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충분한 돈과 명예, 권력 등을 갖기만 한다면 만족을 얻을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시간과 열정을 쏟아 그것들을 이루려고 한다. 하지만 진정한 만족을 얻는 일은 불가능 하다. 욕망이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 만족하면 그 이상의 무엇을 원하고 얻으려고 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소유욕에 바탕을 둔 일들은 설사 그것을 이룬다 해도 완전한 만족으로 끝나지 못한다.
일시적인 소유욕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욕망이란 상대적인 잣대와 주변 상황에 따라 기쁨과 슬픔의 감정기복이 있을 뿐이다. 삶에서 보다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모두가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소유물이 영원할 수 없는 것은 무상과 죽음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근본 고(苦)로 보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사람들은 마음에 평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근본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루하루를 갈등과 번뇌에서 벗어나서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과 모든 사람들의 근본적인 염원을 성취시키는 것이 종교의 목적이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다르게 인간의 실상을 관찰하며 독특하고 뛰어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2600여 년 동안 우리들에게 진정한 평화와 행복, 자유가 무엇인가를 보여 주었다.
부처님 가르침의 본질은 삶의 실상을 바로 통찰하고 그 통찰을 바탕으로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아 갈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고통과 속박이 분노와 욕망, 그리고 나와 세상을 밝게 보지 못하는 무지(無智)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나 중심으로 생각하는 아집과 집착을 버리면 우리는 밝아질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나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를 중심에 놓고 모든 것을 생각하고, 명예와 재력 등 좋은 것을 가지려 하기 때문에 고통이 일고 번뇌가 그칠 줄 모른다. 생로병사의 고통과 윤회의 수레바퀴는 그로 말미암아 발생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밝은 지혜로 나를 눈멀게 하는 무지를 없애고 깊은 선정으로 욕망을 잠재우며, 올바른 생활로 자신을 다스릴 것을 가르친다.
지혜의 눈으로 나와 세상을 볼 때 모든 것은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통찰하게 된다. 그것이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연기법(緣起法)이다.
하늘에 있는 별, 스치는 봄바람, 흐르는 물소리, 노래하는 새들의 음성,내 이웃과 모든 사람들의 웃음소리 모두가 나와 관련되지 않는 것은 없다. 이러한 모든 것이 없으면 나의 존재 자체도 없을 것이다. 나는 곧 그들이고 그들은 곧 나이다. 그렇게 나를 텅 비우는 무아(無我)의 통찰과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의 삶은 행복과 평화, 그리고 깨달음의 세계로 걸어가는 소중한 출발이다. 그것은 고통의 삶의 실상을 직시하고 지혜의 눈으로 진리를 바로 보며, 그러한 진리에 대한 믿음과 자신을 다스리는 수행을 통해 내 마음의 텃밭에 소중한 불성의 꽃을 피우는 길이기도 하다.
2600여년 전 인도에서 고타마 싯달타가 바로 이러한 마음의 자유를 체험했다. 고타마 싯달타는 출가 이전에 늙음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고통스러운 삶을 직시했다. 그리고 고통으로 가득 차있는 삶의 모습을 보고, 그것을 해결하여 진정한 평온과 기쁨을 얻기 위해 출가했다.그리고 실제를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깜깜한 무지를 치열한 수행으로 통해 타파하고 깨달음을 얻은 후 붓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불리게 된다. 부처님은 그 후 사람들에게 당신이 직접 체험한 마음의 자유를 전해 주기 위해 45년 동안 길에서 길로 걸어 다니면서 법을 전하였다.
2600년이 지난 현재 우리 사회는 물질의 풍요는 누리며 살지만 정신적 고통은 그 어느 때 보다 심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사회가 고통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6부대중이 함께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시인 ㆍ울산 정관암 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