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사회는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기준,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0.75명), 자살률(10만 명당 28.3명), 노인빈곤율(40.4%)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인 통계들은 가계부채·사교육비·청년실업 증가와 초고령화 사회 진입과 맞물려 우리 사회를 깊은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처럼 심각한 문제들은 한 세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병폐이다. 예컨대,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미래의 노동력을 고갈시키고, 가속화된 고령화는 연금 및 복지 시스템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곧 젊은 세대에게 전가되어 과도한 세금 및 사회 보장 기여금으로 이어지며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또한, 끝없는 경쟁 사회에서 자녀의 성공을 위한 막대한 사교육비 지출과 주택 마련을 위한 가계부채를 짊어지는 현실은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는 ‘부의 대물림’을 고착화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나아가 불안정한 고용 시장과 높은 취업 경쟁률은 청년들이 구직을 포기하고 사회 활동을 중단하는 ‘쉬었음’ 인구 증가를 초래하여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이 모든 문제의 끝에는 경쟁과 경제적 압박에 지쳐 좌절감을 느끼며 정신 건강 문제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는 현실이 있다. 이러한 총체적인 현상은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한시 ‘애절양(哀絶陽)’에 담긴 비통한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갈밭마을 젊은 아낙 길게 길게 우는 소리(蘆田少婦哭聲長)/ 관문 앞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네(哭向縣門號穹蒼)/ 출정 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일 있다 해도(夫征不復尙可有)/ 사내가 제 양물 잘랐단 소리 들어본 적 없네(自古未聞男絶陽)/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舅喪已縞兒未澡)/ 이 집 삼대 이름 군적에 모두 실렸네(三代名簽在軍保)/ 억울한 하소연 하려 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薄言往愬虎守閽)/ 이정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다네(里正咆哮牛去早)/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가더니 피가 방에 흥건하네(磨刀入房血滿席)/ 스스로 부르짖길 “아이 낳은 죄로구나!”(自恨生兒遭窘厄)  -「애절양」 부분

다산이 황해도 곡산부사로 재직하던 1803년, 한 갈대밭 마을에서 들려오는 젊은 여인의 울음소리에 그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사연인즉슨, 이미 세상을 떠난 시아버지의 이름이 여전히 군적에 올라 있고, 갓 태어난 아이에게까지 군포가 부과되어 가난한 집안이 그 세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남편은 이 고통을 “아이 낳은 죄”라고 절규하며 스스로 생식기를 자르는 극단적인 행위로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다.
2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를 옥죄는 것은 다름 아닌 ‘현대판 군포’다. 당시 백성을 짓누르던 군포가 그러했듯, 과도한 경쟁, 끝없는 양육비, 불안정한 미래라는 굴레가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다. 「애절양」에 등장하는 남편의 비극적인 선택은 현재의 높은 자살률과도 연결된다. 과도한 경쟁과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싸우기보다 삶 자체를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아이를 낳는다는 행위가 축복이 아닌 막대한 경제적·사회적 짐이 되어버린 현실 또한 ‘애절양’의 아픔과 겹쳐 보인다.
다산의 시 속에서 울려 퍼지던 “아이 낳은 죄로구나!”라는 외침은 오늘날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젊은 세대의 침묵 어린 절규와 다르지 않다. 애절양의 시대는 끝났지만, 현대판 군포에 짓눌린 삶의 고통은 여전하다. 우리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는 지속될 수 없다는 다산의 준엄한 경고를 기억하고, 이 비극적인 현실을 바꿀 근본적인 변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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