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6년 차, 도시의 아파트에 살 땐 이웃과 별로 마주칠 일 없어 조용히 지냈는데, 시골에서의 삶은 많이 다르다. 일주일에 한두 번 스마트 방송을 통해 이장님의 공지 사항이 전달되는데, 새벽 5시에 모여 마을 안과 밖을 청소하자거나, 마을회관에서 국수를 삶는다고 나와서 먹으라거나, 누구네가 대사를 잘 치러서 떡을 해왔다고, 나와 먹으라는 내용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바쁘다는 핑계로 합류하지 않았다. 낯설었고 어색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장님과 개발위원장님이 찾아와서 노령마을이어서 일할 사람이 없다고, 부녀회장을 맡아달라고 청한다. 처음에는 사양했으나, 이어지는 청에 거절하는 것도 이기적인 것 같아 맡게 되었는데, 공동체 삶에서 깨닫는 게 많다.

반찬이라야 금방 만든 겉절이와 마을 특산물인 오이를 무친 것이 전부지만, 쫄깃쫄깃 삶아낸 국수를, 양파와 멸치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 말아서, 국수가 잘 삶아졌다거나 육수가 구수하다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하하 호호 함께 먹는 점심은 별미다. 계란과 당근 호박을 볶아 올린 고명은 국수를 더욱 별미로 만든다. 그런데 국수를 삶아내는 사람은 국수를 싫어한다고 누군가 챙겨온 그녀 몫의 찬밥 한 그릇 내민다. 누구는 옥수수를 쪄오고 누구는 감자, 누구는 마늘을 가져오기도 한다. 삼복더위에는 노인회장님이 직접 농사지은 인삼과 마늘을 가져와 토종닭을 삶아 먹기도 한다. 혼자 먹으면 맛 없을 것들이 함께 나누니 별미가 된다. 필자도 진한 육수에 국수 한 젓가락 흡입하고 보니 평화의 미소가 저절로 피어난다.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놓은 마을회관은 찜통더위를 피하는 마을 사람들의 피서처다. 40여 호가 사는 마을에는 대부분 독거노인이거나 노년층인데 요양원에 가야 할 사람도 아내와 함께 기우뚱기우뚱 마을 길을 걷고 들판을 걸으며 그럭저럭 살아간다.

부녀회장을 맡고 나서 부녀회장이 새마을운동회 소속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공주의 새마을운동은 마을공동체 운동으로 마을 가꾸기, 환경정화, 하천 살리기, 재활용 자원 모으기, 농약병 분리 수거하기, 방역 등의 활동을 한다. 마을의 문제를 주민 스스로 화합하고 협력하여 해결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독거노인 돌보기, 밑반찬이나 김장 나누기, 다문화가족 멘토링과 문화활동, 공동경작과 공동 돌봄, 이불 빨래방도 운영하는데,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과거 새마을운동이 “잘 살아보세”였다면 현대 새마을운동은 “행복하게 살아보세”이다.

각 마을의 새마을지도자와 부녀회장이 순번을 정해서 시행하는 면 단위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에 참석한 날은 섭씨 36-37도의 아주 뜨거웠다. 재활용품 수거장에 모인 지도자와 부녀회장은 목에 수건 하나씩 두르고 농민들이 가져오는 농약병이나 폐비닐, 플라스틱 등 재활용 쓰레기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는데 땀을 흘렸다. 한 번 참석했는데, 필자보다 앞서 새마을지도자로, 부녀회장으로 일해온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개인주의를 넘어서서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 간섭하고 간섭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서로 얼굴 마주칠 일이 없으니 혼자 잘 살면 그만인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사이 우울증이나 고독사라는 단어가 친숙해졌다. 이러한 세상에서 함께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고 하천을 정비하고, 폭우에 피해가 생긴 곳을 점검하고 방재단과 함께 복구하는 사람들….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내 집처럼 드나들며 돕고 나누며 웃는 마을회관은 작은 복지관이다. 함께 잘사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흘리는 지도자들의 땀방울에서, 스스로 돕고 나누고 치유하고 복구하는 마을공동체의 모습에서, 노령사회 선진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

-동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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