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한국불교 역사에서 호국불교는 시대를 초월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을 만큼 큰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미래 한국불교의 본질이자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5월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불교계의 문화행사가 다채롭게 열렸다. 호국불교를 형상화한 ‘전통등’을 전시하기도 했는데, 연등회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 맞서 백성을 구한 승병들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독립기념관은 ‘한국독립운동과 불교’ 특별전을 개최하여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불교인들의 발자취를 조명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매년 조선시대 불교계의 의승병과 일제강점기 불교인의 독립운동을 기념하고 추념하지만, 그 계승을 위한 정책이나 대응이 체계적이거나 지속적이지 못한다. 영규대사 및 800의승 명예회복에 관한 문제가 대표적이다. 영규대사와 800의승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청도 일원에서 승병을 일으켜,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쳐 왜군과 싸웠다. 영규대사는 의병장 조헌과 함께 임진왜란이 발발한 첫해에 제1차 금산성(눈벌)전투, 청주성 전투, 제2차 금산성(연곤평) 전투에 참전했고, 연곤평 전투에서 전사했다. 영규대사와 조헌의 의승·의병부대는 그러나 금산 2차 전투에서 전멸하고, 4일 후 그 시신들은 칠백의총에 매장되었다. 그러나 영규대사는 청주성을 탈환해 호서와 호남을 연결하는 중원의 요해지를 회복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병들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 낮고 전공 또한 축소되어 제대로 된 평가와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부 유생(儒生)들이 영규대사와 의승군을 기리고자 무덤 인근에 ‘승장사’를 건립해 조선 후기까지 매년 제향을 올렸지만, 일제강점기 항일 유적으로 지목되어 훼손되는 수난을 당하기까지 했다. 더욱이 문화재청은 2023년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이들의 공적을 기리고자 10년 동안 수억 원의 세금을 들여 ‘칠백의총 종합정비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최근 개관한 ‘칠백의총기념관’은 의병장 조헌을 선양하는 기념관일 뿐 영규대사나 의승군에 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지역 유림과 함께 지내는 향사(享祀)에서도 적지 않은 갈등과 대립을 겪고 있으며, 심지어는 소외되기도 한다.
최근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충남 금산의 칠백의총(七百義塜)에 300명의 의승(義僧)이 함께 묻혀있다는 것이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 지역 유림들이 유지해왔던 “칠백의총은 조헌 선생과 700명의 의병만을 위한 추모 공간”이라는 주장을 재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예컨대 옥천 전씨 송정공파인 인봉(仁峰) 전승업(全承業, 1558~1596) 선생이 직접 남긴 인봉전승업선생유고(仁峰全承業先生遺稿)에 의하면 선생이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700명의 의병과 300명의 승군(僧軍)의 시신을 수습하여 “한 기(基)의 큰 무덤(一大塚)에 합장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승업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 전투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한편 해남 대흥사는 4월 19일 ‘서산대사 탄신 505주년 대흥사 표충사(表忠祠) 춘계제향’을, 밀양 표충사는 3월 29일 제563회 사명대사 춘계향사를 경내 표충사당에서 봉행하였다. 이 행사는 기록에 근거하여 불교와 유교식 제향으로 거행되어 종교를 초월한 추념제로 자리매김된지 오래이다. 대흥사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의승군의 날’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정하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한국불교는 어떤 분야보다도 한국의 정체성을 알릴 수 있는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문화유산을 온전히 보존하고 계승할 의지가 없다면 잊혀지기 마련이고 주인은 바뀌고 만다. 불교인들은 각성해야 한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