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문수 보살과 보현 보살의 회향

 

보리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울적해진 선재 동자의 마음을 알아차린 미륵 보살이 다그치듯 그에게 말했다.
“선재야, 너는 옛날에 나와 함께 도를 닦다가, 보리심을 잃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구제 하기 위해 대 바라문의 집에 태어났었다. 이제 인연이 다해 여기로 온 것이니 몸을 바꾸게 되면 다시 도솔천에 태어나 일체의 지혜를 이루고, 깨달음을 얻어 너와 문수와 똑같이 평등한 자리에서 나를 보게 되리라. 그러니 문수를 찾아가서 다시 한번 보살행을 묻고 보현행을 닦거라.”
미륵 보살의 말에 슬픈 마음이 사라지면서, 정신이 번쩍 든 선재 동자는 보리의 손을 잡고 보문국의 소마다성을 찾아가 문수 보살에게 합장하며 절을 하였다. 문수보살은 반갑게 그들을 맞이하였다. 문수 보살이 앞으로 나와 그의 이마를 어루만져주며 말했다.
“장하도다. 선남자여. 험난한 구도의 길을 끝까지 잘 걸어온 것은 그대의 믿음 덕분이다. 그리고 동생 보리도 함께 동참하여 여행을 잘 마친 것도 크게 칭찬할 일이다. 이제 우리 다 같이 부처님을 친견하고, 임무가 끝나는 대로 보리도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다 주도록 하여라.”
선재 동자가 무릎을 꿇어 예를 올리자 문수 보살은 지혜의 칼끝을 높이 들어 빛을 만들더니, 그 빛을 선재 동자의 이마에 가만히 얹었다. 그 순간 눈앞에 선지식들을 만났던 긴 여정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정말 뜻깊고 보람 된 일들이라 저도 모르게 선재 동자는 감동의 눈물이 흘렀다. ‘정말 수많은 선지식들이 나와 보리를 위해 아낌없이 자비를 베풀어 깨달음을 주려고 애쓰셨구나!’ 하니까,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뭉클뭉클 뜨거운 것이 솟아오르더니, 마침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보리가 깜짝 놀라 꺼이꺼이 울고 있는 선재 동자에게 다가 갔다.
“오빠, 왜 자꾸 울어? 문수 보살님께서 빨리 부처님께로 가자고 하잖아. 저기 사자 등에 올라타라고 하시는데...”
선재 동자는 보리를 꽉 끌어안았다. 사자의 등은 아주 편안하고 부드러워 무섭지가 않았다. 
“그래 우리 부처님께로 얼른 가자.”
오랜 시간 동안 보살도를 얻기 위해 떠났던 자리 기원정사로 돌아오자, 부처님께서 반갑게 그들을 맞아주셨다. 특히 보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꼭 안아 주었다.
“아이고, 애들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네. 보리는 몸도 마음도 훌쩍 크고, 생각 주머니도 많이 넓어졌네. 그래, 선지식들은 잘해주더냐? 보리야, 어땠어?”
보리는 얼굴에 가득 웃음을 머금은 보살님들과 부처님이 앞에 계신데다가 에메랄드빛 푸른 광명이 주변을 환하게 비춰주는 것이 너무 황홀하고, 눈을 어디로 둘지 몰라 선재 동자를 쳐다보았다. 선재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부처님께서 물으시잖아, 얼른 대답해 드려야지.”
그때, 보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용수보살이 갑자기 ‘푸하하하’ 소리내어 웃었다.
“역시 보리는 귀엽고 순진한 아이로군. 선재가 데리고 다니면서 좀 힘들었겠는데….”

삽화=서연진 화백.
삽화=서연진 화백.

 

선재 동자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요. 보리는 착하고 똑똑해서 길을 다니는 동안 말썽을 피우지 않고 잘 따라왔습니다.”
부처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말했다.
“당연하지, 너희들 뒤에는 문수 보살을 비롯해서 많은 동자와 동녀들이 뒤 따라다니며 돌보아 주고 있었다. 덕분에 훌륭하고 보람찬 구도 여행을 하였다. 역시 선재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무명의 안개 속에서 보리심을 지킨 것이 기특하고 장하다. 그것 역시도 문수 보살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혜로 그대들을 이끌어준 공덕 또한 크다. 문수는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게 대하고 마음에 괴로움을 없애는 장애를 지혜롭게 없애주는 데 일등이지. 이제 선재는 보현보살을 마지막으로 53 선지식을 다 만나게 되면 나처럼 부처가 될 것이다. 그것을 성불이라고 한단다. 하지만 보리는 아직 어리고 모든 것을 다 알아차리기에는 어려움이 많으니, 그간의 일들을 기억 속에서 지우게 하라. 그러나 선재와 함께한 구도 여행의 대가는 충분히 치러서 그 믿음으로 아이가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이 내 품에서 자유롭고 편안해져, 보리는 자기도 모르게 꿋꿋하고 든든한 믿음으로 가족들과 주변을 잘 지키며 살아갈 것이다. 선재를 잘 따르고 기나긴 여행, 구도의 길을 흔들림 없이 마친 상으로 내가 보리의 이마에 수기를 내려줄 것이야.”
그때 법당 안에 은은한 빛이 번지며 흰 코끼리를 타고 보현 보살이 장엄하게 들어왔다. 코끼리의 발길이 닿는 데마다 연꽃이 피어나고 꽃잎에서 향기와 빛이 퍼져 모두의 마음을 청정하게 씻어냈다. 보리는 부처님을 만난 것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하얀 코끼리와 보현 보살, 거기에 연꽃이 가는 곳마다 마법처럼 생기는 것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오빠, 이게 무슨 일이야.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네. 역시 부처님은 대단하셔. 우리가 정말 상을 받은 것 같네. 오빠, 진짜 신기하지?”
그때 보현 보살이 흰 코끼리에서 내려 큰절을 올리면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며 말했다.
“거룩하신 부처님이시여.
티끌같이 많은 땅은 마음으로 생각하면 다 셀 수 있고 (찰진심념 가수지)
큰 바닷속 물은 다 마실 수 있으며 (대해중수 가음진)
허공을 가히 재고 바람을 묶을 수 있다 하더라도 (허공가량 풍가게)
부처님의 공덕은 다 말할 수 없나이다 (무능진설 불공덕)”

부처님이 손을 들어 보현 보살의 큰 절에 답한 뒤, 아이들에게 보현 보살을 소개하였다.
“보현 보살은 문수보살이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밝히면, 그는 행동으로 실천하고 바른길로 가도록 중생들을 인도 한단다. 그것을 보현 행원 십종공덕이라고 하지. 나머지는 보현이 설명하도록….”
보현 보살이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 말했다.
“ 그것은 정리하자면 부처님 법안에서 늘 감사하고 존경하며 나눔과 희생으로 자기가 베푼 착한 일들을 보리심으로 모든 중생에게 회향하기 원한다라는 뜻이야, 그러니까 다시 한번 설명하는데, 문수 보살의 지혜로 길을 보았다면 이제는 그 지혜를 세상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말하지. 그것을 사람들은 보현 행원이라 한단다. 그것은 깨달음을 완성하는 대들보인 셈이지. 잘 알아듣겠니?”
보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좀 더 열심히 공부해 볼게요.”
보현 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보현의 큰 서원과 열 가지 게송을 이야기하자 선재 동자는 인제야 모든 것이 마무리됨을 알고, 기뻐서 보리의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를 본 보살들이 크게 기뻐하며 축하를 해주었다. 한참을 뛰놀다, 선재 동자가 정신을 차리고 머리 깊이 조아리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그대의 지혜는 문수와 같고 그대의 행원은 보현과 같도다. 따라서 보살들과 평등한 위치에 서서 참된 보살도의 길에 들어섰단다. 그러므로 깨달음의 지혜로 자비심을 실천하여 중생들을 구제토록 하여라”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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