려들의 생활상과는 거리감이 있는 듯하다. 본래 계율 제정의 의미를 본다면 비구나 비구니의 생활은 주로 걸식이며 재가자의 보시를 받아서 필요한 물품을 공급받기에 비구니가 직접 실을 짜거나 그와 같은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하셨던 백장회해 선사를 굳이 소환하지 않더라도 걸식과 시물(施物)로 생활하기 힘든 현시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농사를 짓거나 이런저런 노동을 하는 승려들의 불만이 들릴 것 같다. 신도들에게 의지하지 않거나 신도들의 시주만으로는 도저히 생활이 불가능한 승려들은 자급자족을 하거나 어느 정도의 노동을 감수하여야 한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승려의 노동은 허락되지 않았다. 일견(一見) 당시의 수행상을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삼의(三衣)와 일발(一鉢)을 갖추고 극히 제한된 개인 소유물을 지니며 범행(梵行)을 닦던 비구, 비구니는 수행자로서 보시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었고 그들에게 하는 보시하는 재가자들로 하여금 보시 공덕을 짓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44조 여속가작무계(與俗家作務戒)는 더더욱 해서는 안 되는 행위였다. 제44조의 조문은 다음과 같다.

“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재가자를 위하여 일을 하면 바일제이다.”

《사분율》에서는 본 조문을 “만약 비구니가 백의(白衣)를 위하여 심부름을 하면 바일제이다.”라고 하였으며 《오분율》에서는 “만약 비구니가 음식 때문에 백의가(白衣家)에서 일을 하면 바일제이다.”라고 하였다. 설령 음식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재가자의 집에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은 그나마 수긍이 되는데 그러면 요즘 같은 세상에 사회복지 차원에서도 ‘재가자를 위해 일을 하면 계를 범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가진다. 그래서 누누이 하는 이야기지만 계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계율을 바탕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동방불교대학교 교수ㆍ스리랑카 국립 켈라니야대학교 박사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