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극한 폭염이다. 너무 더워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내가 사는 도시 대구는 ‘혹한혹서(酷寒酷暑)’로 유명하다. 도시의 지형이 분지(盆地)여서 그렇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얼마나 더웠으면 사람들은 대구를 아프리카에 빗대어 ‘대프리카’라고 부른다. 실제로 대구의 여름 더위는 유명하다. 어떤 이들은 이런 대구의 명물은 대통령과 더위라고 농을 하기도 한다. 대구는 올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9일 연속 열대야가 지속되며, 그제 7일 오후 5시 30분경 경북 구미의 아파트 공사장에서 20대 베트남 노동자가 죽었다. 체온이 40.2도로 측정돼 온열질환 사망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타국에 돈 벌러 왔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당한 것이다. 방송에서는 쪽방 주민들이 에어컨 없이 더위에 헉헉거리는 모습을 비추면서 우리 사회 취약계층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특히 올해 여느 해보다 여름이 일찍 시작된 것 같다. 전국이 마치 끓는 가마솥처럼 뜨겁다. 지난 8일 서울 기온이 섭씨 37.8도를 기록하자 나라 전체가 난리이다. 1907년 기상관측 이래 7월 초 기준으로 118년 만의 극한 폭염이라고 한다.
국민 모두 ‘화탕지옥(火湯地獄)’에 빠져든 형국이다. 화탕지옥은 불교에서 나오는 여러 지옥 가운데 하나인데 물이 끓는 엄청나게 큰 무쇠솥에 떨어지는 지옥이다. 불교에서는 지옥의 종류와 참혹함이 다른 종교에 비해 훨씬 많고 다양하다. 개인적으로는 그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 화탕지옥은 도둑질하거나 빌려 간 물건을 갚지 않은 중생이 가는 지옥이라고 한다. 현대의 많은 포악하고 잔혹한 죄질에 비하면 도둑질이나 돈을 못 갚는 정도는 그리 악질적인 큰 죄라고 생각되지 않고, 일종의 생계형 죄처럼 보여 내 주머니를 털어주고 싶은 마음조차 들 정도인데 그렇게 뜨거운 형벌을 가한다.
극한 폭염 현상은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2023년에는 미국의 애리조나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섭씨 43도를 넘었고 그해 파키스탄의 여름 기온은 48도를 넘었다. 지구 곳곳이 장마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몇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와 호주 등지에서 거대한 산불이 났을 때, 우리는 남의 집 불구경하듯 보았다. 그런데 올 4월에 경북 북부지역 의성 안동 청송 영덕 등지에 난 산불은 지금까지 국내 최대의 산불피해를 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미국 텍사스에 홍수가 나서 170여 명이 죽거나 실종됐고, 중국의 허난성에서는 지표 온도가 74.1도를 기록해 옥수수가 도로 위에서 그대로 팝콘이 되고, 프랑스에서는 산불이 나서 큰 피해를 입는 현실이 속속 보도되고 있다. 이 지구적 재앙이 결코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일이 된 것이다.
이미 상식이 됐지만 이런 재앙의 배후에는 기후변화, 환경문제가 있다. 산업화의 결과 대기에 누적된 이산화탄소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발생해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지구 전체가 몸살을 앓는 것이다. 모든 이상기후의 주범이 이산화탄소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023년 7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일본항공은 일본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유료 옷 대여 서비스를 시행한 적이 있다. 도쿄에서 뉴욕을 오갈 때 짐 1Kg을 줄이면 탄소 배출이 0.75Kg 줄어든다고 한다. 비행기 탑승 전 기내식 섭취 여부를 묻는 항공사도 있는데, 승객이 기내식을 먹지 않으면 아예 싣지를 않아서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340억 톤으로 2019년보다 약 7%(26억 톤)이 줄었다고 한다. 공장이 멈추고 유통이 줄어드는 등 각국의 경제활동이 둔화된 때문이다. 챗GPT같은 인공지능도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탄소를 베출한다('뉴스로 키우는 지구환경지능' 판. 2025 참조).
결국 인간들의 물질 소비 욕망과 극도의 편리함, 전 세계를 미친 듯이 떼 지어 여행을 다닌 그 결과를 지금 우리는 화탕지옥으로 보답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정확한 인과응보인 셈이다. 좀 불편하고 좀 덜 먹고, 덜 보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정녕.
-시인ㆍ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