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융합은 어떻게 한국불교의 전통이 되었나⑤.끝.

염불문은 정토, 원돈문은 교, 경절문은 선의 진수를 집약
삼문수학 정착돼 승려들은 선 중심으로 교학과 염불 수학
경운 화상으로 대표되는 선암사가 이러한 성격을 반영해
근대불교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

『사문일과』는 18세기 즈음에 두드러진 조선불교의 융합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헌은 동시대에 발간된 또 다른 특이한 문헌인 『삼문직지』와 함께 그 의미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삼문직지』는 청허 휴정에서 상월 새봉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한 것으로 짐작되는 조선 영조·정조 때의 승려인 진허 팔관(振虛捌關, 혹은 捌開)이 염불·교학·선 등을 회통적으로 정립하여 편찬한 책이다. 불교를 크게 염불문과 원돈문 그리고 경절문으로 나누어 당시 선가 중심의 수행요체 등을 설명하였다. 염불문은 정토, 원돈문은 교, 경절문은 선의 진수를 집약한 것으로, 곧 삼문일실(三門一室)의 뜻을 밝히고자 하였다. 불교 삼문이 이름만 다를 뿐 뜻은 같은 것으로 삼문이 결국 하나로 귀결됨을 논한 것이다.

먼저 염불문에는 10종과 2종 그리고 5종 등 세 가지 종류의 염불법을 소개하고 있다. 「칭명예념선후절차(稱名禮念先後節次)」라는 제목 아래에 각종의 진언과 게송을 싣고 있는데 한문과 언해를 함께 싣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원돈문은 지눌의 「원돈성불론문답(圓頓成佛論問答)」과 의상의 「사법계도송(四法界圖頌)」을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 경절문에는 목우자의 「간화결의문답(看話決疑問答)」, 「휴휴암주선문(休休庵主禪文)」, 「시각오선인법어(示覺悟禪人法語)」·「정진도설(精進圖說)」·「(간당규)看堂規」 등을 실었다.

이 책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찬술자가 진허팔개(震虛捌開)로 소개된 경우가 있었고, 책이름도 금세기 불교관계 전적을 총망라한 야심적 사전인 소야현묘(小野玄妙)가 편찬한 『불서해설대사전』에서도 『삼문진지(三門眞指)』로 소개되어 있을 정도로 논쟁의 소지가 많았던 문헌이다. 더구나 이 책의 찬술자로 되어 있는 진허팔관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1780년(정조 4)에 지어진 상월화상의 문집인 『상월대사시집』에 실려 있는 「상월선사행적」 가운데 진허 팔관(振虛八關)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1782년(정조 6)에 입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저술로는 『삼문직지』 외에 『진허집』 1권이 현존하는데, 1786년(정조 10) 7월에 청룡사에서 개간된 것이다. 『삼문직지』는 조선후기 불교계의 동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저술이다. 여기서 염불과 선 그리고 교가 혼합되어 나타나는 경향은, 조선후기 하층 민중으로까지 전파된 조선불교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다.

“지눌의 삼문이 ‘염불문’, ‘원돈문’, ‘경절문’으로(이 순서대로) 고착, 확정되기는 『삼문직지』에서이다. 진허팔관 또는 팔개라는 인물이 『삼문직지』를 간행한 것은 1769년경이라고 한다. 지금부터 약 이백 년 전의 일이다. 이미 서산(1520~1604) 문하 오족의 한 명인 편양당 언기(1581~1644)에 의하여 선문의 ‘경절문’과 ‘원돈문’ 공부 밖에 ‘염불문’이 운위되고 있는 것을 보면, 조선 중·후기의 한국 불교계는 중국 명나라 이후 유행하게 된 선정불이(禪淨不二)의 이념에 따라 염불을 정당한 공부 방법으로 인정하였음이 틀림없다.”

경운 원기 선사 서판(書板). 석옥 청공 선사 「산거시」에 차운. (석문) 次 石屋淸珙禪師山居詩以爲自家趣旨紙囊纔乏舊年茶又煮江南橘柚花一縷香烟藏不得松風吹落野人家石翁擎雲 (번역) 석옥 청공 선사의 산거시를 차운해서 자신의 종지로 삼음.종이 주머니에 조금 남은 지난해 묵은 차를 다시 강남의 귤 유자꽃과 함께 달이니한 줄기 향 너무 좋아 애써 감출 수 없고 솔바람은 불어와 시골집에 떨어지네.번역=신규탁 연세대 교수
경운 원기 선사 서판(書板). 석옥 청공 선사 「산거시」에 차운. (석문) 次 石屋淸珙禪師山居詩以爲自家趣旨紙囊纔乏舊年茶又煮江南橘柚花一縷香烟藏不得松風吹落野人家石翁擎雲 (번역) 석옥 청공 선사의 산거시를 차운해서 자신의 종지로 삼음.종이 주머니에 조금 남은 지난해 묵은 차를 다시 강남의 귤 유자꽃과 함께 달이니한 줄기 향 너무 좋아 애써 감출 수 없고 솔바람은 불어와 시골집에 떨어지네.번역=신규탁 연세대 교수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단국대학교 소장본 『사문일과』는 18세기 조선불교의 융합적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7~18세기를 거치면서 불교계는 선, 교학, 염불의 삼문수학이 정착되어 승려들은 선을 중심으로 교학과 염불을 수학하였던 것이다. 삼문수학은 청허휴정 스님에 의해 처음 주장되었고, 그의 제자 편양언기 스님이 그 내용을 구체화시켰다. …… 18세기에 이르러 화엄교학이 전국 강원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선 중심의 삼문수학에서 벗어나 삼문은 점차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되었다. …… 19세기 불교계는 선 중심의 17~18세기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삼문이 동등하게 인식되거나 오히려 교학이 더 우위에 놓이는 상황으로 변화되었다.” 『사문일과』의 구성과 형식은 불교의 여러 전통을 융합하여 실제적으로 조선불교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던 조선말 선암사의 가풍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김경운의 메모와 현토가 목격되는 등 그가 직접 소장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며, 융합적 불교관을 바탕으로 조선불교의 내실을 다져 일제 강점기의 엄혹한 환경을 타개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Ⅴ. 맺음말

선교융합은 비단 선과 교학불교의 융합이나 회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불교에서 선교융합의 기조는 정토까지 포함한다. 고려의 지눌은 교학적 지식과 선 체험의 겸비를 통해 기존의 불교체제와 구별되는 새로운 출가 수행자의 위상을 정립했다. 정혜쌍수로 상징되는 선교융합의 기조는 여말선초의 권력전환기에 불교에 비판적인 성리학자들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조선에서 불교를 유지하는 명분으로 그리고 실제적 기준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

이후 조선조를 거치며 선교융합의 기조는 삼교융합을 통해 확장내지는 보강되었다. 선교융합이 수행론의 범주에서 국한된 것이라면 삼교융합은 구원론의 범주까지 염두에 둔 것이었다. 삼교융합의 기저에는 유학적 구원론이 깔려있었다. 그것은 충효를 근간으로 하는 유학적 세상 구원론을 적극 수용하고 불교적으로 체화하는 과정이었다. 선교융합의 기조는 조선후기와 구한말을 거치며 정토를 융합하는 방식으로 확장 되어나갔다.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헌이 『삼문직지』와 『사문일과』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사문일과』는 18세기 즈음에 두드러진 조선불교의 융합적 특징과 선암사의 가풍을 보여주는 준다. 이 책에서 보이는 선화엄-정토의 융합적 성격이 종교학적으로 볼 때 사실 유별난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출가 수행자의 종교적 체험 혹은 수행과 수행, 깨달음에 대한 이론적 설명, 그리고 일반 신자들의 신행생활, 종교 일반에서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합친 형태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선교융합으로 대표되는 한국불교의 성격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 또 이 문헌의 구성적 특징이 이러한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김경운 화상으로 대표되는 당시 선암사를 중심으로 한 한국 근대불교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동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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