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서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는 대도시인 대구로 진학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호롱불 밑에서 엎드려 공부하던 촌 생활에서 한밤중도 마치 대낮만큼 밝은 대도시의 휘황찬란한 형광등은 처음에는 도저히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신기했다. 내 눈에는 도시의 모든 게 낯설었고 어리버리하기만 했던 내 행동은 완벽한 촌뜨기 그 자체였다. 내가 다닌 모교는 한 일 자 큰 교사(校舍) 두 동이 나란히 서 있는 오랜 전통이 있는 학교였다.
말 그대로 시나 소설에 나올법한 삐걱거리는 목 계단과 천장 구석에 거미줄이 그대로 있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아연 놀라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건물은 지은 지 수십 년이 넘은 중학교 건물이었고 내가 수업을 받은 고등학교 건물은 지은 지가 오래되지 않은 콘크리트 신축건물이었다.
나는 수업 중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자주 중학교 건물 복도를 걸어 다녔다. 삐걱거리는 목 계단과 낡은 유리창 틀, 그 먼지 낀 창밖으로 운동장을 빙 둘러싸고 늘어선 히말라야시다 고목의 풍경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급우들은 쉬는 시간에도 촌음을 아껴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수학 문제를 풀었는데 나는 중학교 교사 복도를 어슬렁거리기 일쑤였다. 중학생들은 나이 든 고등학생이 자기네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선생님은 나를 보고 고등학생이 왜 중학교 복도를 걸어 다니느냐고 물은 적도 있다.
낡은 중학교 복도 벽이나 천장에 법구경 구절들이 붙어 있었다. 물론 고등학교 교실 복도에도 법구경 구절이 있었다. 불교종립학교였던 까닭에 학생들에게 법구경 중 훈육이 될 만한 짧은 구절을 골라서 붙여놓았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그 법구경 구절을 읽으려고 중⸳고등학교 복도를 걸어 다니곤 했다. 법구경은 총 423편의 시가 실린 불교 경전으로 부처님께서 어떤 사건이나 에피소드 끝에 간결하고 함축적인 게송을 읊어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가르침의 정수(精髓)라고 한다.

그 가운데 지금도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나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따른다.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듯이”라는 구절이다. 이 구절이 오래 기억되는 까닭은 아마 ‘수레바퀴’와 ‘소’라는 단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는 농촌에서 소가 ‘구루마’라고 불린 수레를 끌고 가을철 볏단을 실어나르기도 하고 다른 물건들을 실어 운송하기도 했다. 가을 추수 때 소가 볏단을 싣고 논의 그루터기를 지나가면 소 발자국과 구루마 바퀴자국이 선명하게 논바닥에 남는 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이 시적인 비유가 농부의 아들인 내 마음과 영혼에 더 실감있게 다가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법구경이야기 1⸳2⸳3》(옛길)을 찾아서 확인해 보니 마하빨라 장로라는 불심 깊은 이가 눈병이 났으나 안거 동안 눕지 않고 부처님 진리를 지키려는 굳은 의지 때문에 결국 눈을 잃지만, 그는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한다. 마하빨라 장로를 두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라한의 공덕이 있는 사람이 왜 눈이 멀었느냐고 묻자, 부처님은 마하빨라가 전생에 지은 악업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그가 전생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보여준다. 이 법구경 구절은 자신이 지은 업보가 소의 수레바퀴 자국처럼 반드시 드러난다는 가르침을 인간들에게 준다.

지난 6.3 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재들이 정부 각 부처에 임용되고 있다. 정부의 공직자로 천거되면 인사 검증이 뒤따른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결격사유를 가진 인물들이 검증의 칼날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모습이 요지경이다. 마치 법구경의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듯이”라는 경구처럼. 이런 현상은 진영의 좌⸳우를 막론하고 과거의 정부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문제가 된 인물은 자신이 저지른 지난날의 잘못에 대해 엄정한 과보를 받고있는 것이다. 우리는 훗날 제석천왕 앞에 서면 누구나 지난날의 과보를 따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ㆍ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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