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석가’로 불린 위앙종 창시자

-앙산혜적의 임종게

앙산 혜적(仰山慧寂 807~883)선사는 위산영우의 제자로 광동성 소주(韶州)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섭(葉)씨. 앙산은 소석가(小釋迦)로 불릴 만큼 지혜가 남달리 깊었다. 스승인 위산 영우(潙山靈祐 771~853)와 함께 위앙종을 창종한 인물이다. 위앙종은 5가종풍에서 남다른 특색을 지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임제종과 운문종이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날카롭고 절박하다고 평가받고 있고 조동종은 시종여일 주도면밀한 편이며, 법안종은 활달한 기질을 자랑하는 것으로 후대에 전한다. 그에 반해 위앙종은 스승이 어린 제자를 가르치듯 온후하고 자상하다. 때문에 후세의 선사들은 위앙종을 가리켜 교육적이고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근엄한 종파라고 평한다.

이러한 종파를 개창한 앙산은 정위선(正位禪)의 가르침으로 무설토 유설토의 선지를 드러냈다. 후세에 사람들이 앙산을 '소석가(小釋迦)'라는 칭호를 붙인다. 앙산의 임종게도 평소 그의 사상이 농축돼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일흔 일곱 나이 차니
무상이 오늘에 있다
그래서 해가 중천에 뜬 정오
양손으로 세운 무릎 휘어잡고 오른다.

年滿七十七 無常在今日
日輪正當午 兩手攀屈滕

앙산도 임제 의현과 마찬가지로 정오가 되자 법좌에 올라 대중에게 이별을 고한 후 이 게송을 읊고 입적했다고 한다. 일흔 일곱의 나이가 '찼다'함은 생존의 충만 충족을 뜻한다. 무상이 오늘에 있다 함은 생사에서 해방됐고 절대적 진리 속에 살아온 그에게 있어서 자신이 가는 날을 '무상'으로 뜻하지는 않을 것이란 점에서 깊게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무상은 역설적으로 '영원한 지금'일 수 있다. '영원한 지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깨달은 이의 눈으로선 중생을 일깨우기 위해 이런 표현을 빌어올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그것은 바로 뒤에 나오는 '일륜정당오'를 통해 알 수 있다. 앞서 수산성념의 임종게에서 살펴 본 '일륜당오'의 뜻과 맥을 같이하는데 당오란 온갖 사물이 털끝만한 그림자도 수반하지 않은 채 그 진상을 확연히 드러내는 순간을 말한다. 그 순간에 그는 마지막 구의 표현처럼 '양손으로 세운 무릎 휘어잡고 오른다'처럼 그런 식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 자세는 일원상의 모습이다. 그는 생전에 '일원상'의 가르침을 폈다. 평소에도 앙산은 일원상을 그려놓고 그 속에 여러 가지 글이나 상징물을 그려 넣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죽는 순간에도 일원상의 가르침을 몸소 체현해 보이며 그렇게 갔다.

-불교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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