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기자회견을 보고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은 1월 25일 연두백서를 발표하고, 1월 31일에는 연두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 내용은 종단권력구조개편과 제도개혁, 민주적인 직선제, 종단조직의 현대화에 의한 사회 복지 활동 강화’이며, 대외적으로는 ‘종단위상제고와 이미지변신, 대사회활동과 이웃종교와의 연대, 국제 불교교류와 해외포교활동’이 주류였다. 총무원장스님은 기자회견 서두에서 “한국불교태고종은 한국불교계에서 1만 종도와 4천 사암을 포용하고 있는 큰 종단이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교계 일부언론으로부터도 편파보도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종단의 비전을 제시하고 틀을 한번 바꿔보자는 대안제시였다. 기자들은 ‘종단의 권력구조와 제도개혁’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며, 참종권(=종단에 참여할 권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부탁과 종단의 민주적인 직선제에 의해서 종무담당자를 선출해야 된다고 했는데, 총무원장직도 포함이 되는지에 대한 관심이었다.

우리 종단은 한국불교의 전통적인 유산과 적통성을 물려받았음에도 이를 잘 적용하여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종단체제와 제도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의 종단권력구조나 제도의 뼈대는 태고종 창종이전인 한국불교조계종 시대에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다소의 개정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60여 년 동안 그때 제정된 종헌.종법의 틀을 유지해 오고 있다. 시대와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불교계 풍토 또한 천지개벽이 되는 듯 양상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우리 종단은 수구적인 틀에 얽매여서 몸부림을 치고 있고, 이로 인한 후유증이 발생하고 있다. 체제와 제도가 분명해야 운용하는 주체도 일이 쉽게 전개된다. 종단 소속 사찰 99.5%가 사설사암이다. 99.5%가 사설사암에서 독살이 승가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종헌.종법이나 종단제도나 의제의식(衣制儀式)은 산중불교 시대에 적용했던 틀이다. 시대의 흐름과 사회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불교의 모습을 갖추자면 종단의 틀과 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적응이 어렵다. 현재와 같은 구조와 제도로는 누가 종권담당자가 되어도 원활한 종무행정 수행이 시행착오를 일으킬 수밖에 없으며,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이런 맥락에서 연두기자회견은 종단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종단권력구조와 제도개혁에 대한 종단내외에 물음을 던지면서 공론화 해보자는 안을 제시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종단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받아들여서 깊이 연구하고 검토해서 새로운 내적구조변화와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탄핵종회를 열자고 선동하는 종회의장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중앙종회 수장께서 공공연하게 탄핵(불신임)종회를 열어서 총무원장스님을 하야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1월 25일 연두백서 발표회장에서 일부 불만종도들과 편승하여 종회의장이 3.14 종회에서 총무원장을 탄핵하겠다고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종회의원들에게 전화공세를 펴고 있다. 총무원에는 공식적인 공문도 보내지 않으면서 종회의원들에게 문자와 전화상으로 3.14탄핵종회를 연다고 선동하고 있다. 총무원 집행부에서는 12.5 길거리 종회 자체를 원천무효로 하고 있지만, 백보를 양보해서 종회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종회의 뜻이 그렇다면 적어도 총무원에 정상적인 통로를 통해서 공문서상으로 종회 개최를 요청해야지 일방적인 선전 포고식 종회 개최는 부당하다고 본다.

총무원 집행부는 기이 12.5 길거리 종회를 원천 무효로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도광 의장을 비롯한 몇몇 분과위원장들이 총무원장을 업무상 배임 및 횡령혐의로 검찰에 고소를 한 상태에서 어떻게 종회개최를 응할 수 있겠는지 종회의장은 역지사지로 생각을 해보았으면 하고, 공공연하게 총무원장을 탄핵하기 위해서 3.14종회를 개최하겠다고 하는데, 이런 불법적인 종회 개최를 순순히 응할 집행부가 어디 있겠는가.

도광종회의장은 의장직에 앉으면서 집요하게 총무원장을 주저앉히려는 발언과 행위를 연출해 왔다. 옆에서 보기에도 중립을 지키면서 종단사를 논의하는 대의 기관을 잘 이끌어 가야할 의장이, 오히려 더 앞장서서 선동을 하고 총무원장에게 각을 세우면서 집요하게 인간적인 공격까지도 주저하지 않으니 누구라도 이런 의장의 언행에 순응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지 종회의장은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집행부와 종회간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먼저 피의자 신분인 연수스님을 종회 사무국장에서 해임하고, 탄핵 종회가 아닌 종무직원 인사안과 예.결산안을 다루는 정기종회를 갖자는 것이다. 이른바 탄핵(불신임)은 탄핵 사유가 있어야 하고, 업무상 배임 및 횡령 혐의가 밝혀졌을 때, 다뤄도 늦지 않다고 본다. 검찰이나 법원의 판결이 나면, 진위가 가려질 것이고, 진위에 따라서 거취가 자동적으로 결론이 날 문제가 아니겠는가.

종단발전을 위한 추동력을 갖자!

종단이 모처럼 안정되고 일을 하려고 하는데, 종단내부에서 자꾸 불협화음의 소리가 나면 종도들도 사기가 떨어진다. 우리 종단이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다. 종단 존립의 목적이 무엇인가. 수행과 전법 포교이다. 불교의 역사는 석존의 성도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고 석존의 전법륜(轉法輪)부터이다. 사르나트(녹야원)에서 법륜을 굴리셨기에 불교 역사가 시작됐다. 그러면서 석존은 강조하셨다. 길을 나서라고 했다. 당시에는 사문들이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를 했기 때문에 수행보다는 전법(傳法)이 우선했다. 석존 당시의 승가 구성원들은 이미 사문으로서 오랜 기간 동안 수행을 해왔기에 석존의 법문을 듣는 순간, 바로 깨달음에 이르렀다. 물론 지금 시대야 어느 정도의 수행 수학 기간이 필요하지만, 우리 종단의 현실에서 승니(僧尼)가 되었으면 기본자격은 구비했고, 사찰운영과 포교전법이 가능하다고 인가(印可)를 받은 상태이다.

산중불교시대가 아니고 도시형 산업화 시대의 생활불교를 지향하는 태고종으로서는 시대와 대중에 맞는 불교를 해야 한다. 당장 사찰운영을 위한 방편으로서 기복형 불교를 바꿀 수는 없지만, 언제까지 이런 형태의 불교를 계속 이끌어 갈 수는 없다. 점진적으로 변화와 개혁을 하면서 불교를 새롭게 창조해 가는 것이 21세기 신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불교성직자들의 자세이다. 부단하게 자기성찰과 반성위에서 대중과 사회를 위한 역할을 찾아야 하고 불교본래의 정신을 추동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종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와 노력도 중요하지만, 종단적인 차원에서 제도적인 장치가 먼저 정립된 다음, 구성원들은 그대로 실천하면 된다.

따라서 종단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종단 집행부는 종단과 종도들을 견인해 가는 선장 역할이다. 자꾸 선장에게 조타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라고 강요하고 시야를 가린다면 어떻게 순조로운 항해를 하면서 승객을 안전한 항구로 수송하겠는가. 한발씩 양보하면서 종단이 정상적으로 운용되도록 하고 종도들이 의욕을 갖고 전법포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추동력을 갖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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