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은 2월 26일 교무국장에 보성(전 재경국장)을, 사서과장에 원학스님을 임명했다.
연두기자회견을 보고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은 1월 25일 연두백서를 발표하고, 1월 31일에는 연두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 내용은 종단권력구조개편과 제도개혁, 민주적인 직선제, 종단조직의 현대화에 의한 사회 복지 활동 강화’이며, 대외적으로는 ‘종단위상제고와 이미지변신, 대사회활동과 이웃종교와의 연대, 국제 불교교류와 해외포교활동’이 주류였다. 총무원장스님은 기자회견 서두에서 “한국불교태고종은 한국불교계에서 1만 종도와 4천 사암을 포용하고 있는 큰 종단이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교계 일부언론으로부터도 편파보도에 직면해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은 2월 14일 오후 종무회의가 끝나고 그동안 사서국장으로 모범 근무한 자각스님을 사서실장으로 승진, 발령하고 사령장을 수여했다. 신임 사서실장 자각스님은 출가이후 비구로서 수행정진해 오고 있으며, 한동안 전국을 만행하면서 두타행을 해오다가 제26대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총무원 사서실에 근무, 국장을 거쳐서 이번에 사서실장으로 승진했다. 자각 사서실장은 “총무원장스님께서 앞으로 남은 임기 2년7개월 동안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칠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서 수행하고 기도하는 마음과 자세로 모시면서 사서업무에 충실하겠다”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은 2월 14일 법장스님을 한국불교신문 편집국장으로 임명했다. 법장스님은 “종단이 안정되고 초석을 놓는데,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법장스님은 대구. 경북 권에서 전법포교에 매진하고 있으며, 칼럼을 발표해 오는 등 문필활동을 해왔다.법승
태고종은 올해로써 창종 49년이 된다. 불교조계종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거의 60여년의 성상이다. 약 반세기의 역사가 쌓이는 동안, 현대 한국불교에서 태고종은 굴지의 선두종단으로 성장, 발전했다. 사실은 창종 반세기동안 사찰 수는 2천여 개에서 4천여 개로 증가했으나 승니(僧尼) 수는 그렇게 많이 증가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창종 당시 7천여 승니였다. 현재 1만 종도라고 하지만, 교임 전법사를 제외하면 실제 승니 수는 창종 당시와 비슷한 숫자가 아닐까 한다. 승니의 질적 수준은 형편없이 하락했다. 태고종은 지금과 같은 권력구
정연(추희자) 법우는 1월 9일 동방불교대학 발전성금으로 1천 만 원을 기탁했다.평소 모범 학생의 불교학 연마에 매진하고 있는 정연 법우는 “인생난득(人生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는 말이 있듯이 불교를 만나서 무상대도(無上大道)의 문에 들어선 것을 무한한 법열(法悅)을 느낀다.”고 하면서, “하고 많은 인연가운데 동방불교대학과의 인연으로 새 삶의 목표가 생기고, 전법포교의지를 갖게 되었다.”면서 “앞으로도 더욱더 정진하여 면학에 힘쓰겠다.”고 했다. 무주상 보시를 한 것인데, 발표를 하지 말라고 겸손해 했다. 정연 법우는 경
태고종 호법원장 지현스님은 1월 3일 오전 11시 총무원 호법원 사무실에서 지행스님(비봉사 주지, 충북 제천)을 초심원 운영국장에 임명했다.지행스님은 법광스님을 은사로 2000년 득도출가 했으며, 2004년 봉원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다. 2004년에는 동방불교대학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에는 중앙승가강원 사교과를 졸업, 2012년에는 중앙승가강원 대교과를 졸업했다. 현재 제천 비봉사 주지를 맡고 있다.
세계 불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사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텐진 빠모(Tenzin Palmo) 비구니 큰 스님은 세계불교여성협회 한국지부인 샤카디타 코리아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잠시의 휴식도 없이 일산 금륜사(주지본각스님)에서 특별법회를 가졌다.텐진 빠모 스님은 영국 출신으로 20세에 인도로 건너가 캄뚤 린포체(Khamtrul Rinpoche)에게 배우고 12년간 수행 후에 히말라야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다시 12년간 독거 수행으로 스승의 조언에 장좌불와로 용맹 정진하였다.스님은 특별법문에서“우리가 육바라밀을 오해해서 안
아열대의 제주도는 예전 제주도가 아니었다. 제주 특별 자치도는 우리나라 행정구역에서 좀 특별한 지역이다. 제주시도 국제자유시이다. 그만큼 제주 특별 자치도는 국제교류, 평화의 섬 그리고 관광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오늘의 제주 특별 자치도가 된 데에는 간단한 역사가 있다. 해방이 되면서 1946년 도제(道制) 실시로 전남 관할에서 벗어나게 되었고(2군 1읍 12면), 1955년 9월 1일 제주읍이 시로 승격하였다(1시 2군 12면). 1956년에는 서귀·대정·한림 등 3면이 읍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한림읍 서부에 한경면(
태고종 충북교구 종무원은 12월 13일 오전 10시 30분 종무원사에서 제78회 임시 지방종회를 개최하고, 제16대 종무원장에 단독 입후보한 현 종무원장인 도안스님을 제16대 종무원장에 만장일치로 재추대했다. 행정부원장에는 덕공스님을 재무부원장에는 진화스님을 선출했다. 재추대된 제16대 종무원장 도안스님은 재추대 인사말에서 “재추대해주신 종회의원 스님들께 감사드린다.”면서 “지난 4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충북교구 산하 종도들의 화합과 활동을 더 강화하여 모범 교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또한 “이제 태고종은 크고 작은
덕암 대종사의 열반 제15주기 다례재를 12월 6일 불이성 법륜사에서 봉행했다. 불이성 법륜사는 덕암 대종사의 숨결이 스며있는 불도량이다. 골목길 종회를 열고 있는 모습을 본 덕암 대종사의 심정이 여하할까를 생각해 봤다. 대륜 종정을 비롯해서 덕암 종정께서 일구신 불이성 법륜사와 태고종, 둘이면서 하나다. 한국불교 현대사의 중심적인 현장에서 이런 소란을 피운다는 것 자체가 태고종도로서 자격이 없다. 사필귀정이란 말이 있듯이 애종의 뜻이 없이 움직이는 해종자들은 발본색원이 되겠지만, 이런 행위는 덕암 대종사의 유지와는 전혀 다른 행보
도광스님!이제 방하착하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종단현안보고가 있던 올 여름 어느 날 대불보전에 들어서면서, 가사장삼을 수하지 않은 것을 의식한 듯, “선당에 앉아서 참선하다가 오느라고 평상법복으로...”라고 하면서 상석에 착석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때 속마음으로 “아! 참으로 종회의장 스님이 다 내려놓고 화두와 씨름하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나는 도광스님을 한 때 좋아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누구도 하지 못하는 말을 감히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스님으로 생각해서였고, 풍채
지암 원로스님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소탈하게 총무원장 스님 일행을 대한다. 마치 천진 동자처럼 이런저런 말씀을 거리낌 없이 하신다. 말씀 가운데서 절 집에서 오래 사신 역사가 묻어난다. 팔순(八旬)을 넘기신 원로스님인지라, 거침이 없으시다. 젊은 후학들을 위해서 좋은 말씀 해 달라고 하자,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하신다. 한참 뜸을 들인 다음, “이젠 후학들이 활동 해야제!”라고 말씀했다. 아마도 1차적으로는 상좌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 같고 둘째는 종단의 후배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으로 여겼다. 문하에 상좌는 20여명이며, 맏
우리 종단에도 비구니 스님들이 1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 정말 자랑스러운 분들이다. 승가란 크게 보면 4부 대중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승가의 실제적인 주역은 출가 2부중이다. 비구 비구니는 승가의 양 기둥과도 같은 존재이다.역사적으로 최초의 비구니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부처님의 이모인 양모(養母)인 마하파자파티(Mahapajapati)이다. 우리말로 풀어서 설명하면 ‘대애도(大愛道)’란 의미이다. 진리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대애도’ 비구니의 일생을 소개하려면 끝도 한도 없다. 간략하게 말한다면, 세존이 성도하고 몇 년 후
편백운 총무원장스님 취임 1주년 기념법회가 지난 9월 28일 태고종 총무원 3층 대불보전에서 종단 중진 대덕 간부스님들과 종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지난 10년간 종단부채와 지도력 부재로 인한 내홍과 누적된 피로감을 씻고, 종단이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종도들은 이제 안심하고 편백운 총무원장 체제를 신뢰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분위기였다. 취임1주년에 지나지 않지만, 편백운 집행부는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첫째는 종단부채상환이다. 둘째는 밖으로 돌던 사회복지법인의 종단환수다. 재단법인 태고원도 환수작업이
법원당 벽파 대종사(세수 86세, 승랍 67세, 강원도 영월 불정사 조실)가 9월 28일 오전 12시에 불정사에서 좌탈입망했다. 스님은 1951년 경기도 안성 청룡사에서 입산 득도한 이래, 제방 사찰에서 수행, 정진했다. 한국불교 태고종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승가강원 1기생이기도 하다. 태고종 강원교구 종무원의 여러 직책을 두루 거쳤으며, 태고종 원로의원을 역임했으며 입적할 때까지 불정사에서 주석하면서 전법포교활동을 해 왔다. 시봉 각해와 지혜에 의하면 며칠 전부터 곧 본래 온 곳으로 가려고 하니 그리 알라면서, 나무아미타불 염불
석화스님은 현재 태고종 동방불교대학 범패과 전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스님은 일주일 한 번씩 전승관 동방불교대학 강의실에서 범패를 강의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단 한회도 쉬지 않고 출강하고 있으며, 범패과를 사실상 활성화하고 있다. 태고종 하면 속칭 염불(범패)이라는 트레이드마크가 붙어 있듯이 석화스님은 그야말로 사명감 하나로 후학 양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태고종은 대승보살승단이므로 생활불교를 지향하고 있다. 대승보살승단이란 개념은 불교 승가의 전통적인 출가수행주의를 지양하고 생활 속의 불교를 지향하는 보살승단을 구현한다는 의미
경기도 이천, 도요들이 모여 있는 ‘사기막골’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아홉시였다. 화계사 법정스님과 약속한 시간이 무려 한 시간이나 족히 남아있었다. 해서 마을 초입 광장에 차를 세우고 새벽이슬이 채 걷히지 않은 도요마을을 잠시 기웃거렸다.경기도 이천 도예촌, ‘사기막골’ 참 정감 가는 이름이다.화계사로 들어가는 초입에 형성된 공방 마을에는, 가마에서 구워낸 다양한 도자기들이 맑은 색으로 진열장마다 얌전히 앉아있다.‘누굴 기다리는 것이냐고, 누굴 오랫동안 기다렸냐고....’쇼윈도 속 수많은 도자기들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었다.이천 ‘사
새로운 태고종, 사회복지활동에 달려 있다본종은 한국불교의 전통종단 가운데 하나이다. 사실, 한국 1천 7백년사에서 태고종은 전통성과 역사성에서 단연 그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불교내부에서와 외부로부터 얼마만큼 이런 당위성을 인정받느냐가 관건인데, 우리 종단에서나 이렇게 주장하고 자위할 뿐이지 타자들은 그렇게 생각해 주지를 않는다. 어떻게 보면 왜곡된 진실이지만, 현실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면 억울하지만, 별도리가 없다. 문제는 이런 역사성과 당위성을 지켜나가면서 전통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주체인 우리 종도들이다. 종도들이라고
태고종은 현재 ‘새로운 태고종을 향하여’ 비전을 제시하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자성에서 뭔가 혁신 종단을 만들어보자고 총무원집행부가 노력하고 있다. 제26대 편백운 총무원장 집행부가 출범하면서 짧은 기간에 지난 10여 년 간 종단의 발목을 잡고 있던 아킬레스건(종골건=踵骨腱)인 종단 부채 53억 원을 상환하고, 종단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종단자산을 망실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재)태고원 천중사를 압류, 곧 환수할 단계에 이르렀다. 게다가 지난 ‘94년에 설립했던 종단 산하 ’사회복지법인 태고종 중앙복지재단‘ 또한 밖으로 돌다가 지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