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서면으로 진행한 업무협약식 현장. 사진제공=문화재청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서면으로 진행한 업무협약식 현장. 사진제공=문화재청

 

대승불교와 불상 등 간다라 문화문명을 대한민국 고대사에 전한 간다라 출신 마라난타 스님의 모국 파키스탄과 대한민국간 큰 의미를 담은 회향식이 최근 있었다.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재청은 파키스탄 문화유산청과 문화유산 공적개발원조(ODA) 양해각서를 지난 10월 21일 체결했기 때문이다. 회향식은 대한민국이 파키스탄 북부지역 간다라 유적 정비·활용과 기록화 사업을 5년간 지원한다는 각서이다. 이를 위해 400만 달러(47억원 규모)를 투입한다, 마라난타 스님이 불교와 불상이라는 불씨를 전한 1637년 만에 고향땅에서 그 업적을 높이 사는 회향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이들이 전등불(傳燈佛)이 돼서 대승불교 고향에 보은을 한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파키스탄 간다라지역은 기원전 500년에서 서기 500년까지 1000년 동안 서유럽인 그리스와 로마, 중앙아시아 그리고 인도와 중국을 잇는 비단길(실크로드) 중심부였다. 이 지역을 일러 고대 동서양 문화문명을 융합한 간다라 문화문명이 꽃 핀 곳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 문화문명의 상징이었던 불교와 불상을 백제에 소개한 이가 바로 그곳 출신 마라난타 스님이다. 서기 384년 지금의 파키스탄 간다라지역 초타라호르 출신의 마라난타 스님이 백제 침류왕 원년에 국사로 초빙돼 왔다. 왕실에서 직접 삼고초려한 사례이다. 이전 삼한시대에도 인도 아유타국 출신 허황후가 지금의 김해 가락국 김수로왕에게 왕비로 시집와 아들 7명을 출가시킨 예는 있다. 하지만 삼한이 고구려, 백제, 신라로 흡수 합병이후 왕실차원에서 호국(외국) 스님을 공식 국사로 모신 첫 번째 스님이 마라난타 스님이다.

백제...불교를 국교로 수용 국론통일과 민심 수습 나서

서기 100년 전후로 당시 시대상황은 토속 신앙, 도교, 그리고 산발적으로 불교가 유입되는 과정이라 삼국은 딱히 어느 신앙을 국교라고 공식화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삼국 뿐만 아니라 세계 불교사의 중심지인 인도 역시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불교 등 수많은 종교가 혼재한 당시 시대상황과 다르지 않다, 특히 간다라지역 역시 아쇼카 대왕에 이어 카니시카 왕때에 이르러 불교를 국교로 삼아 국론 통일과 민심 통합을 도모한 흔적이 바로 불상과 불경 그리고 이를 체계화한 의식이었다.

백제 왕실도 삼한 중 마한을 흡수한 형국이라 국론 통합과 민심 수습을 어떤 형태로든 해야만 하는 수습책이 필요한 때였다. 이 때 등장한 이가 바로 마라난타 스님이었다. 당시 중국과 활발한 교류를 해온 백제는 중국 동진에서 신출귀몰과 이적으로 불교를 포교중인 외국인 스님이 있다는 소문을 접하고 사신을 보내 국사로 모시는 결단을 내렸다. 『삼국유사』와 『해동고승전』 등에 따르면 그 시기가 바로 384년 9월 마라난타 스님 일행이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를 통해 백제로 오게 된 계기이다. 그냥 오지 않았다. 불상과 불경 등 성물(聖物)을 백제 왕실에 전하고 백제 최전선이라 일컬어지는 영광, 나주부터 북쪽으로는 고구려와의 접경지역인 한강 인근 우면산 대성사와 몽촌토성 곳곳에 사찰과 함께 불상을 조성했다.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이후 500년 만에 간다라지역에서 처음 등장한 불상을 포함한 성물이 백제 왕실로 불교와 함께 전해진 것이다. 백제식 건축양식에 간다라식 불상과 성물이 융합한 백제 불교가 서막을 연 것이다. 백제 불교는 백제에 그치지 않고 일본 왕실에 직접 불교를 전파했다는 점에서 동북아시아에 간다라 문화문명의 진수를 수용하고 재탄생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간다라 유물관 내 마라난타상.
간다라 유물관 내 마라난타상.

 

필자가 지난 2012년에 민희식, 활안 한정섭 스님을 포함한 19명의 순례단과 함께 다녀온 간다라는 그야말로 종교, 정치, 군사,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여러 이질적인 성분이 섞인 철을 용광로처럼 녹여 새로운 철로 재탄생시킨 흔적들이 넘쳐났다. 불상 이전의 각기 서로 다른 토속신앙, 다른 종교, 수많은 전쟁사속에 이민족간 문화 혼재 기록들이 간다라지역 곳곳의 박물관에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다. 불교와 불교유적지가 수많은 전란 속에 파괴되고 국교마저 이슬람교로 송두리째 뒤바꼈지만 그 흔적과 유적지만은 남아있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된 간다라불교 부활

이번 양해각서는 그 유적지를 복원하는데 동참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간다라 유적을 현장 조사해서 유물을 목록화하고, 보존관리 센터 개설과 보존처리 전문인력 양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도면·고문헌·사진 등을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디지털 전시관을 조성하는데 40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한다.

여기까지 오는데 163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384년 백제 침류왕때 마라난타 스님이 온 이후 백제 역시 삼국통일 과정에서 신라에 흡수 통합되는 비운의 역사 속에 잊혀진 터라 불교사에도 설화나 전설로만 구전할 뿐이었다. 파키스탄의 간다라 고대사가 잊혀졌던 것처럼 백제 불교도 승자의 태양에 가려져 달밤 신화 속에 묻혔던 것이다.

신화를 다시 역사 속에 등장시킨 인연은 뜻밖에도 프랑스에 유학중인 불문학도였다. 지난 1950년도 프랑스를 유학중인 민희식이라는 유학생이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간다라문화와 불교였다. 불문학자의 꿈을 품고 프랑스로 유학을 간 유학생이 어느 날 도서관에서 간다라문화의 보고를 알게 됐고, 그 문화가 백제에 전래된 것을 계기로 때 아닌 불교 포교에 나선 것이다. 민희식 박사가 귀국 후 이를 적극 전파하게 된 배경에는 부친이 일제시대 전남 영광과 함평지역 공익의사로 활동한 시절 당시 초등학교 추억이 인연이 됐다. 그곳에 간다라불교가 전파됐다는 기록을 봤기 때문이다. 불문학자를 꿈꿨던 유학생에게 간다라문화와 불교를 도서관에서 마주한 것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었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영광에 간다라불교가 전래된 것을 알게 된 민희식 박사는 수많은 저서를 통해 간다라문화와 불교를 알리는데 앞장섰다. 만나는 스님마다 불상과 불교의 대승불교 뿌리가 간다라지역임을 설파한 것이다. 인연은 인연을 낳는 계기로 이어졌다. 서울 강남 소망교회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박교순 여성이 있었다.

기독교 신자가 대승불교와 간다라불교를 알리는 보살로

어느 날 문득 삶의 의미를 찾으려던 차 유럽여행을 꿈꾸고 당시 대학에서 불문학자로 정평이 나 있었던 민희식 박사에게 조언을 구하자 파키스탄 간다라지역을 추천했다고 한다. 유럽은 서양 편향적지만 간다라지역은 동서양을 균형있게 볼 수 있는 곳으로 권했다고 한다. 박교순 박사는 민희식 교수의 추천으로 무작정 나선 파키스탄 간다라 지역 여행길에서 불상을 만났다. 불상과 박교순 박사는 한 순간 물아일체였다고 한다. 박교순 박사는 그 인연을 계기로 여성임에도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 유학길에 나섰고 간다라불교 미술학을 전공, 한국과 파키스탄간 간다라문화의 든든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민희식 교수와 박교순 박사의 역할이 없었다면 간다라문화 문명도 역사 속에서만 스쳐간 기억 속에 묻혀졌을 것으로 본다.

민희식과 박교순 박사가 놓은 간다라불교와 문화의 징검다리를 이제는 스님, 학자, 그리고 불교도들이 오가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마저 자신의 고대사를 까맣게 잊었던 것을 대한민국 스님, 학자, 교수 들이 일깨운 것도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회자정리거자필반(會者定離去者必返)이라는 말처럼 간다라불교와 한국불교사가 다시 만난 것이다. 박교순 박사는 파키스탄 현지에서 간다라불교문화사를 전공중이었던 지난 2002년 파키스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천태종 총무원장 이하 천태종 각 부장스님들을 초청하도록 한 것을 계기로 한국과 파키스탄 문화교류에 초석을 놓았다. 이때 파키스탄을 방문한 전운덕 천태종 총무원장은 당시 무샤라프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파키스탄 고대사가 불교였음을 설파했고, 파키스탄 불교유적지 복원에 힘써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심전심이었는지 무샤라프 대통령은 스님의 조언에 화들짝 놀랐다고 다시 배석했던 박교순 교수는 귀띔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즉시 우리로 치면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순례단이 이야기 하는 모든 내용을 정리해서 복원방안을 강구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후 대한민국 순례단을 다시 초청하는 길에 한국 스님들이 구체적인 복원과정을 한국 사찰의 예를 들어 설명했더니 어느 때든지 오셔서 자문을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 같은 공로로 지난 2014년 파키스탄의 발전에 각 분야에서 큰 공로를 세운 사람들한테 매년 파키스탄 광복절에 주는 가장 명예로운 상 중 하나인 문화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대통령궁에서 열린 수상식에는 파키스탄 주재 각국 대사, 육해공군 참모총장, 각 장관, 주지사 등 최고의 귀빈들 300여명이 축하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그 자문이 오가는 길에 드디어 대한민국 국가차원에서 지원에 나섰다. 마라난타 스님이 불씨를 뿌린 1637년만의 회향길이다.

-전 연합뉴스 기자  ㆍ ‘천년고찰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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