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다시 세계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마스크를 벗은 일상은 일시적 평온이었을 뿐, 팬데믹의 기운은 다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최근 4주간 전 세계에서 보고된 신규 확진자는 약 20만 6천 건에 이르며, 이 중 태국이 18만 건 이상을 차지해 압도적인 비중을 기록하고 있다. 브라질(8,600건), 영국(5,100건), 그리스(2,600건), 프랑스(1,300건) 등 유럽과 남미 주요 국가들에서도 재확산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아시아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이러한 안정세가 경각심을 무디게 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를 더는 위협으로 여기지 않고, 방역을 과거의 일로 치부하는 태도도 확산 중이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결코 종결된 사건이 아니다. 새로운 변이는 계속 출현 중이며, 팬데믹의 그림자는 여전히 인류의 삶을 압박하고 있다. 코로나19는 단순한 감염병이 아니라 사회적 고립, 경제적 불안정, 공동체 신뢰의 붕괴를 불러온 복합적인 재난이었다.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2023년 8월 말까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중 사망자는 총 35,605명에 달한다. 이 숫자는 단순 통계가 아니다. 그 안에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 치료조차 받지 못한 무력감, 함께 겪은 집단적 고통의 흔적이 응축되어 있다. 지금은 그 지난한 시간의 상처를 쉽게 잊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할 때다. 이승하의 시는 바로 그 잊힌 감각을 일깨우며, 집단 기억 속에 묻힌 고통을 선명하게 되살린다.

예수님 찬양 노래를 부르다 확진자가 된다/ 형무소에서 형을 살다가 확진자가 된다/ 격리병동에서 주사 맞다 급히 죽는다// 세상이 밝아오는 새벽까지 시험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노을이 깔리는 어스름 무렵에 사랑 고백을 들었었다/ 눈도 못 뜨는 핏덩이 들고 눈물이 나도록 웃기도 했었다// 너희들이 증식과 변이를 시도할 때 나는/ 양도차액과 주식시세를 떠올리며 기뻐했었다/ 너희들도 나도 살길을 찾으려 했던 것// 어느 제약회사에서 신통한 백신을 개발했다고 하여/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 수가 줄어들었다고 하여/ 내 식구의 확진 판정이 뒤집히지 않는다// 수족관 안의 금붕어처럼 같이 살았는데/ 같이 밥도 못 먹고 마스크 쓰고 대화한다/ 식구에 의해 감염되어 식구가 식구의 임종을 지킨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색깔로, 다른 증세로, 다른 도시로/ 인류의 대처보다 더욱 신속하게 씩씩하게
-이승하, ‘죽음을 연구하다 4 : 바이러스에 의한 죽음’ 전문.

이 시는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과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들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시에 등장하는 ‘교회’, ‘형무소’, ‘병원’ 등 인간 삶의 희망과 존엄을 상징하는 공간들이 팬데믹 앞에서는 무력해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재난이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모두에게 닥친 현실임을 시사한다.
팬데믹이 드러낸 또 다른 풍경도 간과할 수 없다. 자산 불안정과 투자 과열, 백신 불평등 등 사회 구조적 취약성이 노출되었고, 사람들은 점차 타인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공동체의 기반은 흔들리고, 신뢰는 크게 무너졌다.
백신이 개발되고 치명률이 낮아졌다고 팬데믹의 상처까지 치유된 것은 아니다. 시인은 “내 식구의 확진 판정이 뒤집히지 않는다”라는 시구로 과학의 진보와 현실 사이 간극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사랑하는 가족이 서로 감염시키고, 그 가족이 임종을 지켜야 했던 비극은 기술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인간 고통의 본질을 드러낸다.

코로나19는 과거에 마무리된 기록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다. 이에 방역 수칙 재정비는 물론 지역 감염병 대응 인력 확보를 위한 인건비 국고 지원, 공공병원 병상 비율 의무화 등 구체적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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