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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2(2018)년 11월 19일 월요일
인물사찰탐방- 불사도중 ‘산(山) 거북바위 출현’
인물사찰탐방- 불사도중 ‘산(山) 거북바위 출현’
  • 한국불교신문
  • 승인 2018.10.1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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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화계사(華溪寺) 법정스님
화계사 주지 법정스님
화계사 주지 법정스님
아담한 모습의 화계사
아담한 모습의 화계사
산 거북바위와 약사여래부처님.
산 거북바위와 약사여래부처님.
빨간색 깃발을 올리면서 걷고 있는 법정스님과 신도님들.
빨간색 깃발을 올리면서 걷고 있는 법정스님과 신도님들.
신도님들이 명상 후에 기 체조를 하고 있다.
신도님들이 명상 후에 기 체조를 하고 있다.
신도님들이 명상 후에 기 체조를 하고 있다.
법정주지스님이 명상을 지도하면서 신체의 유연성 유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우리 종단에도 비구니 스님들이 1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 정말 자랑스러운 분들이다. 승가란 크게 보면 4부 대중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승가의 실제적인 주역은 출가 2부중이다. 비구 비구니는 승가의 양 기둥과도 같은 존재이다.

역사적으로 최초의 비구니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부처님의 이모인 양모(養母)인 마하파자파티(Mahapajapati)이다. 우리말로 풀어서 설명하면 ‘대애도(大愛道)’란 의미이다. 진리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대애도’ 비구니의 일생을 소개하려면 끝도 한도 없다. 간략하게 말한다면, 세존이 성도하고 몇 년 후 처음으로 석가 족을 방문했을 때, 마하파자파티는 출가하기로 결심, 세 번이나 청했지만 허락을 받지 못했다. 이후 부처님이 석가 족의 나라를 떠나 유행할 때 마하파자파티는 석가 족 여인 500명과 함께 스스로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뒤를 쫓아갔다. 그 후 바이샬리에 이르렀을 때, 아난존자가 어렵게 허락을 받아 여인에게도 구족계를 주는 제도가 생겨났다. 부처님께서는 여인의 출가를 무조건 허락하지 않고, ‘팔경법(八敬法)’이라고 하는 규칙을 만들어 허락했다. 실로 눈물겨운 스토리가 많지만, 여기선 이 정도로 하고 우리 종단 비구니 스님 그리고 법정스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기자는 도자기의 고장, 도요가 밀집되어 있는 일명 ‘사기막골’에 도착한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다. 설봉산 자락에 화계사가 너무나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찰 경내에 들어서니, 법정스님의 성격과 손길이 그대로 묻어나는 암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항상 단정하고 깔끔한 용모에 미소 짓는 모습이 화계사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음을 느꼈다.
화계사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일종의 도예촌 같은 곳이다. 인간의 문명과 함께한 도자기는 그대로가 인간문명사를 말해준다. 화계사로 들어가는 초입에 형성된 공방 마을에는, 가마에서 구워낸 다양한 도자기들이 맑은 색으로 진열장마다 가득했다. 법정스님에 따르면 이곳이 도자기 마을은 천년도 넘는 세월 속에 도자를 굽는 도공들이 터전을 잡고 살아온 곳이라 했다.    법정스님은 “긴 도요의 그 역사가 흐르는 동안 도공들의 혼이 제자들과 그 자손들에게 대물림 되어왔고, 그 맥을 놓치지 않으려는 도공들의 순교가 있었기에 오늘날 이천 도자기의 화려한 명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화계사는 설봉산 자락에 안겨 있다. 아기자기한 시골 마을을 지나서 아늑한 골짜기 끝자락에 당당하게 서있는 암자의 자태가 너무나 아름답다. 화계사를 품고 있는 설봉산은 그 역사가 소나무처럼 참 깊고 푸르다는 법정스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곳 설봉산은 3국의 경계지역이어서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이 끊임없이 각축전을 벌였던 전쟁터였다고 하는데, 땅은 백제에 속했지만 서로 차지하려는 요충지여서 아마도 전쟁이 그치지 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설봉산에는 석성, 봉화대 등,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설봉산에는 예로부터 ‘삼형제의 전설’이 내려온다. 이야기인즉슨, “아주 옛날 가난한 집에 늙은 어머니와 효성이 지극한 삼형제가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설봉산으로 나무를 하러간 세 아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아들을 찾으러 산으로 가게 되었고, 호랑이를 만나 벼랑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설봉산 자락 절벽에 서있던 삼형제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망자석이 되었다는 전설이 숨어있다.”

화계사가 창건된 것은 최근이지만, 예로부터 이곳에는 절이 있어 왔고, 절터가 오랫동안 전해오던 곳이었다. 법정스님은 화계사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법정스님은 “세속에서 이렇게 열심히 살았으면 갑부가 되고도 남았을 거고,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사찰의 돌멩이 하나도 자식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기자는 마음속으로 법정스님 다운 말이라고 긍정했다. 종단에서 일을 보면서 지켜본 법정스님은 참으로 반듯한 용모에 빈틈없는 자세로 비구니의 품위를 지키는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법정스님은 한국불교 사찰전래의 불공시식이라는 전통의식에 의한 신도님들의 기복에도 응하지만, 일찍부터 명상지도를 해오고 있다고 했다. 신도님들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자비선(慈悲禪)을 지도하는데 좌선만이 아닌 걷기명상 등, 신도님들이 쉽게 접근 할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걸으면서 발바닥 감각 알아차리기, 소리 무상 관찰하기, 몸과 마음 휴식하기, 소나무에 기대어 관계성 통찰하기’등의 수련법으로 일상에 지친 신도님들의 심신을 풀어주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진리의 여행’ 같은 명상을 지도해서,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고 했다. 불교 본래의 목적이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제 스스로 깨닫는 찰나임을 알아차리는 훈련을 통해서 지혜를 얻어가는 것이 출가수행자의 이상이다.
화계사 신도님들은 법정스님의 하얀 연꽃 같은 미소로 지도하는 명상 수업에 여념이 없다.
화계사는 법정스님의 혼이 가득 깃들어 있는 사찰이다.  대웅전 뜰에는 인도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 석가탑이 정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서니 ‘칠흑 같은 어둠 소멸하고자 서원하오니 정성의 기도 받아주시옵소서’란 기도문에 시선이 멈춘다. ‘보이더라도 내버려두고, 들리더라도 내버려두고, 느낌이 있더라도 내버려두고,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내버려두라, 스위치를 끄듯 마음의 움직임을 끄고 평온과 평화를 실현하라’라고 하는 법정 스님의 설법이 신도님들에게 내려진다.

법정스님은 이곳 화계사에는 이십년 전에 왔다고 하는데 그 당시를 회고했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대웅전과 요사채가 모두 위태로웠습니다.”라고 하면서, “모든 것을 시방삼세의 부처님과 화엄성중님의 가피를 받아 난제를 풀고 중창불사를 하리라.”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며, 젊음을 오롯이 불사하는데 받쳤다고 한다.

불사를 시작하자마자 터파기를 하는데 길이가 17미터, 높이가 10미터나 되는 거북바위를 발견했다고 한다. 흙을 걷어내자 둥근 청옥이 제 모습을 나타내 보여준 기적 같은 일이 생겼고, 이 바위 앞에는 약사여래부처님을 조성, 봉안하게 됐다고 한다. 이 거북바위 소문을 들은 불자님들이 전국에서 산 거북바위(山龜巖)를 보기위해서 사시사철 찾아온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불사하는 그 바쁜 와중에도 정진 수행하면서 불자들과 함께하는 포교전법활동을 소홀함이 없이 했다고 한다. 항상 맑은 미소와 하얀 얼굴로 깔끔한 모습인 법정스님을 눈여겨 보아온 동료 비구니스님들은 2014년 전국비구니회장으로 선출했다. 법정스님은 회장을 맡아서 전국비구니들의 조직결속과 발전에 열정을 쏟았고, 이제 4년 임기가 다된 시점이라고 했다. 부모형제까지도 멀리하고 ‘대애도 비구니의 후예’가 되고자 이 길을 걷는 동료비구니들을 생각하면 너무 고맙고 동지애를 느끼는 것은 같은 운명, 같은 길을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땅, 그것도 태고종의 비구니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여정이 아님을 잘 알면서도 이 종단에 소속한 비구니 형제들을 생각하면 힘이 솟고 함께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몰라주는 비구니 형제들도 간혹 없지는 않다고 했다.  법정스님은 현 태고종 총무원장 편백운스님을 은사로 출가, 2003년 혜초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중앙승가강원 대교과와 동국대 불교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전국 비구니회 문화국장과 감사를 역임했다. 또한 대한민국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범패부문 이수자이기도 했다.

화계사 신도회(회장 백련화, 총무 일심행)는 조직이 잘되어 있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고 했다. 정기법회 시작을 알리는 범종이 울리자, 신도님들이 대웅전 안으로 모여들었다. 정기 법회는 기본 예경의식을 마치고 나면 ‘자비선 명상, 자비 경선’을 수행하는 순서로 진행한다고 했다. 법정스님이 빨간색 깃발을 흔들어 보이면, 걷기 명상의 신호 ‘출발’을 알리는 것이다. 출발은 베풂의 지혜를 터득하는 수련과정이다. 노란색 깃발이 올라간다. 발바닥 감각을 알아차리는 과정이다. 땅과 발바닥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훈련을 하다보면 의식이 깨어난다. 그러다보면. 평등해지고 자유로워진다고 한다. 녹색의 깃발이 올라간다. 멈추고 쉼, 잠시 멈추고 서서 평화를 염원한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알아차리고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음을 쉬는 것이다. 다음은 흰색 깃발이 올라간다. 사랑과 연민, 관용과 용서의 시작을 알린다. 걸으면서 과거에 지나온 나는 지나가서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아서 없으며, 현재 걷고 있는 나도 머물지 않으니 없는 것이다. 모든 게 순간임을 알아차리는 과정이다.

다음은 자비 경선 수행 과정이었다. 경선(鏡禪)은 거울명상이다. 앉아서 하는 좌경선과 걸어서 하는 행경선이 있다. 숨 쉬지 않고 땀 흘리지 않는 마음 그게 바로 자비심이 배양되는 수련과정이다. 이론과정과 실습을 자세히 설명한 법정스님의 음색마저 설봉산 자락 소나무처럼 짙고 푸르다. 드디어 대웅전 안에서 하는 수련과정은 끝이 났다. 다음은 점심공양을 가볍게 미치고 설봉산 명상센터에 올라가 자연과 교감을 나누는 걷기명상에 들어간다. 자비선 명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녹색 깃발이 올라간 듯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찰나의 행복이 온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읽히지 않는 시간인 것이다.

점심공양이 끝나고 대웅전 돌기를 시작으로 ‘걷기 명상’ 실전이 시작되었다. 설봉산 중턱 소나무 아래 명상센터가 있다고 한다. 모두들 그곳을 향해 걸어간다. 선봉에 선 붉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인다. 드디어 출발이다. 베풂을 깨닫는 시간이 오고 있다. 삶의 고달픔에서 벗어나고자, 탐욕과 부정을 버리고 이타심을 내어 베푸는 기쁨을 얻는 명상의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이다. 한발 한발 설봉산을 향해 발길을 내딛는다. 설봉산 명상센터로 가는 길은 능선이 가파르지 않고 완만하다. 걷기 명상하면서 땅과 발바닥 감각을 알아차린다. 숨도 차지 않는다. 속도가 빠르지 않기 때문인가. 미래의 삶 또한 숨차지 않고 오를 수 있는 설봉산 명상센터처럼 자비심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천천히 일행을 따라 발을 내딛는다.

세 마리 개, 진이, 마야, 반야는 법정스님의 염불소리를 알아들었는지 한 번도 짖지 않는다. 이들도 내생에는 인간으로 환생하여 불법을 만날 것임에 틀림없다

합동취재팀= 혜철 <홍보부장>, 김양진<월간불교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