㊻ 모든 지혜의 성품을 지닌 현승 우바이
선재 동자와 보리는 실담 범자의 기본인 51자 중 나머지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뒤, 한없는 존경심을 가슴에 담고 중예 동자에게 하직 인사를 하였다. 선재 동자는 실담 범자를 배운 것이 마치 전쟁에서 싸우기 전 창과 방패, 그리고 칼을 얻은 것처럼 용기가 솟고 힘이 났다. 또 눈이 번쩍 뜨이는 것처럼 세상이 밝아져 보였다.
중예 동자가 말했다.
“마가다국의 바달나성에 가면 현승 우바이라는 장자가 있는데 세간의 정사와 길흉과 의방과 중술을 모두 통달한 사람으로, 참으로 광대한 자비를 갖추고 있단다. 그래서 현명하고 수승하다고 현승이라고 해. 그분한테 가서 선지식인의 보살도를 물어봐.”
선재 동자와 보리는 바달나성의 현승 장자를 친견해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고 두루두루 돈 뒤, 합장하며 그의 옆에 다가섰다.
현승 장자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나는 스스로 깨쳐 이름이 머무는 데가 없고 지혜의 성품을 내는 데 다함이 없도다.”
그러자 보리가 고개를 숙이며 절을 한 뒤, 다시 물었다.
“장자님, 제가 어리고 잘 몰라서 그러는데, 지혜의 성품에 다함이 없다는 게 무슨 말씀이 온 지요?”
현승 장자가 하하하! 웃더니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거기는 이상하게 생긴 아이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보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니 여섯 명 아이의 얼굴은 눈과 코, 귀와 입, 그리고 혀와 마음의 형상을 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그들이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아주 진지하게 토론하면서 티격태격 난리를 쳤다.
눈이 제일 먼저 논리적으로 따졌다.
“나는 얼굴 중에 맨 위에 있어서 늘 피곤해, 멀리 봐야 하고, 자주 깜빡여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고, 날씨가 건조하면 눈이 따가워, 또 보기 싫은 것도 자주 봐야 하니까 불편한 게 너무 많아, 그러니까 잘 안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바꿔줘. 눈을 감고 좀 쉬게.”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이 말했다.
“나야말로 자리를 바꿔야 해. 얼굴 맨 아래 있으니까,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고 이것저것 먹기 싫은 것도 다 쑤셔 넣어서 체하지를 않나, 입이 두껍고 못생겨서 썰어 놓으면 한 접시는 나온다고 놀리지를 않나. 욕도 얼마나 많이 하는데. 입 닥쳐, 주둥아리 닥쳐, 아가리 닥쳐…. 등등, 사실 내가 사흘만 없으면 사람들은 다 죽어. 먹지를 못하니까, 그러니까 나를 귀하게 대접 해줘서 눈 하고 자리를 바꿔줘. 나도 우아하게 무게 좀 잡고 있게.”
가만히 듣고 있던 귀가 조용히 이야기했다. 가만가만 말하는 자세가 아주 단정했지만, 또박또박 조리 있게 말했다.
“나는 얼굴 앞이 아니라 옆에 있어서 싫어. 모두 앞을 보고 있는데 왜 나만 옆에 붙어 있어야 해? 그러니까 사람들이 툭 하면 잡아당기고, 귀싸대기를 날리고, 여자들은 총으로 구멍을 뚫어서 무거운 귀걸이를 달지 않나, 어떤 애들은 구멍을 귓바퀴 위에서부터 차례로 뚫어 귀걸이를 몇 개씩 심기도 하고…. 하여튼 사람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아. 그럴 바에는 코하고 자리를 바꿔줘.”
코가 말을 받았다.
“야, 너 말 잘했다. 나는 너무 얼굴 가운데 있어서 싫어, 한가운데 있으니 맡기 싫은 냄새도 피할 수 없어. 특히 여자들 향수 냄새는 정말 싫어. 코가 마비될 지경인데, 거기다 음식 냄새도 여러 종류가 있다 보니 잡탕으로 섞여서 괴식에다 시궁창 냄새가 날 때도 있어. 자연 속에서 나는 싱그러운 냄새만 있으면 좋은데. 또 한가운데 있다 보니 들창코나 납작코들은 다 칼을 대서 수술하는 바람에, 콧대가 세지고 잘못하면 두 번 세 번 해서 나를 못살게 군단다. 그러니까 얼굴 옆으로 가면 수술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그 말에 보리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하하하 웃었다.
“애들이 진짜 웃겨. 코가 옆으로 가면 어떻게 되지? 코는 하나뿐인데 코가 양쪽으로 달려 있다는 게, 생각만 해도 웃기네.”
선재 동자가 보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보리, 그런 말 하면 안 돼, 쟤들은 자신들의 뜻을 심각하게 말하고 있잖아. 끝까지 잘 들어보고 방법을 알아보자. 현승 장자님께서 해답을 주실 거야.”
보리가 무안해져서 얼른 고개를 숙였다.
이에 혀가 말했다.
“나는 입속에 처박혀 있어서 불편한 게 한두 개가 아니야. 더군다나 입이 다물고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리고 이를 닦지 않으면 똥 구린내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야. 그렇다고 입 보고 하! 벌리고 있으라 할 수도 없고…. 또 사람들이 툭하면 나를 깨물어서 피가 나지. 그러니까 소원이 있다면 나를 좀 소중하게 다뤄 줬으면 좋겠고 입하고도 자리를 바꿔 줬으면 좋겠어. 입도 내 사정을 좀 알아야 해.”
그러자 입이 화를 내며 말했다.
“야, 내가 너를 얼마나 아끼고 귀하게 생각하는지 모르는구나. 나는 너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처지를 바꿔 보자고? 야, 네가 모르는 게 있는데 너는 밖으로 나오면 말라서 죽어, 그러니까 내가 아껴줄 때 잠자코 있어. 눈하고 자리 바꾸면 너에 대한 대접도 달라질 거야.”
입이 팔짱을 낀 채, 으스대며 말하자 혀는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하늘로 향해 척 올려 주었다.눈, 입, 귀, 코, 혀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듣고 있던 마음이 손을 비비면서 말했다.
“너희들 말도 다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좀 틀린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사람들 속에 있는 모든 걱정이나 근심, 슬픔과 좌절까지도 다 헤아려야 하니까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속이 썩을 지경이야. 차라리 즐거워서 웃거나 행복하다면 내가 신경 쓸 게 없을 텐데…. 그래서 가끔은 나도 몸 밖으로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싶다야.”
아이들이 서로의 처지를 밝히며 싸우듯이 이야기하는 곳으로 현승 우바이가 다가갔다.
아이들이 현승 장자를 알아보고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절을 하더니 제일 가운데 자리를 내어주었다.
“자! 너희들이 하는 이야기는 잘 들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들에게 삿된 바를 없애고 올바른 바를 이루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너희들이 논리적으로 따지니까 나도 현명하고 수승한 방법으로 너희들을 구제해 주겠다.”
아이들이 고개를 숙이며 존경을 표했다.
현승 장자가 말했다.
“첫 번째, 눈은 얼굴 중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또 멀리 보아야 하므로 맨 위에 있어야 한다. 옛 어른들의 말씀에 ‘우리 몸 천 냥 중에 눈이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눈은 마음 다음으로 우리를 설레게 하지. 그래서 눈은 제일 멀리 보고, 눈을 굴려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야. 그래서 자리를 바꿀 수가 없단다.”
“그럼, 저하고 자리를 바꿀 수가 없겠군요.”
입이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너도 마찬가지로 중요하지. 입이 맨 위에 있어서 물을 마시거나 음식물을 먹을 때 흘리게 되면 눈, 코가 따가워해서 피해를 주지. 그래서 맨 아래 있는 거야.”
현승 장자가 이번에는 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귀가 왜 옆에 붙어 있냐 하면 사방의 소리를 집중해서 잘 들으라고 그런 거란다. 얼굴 한가운데 있으면 시끄러워서 소리를 잘 들을 수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좀 떨어진 양옆에 붙어 있는 거지.”
이에 귀가 공손하게 합장했다.
“코와 혀도 마찬가지야. 코는 얼굴의 딱 중심에 있어서 균형을 맞춰주고 모든 냄새를 다 맡을 수 있게 한 가운데 있는 거야. 혀도 가장 예민한 부분이라 다치면 안 되니까 입속에 잘 모셔 두고 있는 거지. 마지막으로 마음이 하는 일은 우리 생활에서 심장과 함께 온갖 지혜를 다해서 온화한 성품으로 바꿔 주기 때문에 마음이 심장 옆에 있는 거란다. 또 명심할 것은 저 아이들이 몸과 마음을 지켜주어서 ‘안이비설신의’ 즉 육근이 청정해지는 것이다. ”
말을 마친 현승 장자가 선재 동자와 보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까 지혜의 성품에 다함이 없는 것이 어떤 것이냐고 물었지? 저 아이들이 바로 눈, 귀, 코, 혀, 입, 마음, 즉 우리의 몸이 온갖 지혜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단다. 자! 이제는 옥전성에 있는 견고해탈 장자를 찾아가서 보살도를 물으라.”
선재 동자와 보리는 뜻깊은 그의 이야기에 무릎을 꿇었다.
-한국불교신문 2022년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