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은 김해 김씨 출신으로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어린 동생들마저 모두 잃은 다음에 불문에 들어왔다고 한다. 때문에 부모의 사랑이며 형제애를 모르고 성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에서는 자신의 비극적 가족사에 대해 원망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장자로서 부모가 낳아 길러준 은혜를 갚지 못하고 형제들을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을 되새기고 있다. 한편 60년 세월을 쉽게 보내버리고 중생들을 위해 말할 만한 일이 없는 것이 ‘부끄럽다[愧]’고 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불자와 유자를 막론하고 그의 근실한 강학과 지계의
이번 호에선 지난 호에서 언급했던 팔경법(八敬法)에 관해 알아보고자 한다.부처님께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의 출가를 극구 반대하다가 제시한 여덟 가지 전제 조건인 팔경법은 현재의 보편적 기준으로 보면 변명의 여지 없이 여성 출가자에 대한 성차별적인 요소이다. 빨리어 율장에 나와 있는 팔경법 제정의 인연담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부처님께서 사끼야족의 까삘라왓투에 있는 니그로다 동산에 머무실 때 이모이자 양모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출가를 세 번 부탁드렸지만 부처님께서는 세 번 다 거절하시고 웨살리로 유행(遊行)을 떠나셨다. 마하
세존 : 어떤 사람이 “부처님 말씀에도 아견 아상으로 인한 견해 ·인견 인상으로 인한 견해 ·중생견 중생상으로 인한 견해 ·수자견 수자상으로 인한 견해 이 보이는 곳이 더러 있다”라고 한다면 말이다. 이 사람은 내가 설법한 큰 뜻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느냐?수보리 : 아닙니다. 이 사람은 여래께서 설법하신 그 큰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의 설법 가운데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보이는 부분 은 이미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의 실상이 아닌 것을 알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름만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님을 만나면 외롭지 않을까.붙잡아도 붙잡아도 여전한 외로움.봄이 온 뒤 내린 눈은봄기운을 더욱 재촉하고눈 속의 백일홍 꽃등은간절한 내 마음을 더욱 재촉한다.두 손 모아 님께 바치는 마음지금 이곳에 함께하나니붙잡던 마음 저절로 놓아지고두렵던 벽 저절로 허물어진다.티끌마다 충만한 따사로움은온 세상에 아름답게 진동하고언제나 함께 머물던 님의 사랑이제야 평화로 함께한다.-전 문화재청 헤리티지 사진기자
도를 이루기 전에 행하는 팔정도를 범부의 팔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수다원의 도과를 체험하면 성자의 팔정도가 시작됩니다. 먼저 정견(正見, 바른 관점)이 섭니다. 정견(바른 관점)이란,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지혜입니다.이러한 사성제는 위빳사나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바른 관점은 사라질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퇴보할 수 없습니다. 조건과 결과일 뿐이라는 현상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다
불갑사 참식나무 숲에 들었습니다나무 사이로 바람이 붑니다나를 만나려거든삼천 배를 하고 오라던성철(性徹) 스님의 말씀을여기서 다시 듣습니다몇 생 몇 겁을 돌아오늘 환생해온 나무인지무량수(無量樹)인지바람이 불지 않아도삼천 배를 계속하고 있는참식나무 우듬지를 보고그 크나큰 뜻을오늘에야 압니다스님께서 왜나를 만나려거든삼천 배를 하고 오라고애써, 은유법을 쓰셨는지문(門) 없는 말로우리들의 남루한 삶을설파하셨는지그 깊디깊은 뜻을오늘에야 비로소 압니다불혹(不惑)의 해가점점 짧아집니다불혹의 해가 점점 짧아지는가을입니다그분이 지켜보지 않아도하루 종
한시문을 잘 지을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이처럼 그가 학승으로 저서를 많이 남기지 않은 것은 고려중기 이후 면면히 흘러온 한국불교문화의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른바 교학승들은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추구했던 선승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양의 한시문을 남겼다. 경운은 조선후기 선암사의 우수한 교학과 강학적 전통 속에서 양육된 교학계의 강백이고 종장이었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불승은 물론 유가들까지도 저마다 그가 의해(義解)가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저러한 주소(注疏)나 소위 유가풍의 한시문을 많이
필자가 율장을 전공하고자 마음먹고 나서 가장 큰 어려움을 맞본 것 중 하나가 ‘자연적인 것이든 인위적인 것이든 2600년 전 인도의 사물이 현시대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들이 있는가?’ 혹은 ‘그 당시를 살아보지 않고서 그 시대의 언어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문제였다. 이런 어려움은 ‘2600년 전 부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계율을 현재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라는 숙제와 함께 항상 나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사타법 제 16조 자담양모과한계(自擔羊毛過限戒)에는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거리에 관한 용어인
세존 : 수보리야!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 안에 있는 여러 수미산왕만큼 크고 높게 쌓을 수 있을 만큼의 칠보를 모아 보시했다면 말이다. 아무리 그렇게 많이 보시했 더라도, 또 다른 어떤 사람이 이 금강반야바라밀경 전체 아니 사구게 몇 개만이라도 수지독송하고 남을 위해 전한다면 말이다. 앞의 칠보의 복덕은 뒤의 가르침을 전한 것과 비교하면 백 아니 천조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아가 그 어떤 숫자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須菩堤야 若三千大千世界中에 所有諸須彌山王하야 如是等七寶聚로 有人이 持用布施하야도 若人이 以此般若波羅
-태고보우의 임종게경한이 무심이라면 같은 고려조의 대선승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는 유심적(唯心的) 가풍(歌風)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특징을 갖는다.태고선사의 속성은 홍(洪)이며, 홍주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양주 회암사에서 광지선사에게 축발(祝髮)했다. 26세에 화엄선(華嚴選)에 합격한 이후 용문산 상원암ㆍ성서(城西)의 감로사 등지에서 수행정진했다. 1337년 송도 전단원(栴檀園)에서 대오하고 삼각산 중흥사 동쪽에 태고암을 건립해 주석했다. 여기에서 호를 태고라 하고 를 지었다. 1346년 중국에
Ⅰ. 들어가는 말이 글은 근대기에 살았던 경운 원기(擎雲元奇, 1852~1936)와 당시 불교 및 유교 지식인들이 주고받은 교유시문(交遊詩文)에 함축된 교유를 살펴서 그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 순천 선암사의 경운 원기는 순천 지역은 물론 경향 각지의 불승(佛僧)과 유자(儒者)들 사이에서 학승으로서 강백(講伯)과 고승으로 일컬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국권이 회복 된 후로는 일반 지식인들은 물론 불교계에서 조차 제몫으로 조명되지 못한 감이 든다. 그것은 먼저 불교계 내의 혼란과 무질서에 원인이 있겠으나, 근
돌고 돈다.한 바퀴 돌면서부처님의 지혜와 가르침을 구하고,또 한 바퀴 돌면서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구하며이 세상의 모든 죄악이 녹아 사라지기를소망해본다.생각하기 싫었던 모든 기억들이 소환되며눈물이 쏟아진다.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이곳에 머물고 있는 내 생각의 틀들을하나하나 내려놓아본다.하나하나 비워본다.가슴이 홀가분해진다.-전 문화재청 헤리티지 사진기자
여러분들이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 반조의 지혜를 체험하고 나면 수다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사견이 사라지고 정견이 서게 되어 불퇴전의 경지가 됩니다. 발전이 있을 뿐 후퇴가 없습니다. 삼악도에 떨어질 정도의 탐욕과 분노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수다원은 일반인과 구별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수다원은 일곱 생 내에 윤회를 벗어나게 되는 성자에 속합니다.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 세상은 선으로 먹고 사는 흐름에서는 점차 수명이 늘어나서 8만세에 이르고, 악으로 먹고 사는 흐름에서는 점차 수명이 줄어들어서 평균수명이 10대에 이
어느 날 밤 눈 뜨고 보니내 마음에 물고기 한 마리 살고 있었네이름을 알 수 없는양철 물고기 한 마리처마 끝에서 흔들리고 있었네집의 집이었네집의 집이 외로울까봐한밤중에도 깨어나처마 끝에서나를 보듬고 있었네양철 물고기나보다도 더 나를 잘 알고 있었네나보다도 더 나를 잘 꿰뚫고 있었네내 집에 뜨거운 것 들면나보다도 더 먼저 바다로 가차가운 약수(藥水) 구해 오고내 집에 얼음 들면나보다도 더 먼저 하늘로 가따스한 옷 구해왔네그때, 나는 보았네양철 물고기 눈에 담겨 있는님의 눈을양철 물고기 몸 안에 알 배 있는님의 웃음을그날 밤 나는 비로
세존 : 수보리야,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를 부처가 모래라 말하셨느냐?수보리 :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모래라고 말씀하셨나이다.세존 : 수보리야!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 수처럼 그만큼 숫자의 갠지스강이 더 있고 이 강들에 있는 모래 수 만큼의 부처의 세계가 있다면 이런 부처의 세계는 매우 많다고 해도 되겠느냐?수보리 : 엄청나게 많다고 해도 됩니다. 세존이시여.須菩堤야 於意云何오 如 恒河中所有沙를 佛說是沙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如來 說是沙니이다.須菩堤야 於意云何오 如一恒河中所有沙하야 有 如是沙等恒河하면 是諸恒河 所有沙數佛世界
-백운경한의 임종게백운 경한(白雲景閑)은 1299년에 출생하여 1374년까지 살다간 고려 말의 선승이다. 나옹 혜근(懶翁慧懃, 1320~1376),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와 함께 고려 말을 대표하는 삼화상(三和尙)으로 불렸다. 백운 경한이 살다간 시기는 공민왕대를 중심으로 한 고려왕조 말로 신유학(新儒學)인 성리학이 들어오고 있었고 불교계에서도 새로운 선풍(禪風)이 일어나던 시기를 살았다.경한 선사는 선시에도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한국선시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 백운경한의 임종게를 살펴보
이번 회부터 살펴볼 계율은 부구(敷具)에 관한 내용이다. 『사분율』과 『오분율』에서는 이 ‘부구’를 와구(臥具)로 번역했다. 부구의 빨리어 원어는 ‘산타따(santhata)’인데 빨리어 율장에서 부구는 ‘펼쳐서 만든 물건이고 짜여진 것이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부구 혹은 와구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각 계율 조항과 계율이 제정된 계기가 되는 인연담 등을 대부분 빨리어 율장에 근거하여 기술하였기에 ‘부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한다.사타법 제 11조는 잡견사작부구계(雜
Ⅲ. 계상(戒相)과 계체(戒體)는 무엇이고 왜 계(戒)를 받아야만 하는가? 상술한바와 같이 사미 사미니 10계 식차마나니 6계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 보살계 58계 최상승 무생계 4계 등이라 말씀드렸는데 낱낱의 계목을 전체적으로 계상이라 하고, 계상을 낱낱이 열거함으로써 마음으로 이식하거나 수계식을 통해 마음 속 다짐하는 맹서를 계체라 한다.이 계체는 천둥소리보다 커서 삼세제불이 다 응하시고 일체중생이 동감하며 유정 무정이 하나로 통하는 법성체(法性體)다.유정 무정이 모두 계체에 속하나 계를 받지 않으면 계체가 생겨나지 않는
『사문일과』는 18세기 즈음에 두드러진 조선불교의 융합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헌은 동시대에 발간된 또 다른 특이한 문헌인 『삼문직지』와 함께 그 의미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삼문직지』는 청허 휴정에서 상월 새봉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한 것으로 짐작되는 조선 영조·정조 때의 승려인 진허 팔관(振虛捌關, 혹은 捌開)이 염불·교학·선 등을 회통적으로 정립하여 편찬한 책이다. 불교를 크게 염불문과 원돈문 그리고 경절문으로 나누어 당시 선가 중심의 수행요체 등을 설명하였다. 염불문은 정토, 원돈문은 교, 경절문은
앙산 혜적(仰山慧寂 807~883)선사는 위산영우의 제자로 광동성 소주(韶州)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섭(葉)씨. 앙산은 소석가(小釋迦)로 불릴 만큼 지혜가 남달리 깊었다. 스승인 위산 영우(潙山靈祐 771~853)와 함께 위앙종을 창종한 인물이다. 위앙종은 5가종풍에서 남다른 특색을 지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임제종과 운문종이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날카롭고 절박하다고 평가받고 있고 조동종은 시종여일 주도면밀한 편이며, 법안종은 활달한 기질을 자랑하는 것으로 후대에 전한다. 그에 반해 위앙종은 스승이 어린 제자를 가르치듯 온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