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정종 제2기의 계승자 환암혼수(幻菴混修)선사 1. 해동선법의 시작환암혼수(1320-1392)는 고려말기에 태고보우(1301-1382)의 사법제자로서 당시의 나옹혜근(1320-1376)과도 깊은 교류를 하였다. 혼수는 고려 말기의 임제정종의 법맥과 그 사상을 전승한 인물로 임제정종 제2의 계승자이다. 여기에서 제2기의 계승자란 고려 말기에 원나라를 통하여 임제정종을 전승한 태고보우와 나옹혜근과 백운경한 등 일군의 계승자를 의미한다. 그 제1기의 계승자는 신라 말기 지리산화상 및 고려초기 혜조국사 담진을 비롯한 일군의 임제선법의 수용자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혼수가 차지하고 있는 선법맥과 그 선풍의 위상을 살펴보기에 앞서 한국의 선법전래와 그 전개에 대하여 개략적인 설명을 곁들이기로 한다.선의 직접적인 원류는 석가모니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이후 6세기 초반에 보리달마를 통하여 중국에 전해진 선법은 8세기 초반에는 신라에까지 전승되었다. 해동에 선법을 전승한 최초의 인물은 중국 선종의 제4조로 간주되고 있는 대의도신의 적자였던 법랑으로 알려져 있다. 법랑은 도신의 동산법문을 충실하게 계승하여 인가를 받는 한편 달마로부터 비롯된 조사선의 정통가풍을 해동에 전하였다. 그러나 법랑의 선법은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못한 탓인지 당시의 사람들로부터 이해되지도 못하고 수용되지도 못하였다. 마치 보리달마가 중국에 대승의 선법을 전래했을 때 기연이 성숙하지 못하여 소림사에서 면벽구년의 세월을 기다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숙세의 기연이 익은 탓인지 천만다행으로 당시에 지리산에서 좌선수행을 하면서 심법을 닦고 있던 신행이라는 제자를 얻을 수가 있었다. 마치 보리달마가 중국에 도래하여 수년 후에 비로소 혜가라는 제자를 얻은 것과 같았다. 신행은 호거산에 은둔하고 있던 법랑에게 3년동안 참학하여 선법의 인가를 받고 법랑의 심법을 계승하였다. 법랑대사가 입적하자 신행은 동경으로 나아가 선법을 펼치고자 노력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신행은 아직까지 인연이 성숙하지 못한 것을 알고는 입당유학의 길에 올랐다. 입당하여 당시에 소위 신수 - 보적 - 지공으로 계승된 북종의 선풍을 인가받고 그 심법을 계승하여 778년 신라에 귀국하였다. 그러나 신라사회는 아직까지도 신행의 선법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신행은 준범에게 심법을 전수하고 779년 입적하였다. 준범의 선법은 혜은 - 지선으로 계승되었다. 이 법랑의 선법전승이야말로 해동에 전래된 최초의 선법이면서 선법이 분파되기 이전의 순선(純禪)의 선법이다. 이 해동선법은 한편으로는 동산법문의 정통선법을 계승하여 순선으로 상징되는 달마선법의 정법안장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위 북종선법의 정통을 계승하여 법맥이 분파된 이후의 선법이었다. 이로써 법랑이 전승한 선법은 정통법맥의 전승과 함께 석가모니로부터 이어지는 정법안장이었다. 또한 보리달마로부터 비롯된 중국선종의 경우는 인도사람에 의하여 전승되었지만 그와는 달리 신라인이 직접 중국에 유학하여 적극적으로 선법을 수용했다는 의의를 담고 있다. 법랑보다 50여 년 이후 821년에는 도의선사가 중국 남종선법의 정통을 전래하였다. 이때까지의 선법은 소위 중국의 선종오가로 불리는 종파선종이 형성되기 이전의 시대에 해당하였다. 따라서 이 무렵까지 신라에 전승된 선법의 경우는 적어도 법맥에 관해서는 그다지 자파의 의식이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에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 임제종 위앙종 등 선종오가가 형성되면서부터는 신라에 전승된 선법의 경우에도 종파에 따른 법맥과 그 정통성을 강조하는 풍조가 형성되었다. 중국의 선종오가가 형성된 이후에 신라에 전래된 종파불교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전래된 것은 조동종풍이었다. 뒤를 이어 법안종 위앙종 운문종 임제종의 종풍이 고려초기에 전래되었다. 조동종 계통의 원류를 처음으로 전래한 경우는 낭공행적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는 고려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걸쳐 이엄 여엄 경유 형미 경보 등을 통하여 전래되었다. 이처럼 법랑으로부터 비롯된 동산법문의 계승과 도의로부터 비롯된 소위 남종의 법문과 이후 종파선종의 전래 등은 고려 전반기에는 소위 9산선문 14산문 6산문 3원 등으로 유지되었다. 이 외에도 일군의 집단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소멸해버린 개별적인 선풍 내지 사찰 등이 고려 중기에 이르러서는 조계선법 혹은 조계선풍 등으로 불리우기도 하면서 이합집산하면서 고려 말기까지 존속되었다. 이와 같은 선법은 때로는 화엄을 위시한 교학불교와의 성격의 차이 등으로 인하여 상호간에 자파의 주도권 경쟁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 혜조국사 담진와 보조지눌로 계승되는 사굴산파 계통과 원응국사 학일과 보각일연으로 계승되는 가지산파 계통의 선법이 주축을 형성하면서 고려선법의 틀을 형성하고 전개시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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