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불상과 불경은 지금의 파키스탄 간다라로부터 384년 처음 전래됐다. 간다라지역은 기원전 500년과 기원후 500년 동안 동서양의 문화문명을 융합시켜 황금기를 구가했던 제국이었다. 그 곳에서 처음 만들어진 불상과 불경은 동서양 문화문명을 함축적으로 상징했다. 불상과 대승불교는 이민족, 이교도를 통합하고 체제 안정의 안전판 역할의 구심점이었다. 국제질서의 도모도 불교라는 사상과 종교를 앞세워 체제 안정과 민심 통합의 수단으로 이용됐다. 때문에 간다라와 간다라 불교의 이해 없이는 한국불교를 알 수 없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지은 『금오신화』안에 「만복사저포기」라는 소설이 있다. 최초의 한문소설이라고 하는데, 최초 치고는 구성도 탄탄하고 매우 재미있다. 매월당이 그 전에도 몇 편 습작을 썼든가 그 전에 다른 분의 좋은 소설도 읽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잠정적인 ‘최초’가 아닐까도 싶다. 그러니 ‘최초’라기 보다는 ‘최고’ 즉 남은 것 가운데 최초라는 수식어가 더 적절할 듯싶다.이런 논쟁거리로 글을 시작하는 것은 우리 차계에서 ‘최초’라는 것이 사실 대부분 ‘최고’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나 싶어서이다. 첫
대승불교와 불상 등 간다라 문화문명을 대한민국 고대사에 전한 간다라 출신 마라난타 스님의 모국 파키스탄과 대한민국간 큰 의미를 담은 회향식이 최근 있었다.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재청은 파키스탄 문화유산청과 문화유산 공적개발원조(ODA) 양해각서를 지난 10월 21일 체결했기 때문이다. 회향식은 대한민국이 파키스탄 북부지역 간다라 유적 정비·활용과 기록화 사업을 5년간 지원한다는 각서이다. 이를 위해 400만 달러(47억원 규모)를 투입한다, 마라난타 스님이 불교와 불상이라는 불씨를 전한 1637년 만에 고향땅에서 그 업적
바일제법 제47조 과수사월약청계(過受四月藥請戒)는 우안거 기간에 재가자로부터 공양받는 약에 관한 조문으로 양이나 기간의 한도를 초과하여 약을 받으면 안 된다는 조문이다. 인연담을 보면, 재가자인 마하나마는 비가 많이 내리는 우안거 4개월 동안 비구들의 건강을 위하여 승가에 필요한 약을 보시하기로 하였는데 6군비구는 마하나마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기에 고의로 많은 양의 약을 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마하나마는 지금 바로 구할 수 없으니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했으나 6군비구는 ‘약을 줄 마음도 없으면서 약을 보시하기로 한 것 아니냐
바일제법 제41조는 여외도녀식계(與外道女食戒)로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라도 나형외도(裸形外道)나 혹은 편행외도(遍行外道)의 남자 혹은 편행외도의 여인에게 자기 손으로 담식 혹은 작식을 주면 바일제이다.’여기서 나형외도는 나체 수행자를 말하고 편행외도는 집이나 정사를 가지지 않고 두루 떠돌아다니는 수행자를 말한다. 그런 외도 사문들에게 직접 음식을 주면 바일제라는 뜻으로 별로 어려운 부분은 없다.본 조문은 아난 존자가 편행외도 여인에게 실수로 떡을 2개 주어 비난받았던 것이 원인이 되어 제정되었는데 이 인연담에는 외도 사문
쿠샨왕조 카니시카왕 통치시절인 간다라 지역에서 이민족과 이교도들을 불상을 통해 화합과 통합을 도모하는데 불상이 처음 등장했다는 게 학계의 추정이다. 조로아스터교 신도였던 카니시카 왕이 불교로 개종하면서 본인 스스로 뿐만 아니라 이민족과 이교도 연합체 국가인 쿠샨왕조의 사상과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수단으로 그리스 조각 양식을 빌어 불상을 조성했다는 설이다. 초기 불교시절에는 부처님을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지 않은 불상불가론(佛像不可論)이었고, 부처님 열반후 500년 동안이나 불상이 없었다가 카니시카왕 때 처음으로 불상이 등장한
신라 천년의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경주’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여행가라면 경주 남산과 토함산에 올라 경주를 바라보고 감포에 나아가 동해를 바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천여 년의 신라의 향기를 감추고 있는 경주의 자태는 늘 단정하다. 출장길에 늘 틈을 내서 국립경주박물관에 들려서 저 멀리 남산을 바라보곤 한다. 그리고 첨성대가 있는 대능원에 들러 신라의 고분들을 탑돌이 하듯이 돌며 신라의 기상을 되새기곤 한다.한국을 찾은 북경대 교수 최현(박해일)과 공윤희(신민아)의 로맨틱한 시간여행을 담은, 2014년에 나온 영화의 제목도
바일제법 제37조 비시식계(非時食戒)란 비구는 시간이 아닌 때 공양을 하면 안 된다는 조문이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비구의 공양은 수행의 도구인 육체를 적절히 보전하고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이다. 부처님께서도 극단의 고행을 중지하고 수자타의 유미죽 공양을 받고 정각을 이루시지 않았는가. 그러면 비구가 공양해야 할 적당한 시간은 언제인가? 아침에 해가 뜨고 나서 정오까지이지만 정오 이후에도 씹을 수 있는 음식을 제외한 과일 주스 등은 마시는 것이 허락되었다.본 조문을 보니 필자가 스리랑카에서 유학할 때 율장을 강의했던 미얀마 스님
여기에 소개하는 경운원기 선사의 병풍 휘호는 80권본 『화엄경』 「십지품」, 제3 에 등장하는 금강장보살의 게송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경전 원문은 총 18게송인데, 경운 스님은 그 중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14게송까지만 휘호한 것이다. 이중 전해지고 있는 10폭 병풍과 휘호를 소개한다. 이 병풍은 현재 총무원장 호명 스님이 염불사에 소장하고 있다. 그간 화엄종주 경운원기 대선사의 생애와 사상을 애독해주신 독자들게 감사드린다. 이번 경운원기 선사의 10폭 병풍을 게재하는 것으로 그간의 연재를 마무리한다.
이번 호엔 자신의 생활과 어우러져 번뜩이는 선지를 드러내는 선시를 음미해보자.양기산의 임시거처지붕과 벽 엉성하니방바닥 가득 뿌려진 눈의 구슬그러나 목 움츠리어가만히 탄식하며생각노니, 나무 밑에거처하신 옛 어른의 일.楊岐乍住屋壁疎 滿床盡撤雪珍珠縮却項暗嗟噓 飜憶故人樹下居오가칠종의 하나인 양기파의 개조 방회 선사(方會禪師, 993∼1046)의 시다. 그는 양기산에 보통선원을 개원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교화를 폈다. 보통선원은 평범한 그저 그런 선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가난이 묻어나는 남루한 집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달동네 쓰러져 가는
바른 삼매에 관련하여 계속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삼매에 들기 위해서 하는 명상을 사마타 명상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수행을 위해서는 명상 주제를 정해야 합니다. 명상 주제는 40여 가지나 됩니다. 그것은 “열 가지 까시나, 열 가지 깨끗하지 않음, 열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 네 가지 물질을 넘어선 경지, 한 가지 인식, 한 가지 분석” 이렇게 40여 가지입니다.이러한 명상 주제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한 종류는, 모든 것에 유익한 명상주제입니다. 다른 한 종류는, 특별한 명상주제입니다. 모든 것
비는 하루 종일 내리고요 동대문은 나대신 울어주고요 존재한다는 게 이런 것인가 생존한다는게 이런 것인가 팔리지 못한 나는 팔리지 못한 네팔친구와 둘이서 인력시장 건너 편 2,500원짜리 콩나물 국밥집에 앉아 아침부터 쏘주를 들이키고요 안 되겠다 안 되겠다 고향으로 쟁기질이라도 하러 가야지 골백번도 더 다짐하지만 막상 내 땅덩어리는 없고요 네팔친구도 돌아갈 고향이 없다며 어디로 갈 테면 반드시 자기를 데리고 가 달라고 조르고요 여기는 세상의 변두리 변두리 변두리의 변두리고요 변두리에 있으면서도 나와 네팔친구는 아직도 진짜 변두리가 되
비구니 스님이분홍갈대밭 사잇길을분홍이 되어 걷고 있다.저 스님은 지금누구의 연인이 되기 위하여분홍바다에 섰을까.아니, 사랑의 바람결에 서서이승의 어느 연인을기다리고 있을까.‘고백’하고 싶지 않아도저절로 ‘고백’하고 싶어지는분홍쥐꼬리새 꽃밭.‘고백’을 하지 않아도저절로 ‘고백’이 되는털쥐꼬리새 꽃밭.가을바람에몽실몽실 흔들리는파스텔톤의 핑크뮬리들.저의자에 앉아스님을 기다리고 싶다.저 분홍 꽃바다로 달려가스님의 연인이 되고 싶다.분홍 연인이 되고 싶다.※핑크뮬리의 꽃말은 ‘고백’이며, 분홍쥐꼬리새 또는 털쥐꼬리새라고도 부른다.-전 문화재
바일제법 제33조는 전전식계(展轉食戒)이다. ‘전전식(展轉食)’이란 재가자의 공양청을 받은 비구가 같은 날 다른 재가자의 공양청을 받는 것을 말하며 이를 금지하는 조문이다. 빨리어 율장의 인연담을 보면 어떤 가난한 사람이 공덕을 쌓기 위해 자신의 벌이를 아끼고 모아서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하여 승가에 공양청을 올렸는데 비구들은 그 사람이 워낙 가난한 사람이라 자신들이 충분히 공양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여 걸식을 하고 그 집에 갔으므로 정성껏 준비한 많은 음식이 남게 되었다.속가에서도 손님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할 때 집 주인은 손님
순례단은 지난 2012년 5월 3일 5박7일간 파키스탄 간다라 순례길을 마무리하고 귀국 후 곧바로 귀빈 영접에 착수했다. 이번에는 간다라 불교문화 복원에 앞장서 온 파키스탄 고위관계자들이 한국불교 답례길에 나섰기 때문이다. 간다라 고위관계자들 마라난타 스님 찾아 이억 만 리 답례길답례단에는 고대 간다라지역의 수도였던 페샤와르, 스와트 ,탁실라를 아우르는 지역인 카이버박툰카와주 관광부장관과 차관, 파키스탄 내무부(행정안전부) 담당 과장, 관광공사 전 사장, 간다라문화예술협회 이사, 국립예술대 건축과 교수 등 5명이었다. 이들의 답방을
바일제법 제30조 독여니비밀좌계(獨與尼秘密坐戒)는 비구와 비구니가 일대일로 비밀스럽게 앉으면 안 된다는 조문이다. 앉은 것뿐만 아니라 눕는 것도 계율을 어기는 것이 되며, 한 명은 앉고 다른 한 명은 서 있어도 계율을 범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근본유부율』을 제외하고 다른 율장에서는 둘 다 서 있는 경우에는 무죄이다.본 조문에서 ‘비밀스럽게 앉는다’라는 해석이 각 부파의 율장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빨리어 율장에서는 눈을 가리거나 눈썹이나 머리를 들어도 볼 수 없는‘안(眼) 비밀’과 일상적으로 하는 대화를 들을 수 없는 ‘문(聞
선지를 다루는데 있어서 육조혜능과 신수와 같이 비슷한 양태를 보여준 이들이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과 천동정각(天童正覺 1091∼1157)이다. 설두가 공안의 경지를 선지시로 활짝 문을 열었다면 정각은 명상적 요소가 짙은 묵조시의 시발을 보여주고 있다.설두중현은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출가했다. 처음에는 성도보안원(成都普安院)의 인선(仁銑)과, 지문 광조(智門光祚)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만년엔 밍저우[明州] 설두산 자성사(資聖寺)에서 주석하며 후학들을 제접했다.설두는 시문(詩文)이 뛰어나 『설두칠부집(雪竇七部集)』이라는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
짬뽕 국물에 참이슬을 마시다가참이슬에 뜬 달을 보다가(짬뽕 국물은 왜 이렇게 짠가)짬뽕 국물을 떠먹던 숟가락으로보름달을 건져 쟁반에 올려놓고(사람들은 왜 짠 것을 좋아하는가)참이슬과 함께 밤새도록 놀았다병뚜껑처럼 놀았다(상처는 왜 즐거운가 기쁜가)혼자, 놀았다좀처럼 날도 새지 않았다(깊은 상처들일수록 왜 더 즐겁고 기쁜가)설운겨울밤이었다(사람들은 앞으로도 상처를 더욱 좋아할 것이다)찬겨울밤이었다(그래도 상처만이 약이었구나)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 경계가 있었다. 그런 삶이 있었다. 그래, 그럼 지금, 나의 안이비설신의(眼
선교양문(禪敎兩門)의 대표적(代表的) 초제(招提)가 조계일산(曹溪一山)에 등을 대고 있음도 심상(尋常)치 않은 일위관(一偉觀)이라 할 수 있다. 선암(仙巖)은 환난(患難)도 많이 치르고 유물(遺物) 고기(古記)가 거의 보잘 것 없어서 이렇다 하고 내세울 인물(人物) 사적(事蹟)은 딱하게도 알만치 결여(缺如)하지만, 선암(仙巖)의 숙제(肅制)는 다만 간판(看板)될 만한 것이 그럴 뿐이지 조선불교(朝鮮佛敎)의 초대(礎臺) 양목(梁木)으로 드러나지 않게 큰 공(貢)과 큰 자(資)를 바쳤기 때문에 누가 감히 선암(仙巖) 이상(以上)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