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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明)은 범어로 ‘아비드야(Avidyā)’라고 하며, 진여(眞如) ․ 광명(光明) ․ 원만한 깨달음과 같은 것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즉 진리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음을 말하는데, 진여가 한결같이 평등한 것임을 알지 못하고, 현상의 차별적인 여러 모습에 집착하여 현실세계의 온갖 번뇌와 망상의 근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이것은 또한 무의식의 활동으로 선행(善行)보다 악업(惡業)을 짓는 경우가 더 많은데, 그것은 탐욕 ․ 성냄 ․ 어리석음 등으로 뒤섞여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면 이러한 무명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긴 것일까?《기신론(起信論)》에 보면 ‘무명홀기(無明忽起)’ 라고 하여 무명은 문득 생기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홀연히 생긴 무명은 또한 홀연히 없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
사설
한국불교신문
2010.08.1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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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불교” 유식학의 전개유식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마음의 불교라고 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이 모두 다 마음에 관련되지 않은 부분이 없지만 특히 마음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마음의 여러 가지 작용과 기능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가르침이 바로 유식불교이다.유식불교는 인도에서 용수를 중심으로 한 공사상과 더불어 대승불교의 가장 큰 양대산맥으로 알려져 왔다. 용수의 공사상은 제일 강조하는 것이 사물을 연기에 의해서 생겨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사물에는 영원불변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공을 실천하는 실천행으로 중도를 강조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공이라고 하는 것을 잘못 해석하여 허무론적 견해로 착각하는 경우이다. 모든 것을 공이라고 한
사설
한국불교신문
2010.08.1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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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隨萬境轉(심수만경전)이나 轉處實能幽(전처실능유)라 隨流認得性(수류인득성)이니 無喜亦無憂(무희역무우)니라. 마음은 언제나 여러 대상에 따라 움직이지만 움직이는 그곳에 실로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마음이 움직이는 그대로 본성을 자각하여 기쁨이나 근심의 차별에 떨어지지 않는다. 마음은 형체도 없고, 오고 감에 걸림도 없는지라 몸을 벗어나 어디라도 자유롭게 다닐 수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의 실상을 인정한 연후에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능력을 키울 일입니다. 우리 마음을 어딘가 한 곳에 머물게 하지 말라, 그 대상에 집착하여 한편으로 기뻐하고 또 한편으로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한 대상에 머문다는 것은 모두 헛된 집착이요, 망상의 결과인 것입니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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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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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잡는 한 백정이 있었다. 그 백정은 술을 많이 먹고 싸움도 잘하며 불효막심한 사람이었다. 매일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면 늙은 어머니에게 욕설을 함부로 하고, 어떤 때에는 어머니에게 손찌검까지 할 때가 있었다. 혼자 사는 늙은 어머니는 항상 불효한 자식을 낳은 것은 전생에 업장이 중한 까닭이라고 한탄만 하고 괴로운 세상을 그날그날 지내고 있었다.마침 그 이웃에 관음상을 모시고 예배 공양하는 착실한 신도의 집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아들이 돼지를 잡으러 간 틈을 타서 보타산 전에 가서 전생에 지은 죄업을 참회하고 불효자식을 감화시켜서 착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였다.그러자 그 아들이 하루는 보타산에 관세음보살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보타산에 가게 되었다. 각 절과 유명한 바위와 동굴을 모두
사설
한국불교신문
2010.07.2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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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五蘊)을 ‘오취온(五取蘊) ․ 오음(五陰) ․ 오중(五衆) ․ 오취(五聚)’라고도 합니다. ‘온(蘊)’이란 모아 쌓은 것, 화합하여 모인 것이란 뜻으로, 생멸하고 변화하는 모든 것을 색온(色蘊) ․ 수온(受蘊) ․ 상온(想蘊) ․ 행온(行蘊) ․ 식온(識蘊) 등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오온이라고 합니다.‘색온’은 스스로 변화하면서 다른 것까지도 장애하는 물체, 곧 물질을 말하고, ‘수온’은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감각작용을 말하며, ‘상온’은 대상(對象)을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각하는 마음의 작용, ‘행온’은 마음의 의지작용, ‘식온’은 모든 현상을 의식하고 분별하는 마음의 총체를 가리킵니다. 이와 같이 색온은 물질이고, 수 ․ 상 ․ 행 ․ 식온은 대개 마음의 작용을 말하는 것으로써,
사설
한국불교신문
2010.07.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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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공사상(空思想)(2) 공의 실천이 세상 모든 것들이 공이요, 동시에 그 공을 향한 단계로서 이해될 수 있다면, 어떻게 그 공의 세계를 체득할 수 있을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용수가 말하는 공(空) · 가(假) · 중(中) 삼제(三諦)의 논리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용수의 입장으로 되돌아가보자. 물론 꽃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꽃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우리들의 젊음도 마찬가지이다. 악을 보고서 참지 못하고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대결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나 어느듯 인생에 황혼이 지고, 서서히 기울어져 가는 서산을 보는 것과 같은 마루턱에 올라서게 된다. 인생이란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긴 것이 아니다. 젊음은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사설
한국불교신문
2010.07.2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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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하시기 전에 한나라의 왕자인 실달다(悉達多)란 이름으로 출가하여 설산에 들어가시어서 6년간을 수도하신 끝에 정각(正覺)을 이루시었다는 것은 불교를 믿는 사람으로서는 누구나 다 듣고 아는 바이지만 그 깨치신 정각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종파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화엄종에서는 일진법계(一眞法界)와 사법계(四法界)의 진리를 깨달으신 것이라 하고, 법화종에서는 실상묘법(實相妙法)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인 진리를 깨달으시었다고 하고, 진언종에서는 대만다라(大曼茶羅)의 극치를 깨달으신 것이라 하고, 법상종에서는 일심진여(一心眞如)와 뇌야연기(賴耶緣起)를 깨달으신 것이라 하고, 열반종에서는 불성(佛性)을 깨달으신 것이라 하고, 선종에서는 바로 사람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아서
사설
한국불교신문
2010.07.0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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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안거 결제를 맞아 백련사 설산스님숲이 날로 울창해지고 있습니다. 여리기만 하던 잎사귀들이 이젠 제법 짙푸른 녹음도 만들고 있는 요즘입니다. 여름 석 달 동안, 보다 더 착실한 수행을 다짐하는 것이 바로 하안거 결제일입니다. 예부터 우리 불가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보름까지 석 달 동안을 여름 안거, 또는 여름 결제라고 해서 산중스님네들은 절 안에만 기거하면서 산문(山門)밖에는 일체 나가지 않고 정진하는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이 전통은 예전에는 얼마나 엄격했던지 결제 중에 돌아다니는 스님은 맞아 죽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스님네들은 아무리 못마땅한 일이 있어도 이 기간 동안에는 다른 절로 옮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요즘도 선방이나 강원이 있는 큰 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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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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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과 돌과 함께 고요함을 즐기다『태고화상어록』중에서 행장을 제외한 곳에서 얻어진 소설암과 보우의 자료이다. (가) 보우가 귀국하니, 우리 공민왕께서는 제자의 예로 모심이 매우 성대하고 매우 공근하였다. 보우는 처신하기를 평상시와 같이 하고는 몇 달이 되지 않아서 몸을 빼어 달아났는데, 오랜 뒤에 그가 옛날에 숨어살던 곳으로 돌아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소설산에 암자를 세우고 나물밥을 자시고 淡然히 수도생활을 하면서 사람을 함부로 만나지도 않았다. (李崇仁 識, 「太古語錄序」,『韓國佛敎全書』6, 699쪽.)(나) 이『원증국사어록』은 그의 시자가 기록한 것으로 그 날카로운 논변과 활달한 이치는 속인들이 감히 헤아릴 바 아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玄陵(공민왕)이 왕위에 계실 때, 특히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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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신문
2010.05.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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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산 정상에서 붓는 물과 같다더니 3년이 이렇게 빨리 지나 법륜승가대학 제1기 졸업생들이 오늘 동문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처음 종단에서 강원을 발표했을 때 주변에서 우리를 보는 시선은 그리 밝지도 않았다.기대하던 태고의 강원이 문을 열고 보니 이 소식을 듣고 전국 각처에서 모인 수행자가 100명에 육박했다. 그동안 교육시설문제로 중단하였다가 전승관이 완성되어 좋은 강당에서 강의를 듣게 되니 그동안 기다리던 교학승들에게는 메마른 대지에 단비가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처음 입승 일을 볼 때 더욱 놀란 것이 있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시간과 큰 비용을 감수하고 강의를 듣기 위하여 천리길을 마다않고 비 눈보라가 쳐도 즐겁게 참석하는 향학열. 그 열정은 태고종승려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당시 집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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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신문
2010.04.2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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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라면 연기법칙 즉 인과의 도리를 삶의 지혜로 삼아야 한다. 만일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그리고 대우주 속에서 생멸하는 현상들이 우연 또는 절대자 창조주의 권능에 의하여 나타나는 모습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진정한 불자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인연따라 벌어지는 현상임을 가르치는 것이 불교이기 때문이다.연기는 인연생기의 준말로 일체의 존재는 상호 연관되어 변해간다는 것이며 이것이 세상의진실한 모습이란 것이다. 이 세상 어떠한 것도 저절로 된 것은 없다. 신의 창조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본래부처 있었던 것도 아니다. 반드시 그 어떤 인연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변해가며 그리고는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 불교의 중심사상인 연기법인 것이다.연기 인연 인과라는 말은
사설
한국불교신문
2010.04.2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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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葉紅蓮在海中(일엽홍련재해중) 碧波深處現神通(벽파심처현신통) 昨夜寶陀觀自在(작야보타관자재) 今日降赴道場中(금일강부도량중) 한 잎사귀 붉은 연꽃이 바다 가운데 있어 푸른 파도 깊은 곳에 신통을 보이셨으니, 어젯밤 보타산에 계시던 관세음보살님이 오늘 이 도량에 강림하셨습니다. 이 게송은 중국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인 소동파(蘇東坡)의 여동생 소소매(蘇小妹)가 지은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소소매는 역시 당송 팔대가의 한사람인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 받아 시와 서에 뛰어났다고 합니다. 소소매가 지은 글 가운데에는 특히 관세음보살을 예찬하는 글이 많이 있는데 오늘날까지도 관음예문이라 불리어서 불자들에게 애송되기도 합니다. 蘇小妹의 관음예문소소매가 이 게송을 지은 데에는 다음
사설
한국불교신문
2010.04.2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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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깊은 산골에 절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도를 닦고 있는 세 스님이 있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도만 닦고 있었다. 하루는 이 스님들에게 산신령이 나타나서는,“참으로 고생이 많구나. 내가 그대들의 소원을 들어줄 터이니 하나씩만 말하여라”뜻밖에 나타나서 이런 고마운 말을 하는 산신령에게 다 같이 말했다.“네, 신령님. 저희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여기에 나무 열매가 하나씩 있는데 황금색이다. 이 나무 열매를 입 속에 넣고 있으면 복을 반드시 받으리라. 입 속에 있어야 복이 되지, 입 밖에 내 놓으면 안 되느니라”하고 신령은 사라졌다. 입 속에 열매를 넣는 것쯤이야 어려울 것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대단히 기뻤다. 그런데 처음에는 쉬운 줄 알았던 열매 머금고 있기가 쉬
사설
한국불교신문
2010.04.2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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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보는 불법을 수행하고 지키며 중생들에게 널리 전파하시는 승단(僧團)을 가리킵니다. 지혜롭고 위덕이 있어 많은 사람들의 의지처가 되며, 불법을 밝혀 세상을 빛내는 보석 같은 분들이기 때문에 승보라고 합니다. 또 스님들의 모임 뿐만이 아니라 단체를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도 승보라고 하는데, 오늘날 승보라 함은 보통 비구 · 비구니(比丘尼) · 사미(沙彌) · 사미니(沙彌尼)의 사중(四衆)을 가리킵니다.이러한 승보에는 수행의 깊이와 법력(法力)의 정도에 따라 여러 가지 차별이 있습니다. 문수(文殊) · 보현(普賢) · 관음(觀音) · 지장(地藏) 보살님 같은 뛰어난 분도 계시고, 부처님의 10대 제자인 사리불(舍利弗) · 목건련(目健連) 같은 대아라한(大阿羅漢)도 계시며, 원효대사(元曉大師) · 태고국사
사설
한국불교신문
2010.04.2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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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 넘어선 중도, 그게 바로 연기공이란 용어는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말로 특히 반야경(般若經)을 비롯한 대승경전에서 강조되고 있다. 공의 원어는 ‘sūnya로서 ‘부풀어 오른’ , ‘속이 텅빈’ , ‘공허한’ 등의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것이 불교에 도입되어 공으로 한역되었다. 의 공(空)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사람이 용수(龍樹)이다. 용수는 남인도 사람으로서 불교와 타 종교에 정통한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중국에서는 ‘팔종의 조사’라고까지 추앙되었다. 이 용수의 대표적인 저술인 을 중심으로한 사상을 중관(中觀)사상이라고 한다. 중론의 목적은 석존의 근본적인 가르침인 연기가 곧 팔부중도이며 그것이 곧 희론이 적멸한 공임을 해명하려는 것이다. 용수는 중론의 귀경게에서 공의 의미
사설
한국불교신문
2010.04.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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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태고의 즐거움을 아는가”지금까지 보우가 소설암에 은거한 이유를 몇가지 제시해 보았는데, 이제부터는 소설암의 자료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보우와 소설암의 관련 자료가 가장 풍부하게 남아 있는「圓證 行狀」자료들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가) 무자년(1348) 봄에 스님은 본국으로 돌아와 중흥사에 머물면서 夏安居를 지내고, 자취를 숨기기 위해 迷原莊을 지나는데, 善大라는 늙은 아전이 끓어앉아 울면서 만류하였다. 그리하여 보우는 그와 함께 흐르는 물을 따라 龍門山 북쪽 기슭에 이르렀다. 푸른 숲은 깊고도 빼어났으며 꽃다운 노을은 은은하였다. 터를 잡아 암자를 짓고 小雪이라 이름하고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거기서 종신토록 살겠다 하며「山中自樂歌」한편을 지었다. (「圓證 行狀」, 『韓國佛敎
사설
한국불교신문
2010.04.2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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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祈禱)라 함은 우리 인간들이 자기의 힘으로는 미칠 수 없는 어떠한 일이 있을 때 자기 이상의 강대한 위력을 가진 불(佛) · 보살(菩薩)또는 어떠한 신(神)의 힘을 빌려서 그 가피(加被)를 구하는 것을 말하며 우리가 불 · 보살 · 명왕(明王=신장(神將)) · 제천(諸天) 등에게 각자가 자기의 서원(誓願)을 세우고 기도를 하면 그 감응(感應)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도법(祈禱法)은 소승교(小乘敎)의 경전(經典)에는 보이지 않고 오직 육도(六道)의 만행(萬行)을 주장하는 대승교(大乘敎)의 경전(經典)에만 나타나 있으며 현교(顯敎)에 속하는 금광명경(金光明經)과 인왕경(仁王經)에는 그 수법(修法)이 의궤(儀軌)는 나타나 있지 않고 그 뜻만이 나타나 있을 분이며 특히 밀교(密敎)에 속하는 여
사설
한국불교신문
2010.04.02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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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尊 설산수도 흠모...소설암으로지금까지 보우가 수도한 상원암과 전법 주지한 사나사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이들 사찰 이외에도 용문산에는 많은 불적들이 산재해 있다. 이것은 미지산을 한 폭의 그림과 같이 그려 놓은 아래의 글을 통해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미지산은 경성의 동쪽 1천1백50리에 있다. 미지산의 꼭대기는 迦葉峰이고, 가섭봉의 북쪽은 彌源莊과 小雪山의 암자가 있다. 또 그 북쪽은 옛 예맥의 땅이니 지금의 壽春花山으로써 산과 물이 가장 깊다. 가섭봉의 아래에는 妙德菴과 潤筆菴이고 윤필암의 아래는 竹杖菴이며 죽장암의 남쪽은 上院寺이다. 옛날 惠莊대왕이 상원사에 행차하시어 逆釐도량을 만들었으며, 이에 그 일을 그림으로 그려서 大學士들로 하여금 항상 인식하게 하였다. 상원사의 아래는 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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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신문
2010.04.0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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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떤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남의 논도 조금 부치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저자에 내다 팔아서 근근이 살아갔다.그런데 이 가난한 집에 제사가 자주 있었다. 다른 제사는 그냥 찬물 떠 놓고 지낸다고 하지만 어머니 제사만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한 번은 어머니 제사가 돌아와서, 장에 나가 나무를 팔아 고기 자반은 좀 마련하였는데 쌀이 없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자기가 부치고 있는 남의 논에 가서 잘 자란 올벼를 베어다가 밥을 하여 제사를 지내기로 하였다. “아, 우리 어머니 제사를 지내는데 내가 도둑질을 하누나. 비록 내가 피땀흘려 지은 논의 벼지만 원래 이 곡식은 남의 것이다. 나중에 추수를 다 하고 나누어야 하는데 미리 내 마음대로 베어다가 이렇게 했으니 참으로 주인에
사설
한국불교신문
2010.04.0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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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란 ‘세 가지 보배’라는 뜻으로, 불보(佛寶)와 법보(法寶)와 승보(僧寶)를 가리킵니다. 불보는 부처님을 가리키는데, 부처님은 우주의 본체이시며 진리의 인격체로서 다시 없는 보배와 같으신 존재이므로 불보라고 합니다. 법보란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 자체를 말합니다. 진리는 그 누구나,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변질되거나 소멸되지 않는 영원불변한 것이므로 그것을 귀중한 보배에 비유하여 법보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법보를 법문(法門)이라고도 하는데, 법문이란 중생들의 성품과 능력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에 이르는 길을 설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마치 높은 산에 오를 때 정상(頂上)은 하나이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은 많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부처님의 가르침을 8만 4천 법문이라고 하는데,
사설
한국불교신문
2010.04.02 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