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이 땅 모든 생명 위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충만하기를 축원한다. 찬란한 연등이 거리를 수놓고 전국의 각 사찰마다 봉축의 기운이 가득한 오늘, 우리는 다시금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큰 뜻을 되새기게 된다.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몸을 나투신 이유는 오직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함이다. 한 줄기 광명이 어둠을 뚫듯, 진리의 가르침은 무명에 가리운 중생의 삶을 비추었고, 고통을 끊는 길을 일깨워 주셨다.
“나는 괴로움을 보고 출가했고, 괴로움의 소멸을 위해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부처님의 고백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성찰을 던져준다.
이제 우리는 다시 부처님의 길 위에 서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 전쟁과 분쟁, 무차별한 폭력과 혐오, 인간성과 공동체의 해체 등 이 시대의 고통은 어느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겪는 공동의 문제다. 바로 지금, 불자는 물론 모든 이가 자비의 삶, 지혜의 실천을 통해 이 세계를 밝히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할 때다.

우리 종단은 한국불교의 근본 종맥으로서 오랜 역사 속에서 민족과 더불어 숨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종조인 태고 보우 국사의 선풍을 오늘에 되살려 승가와 재가가 함께 살아있는 수행공동체를 구현해 왔다. 세속의 변화 속에서도 본래 가르침을 잃지 않고, 법맥을 지키며 시대에 맞는 전법과 포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오늘의 태고종은 한국불교의 뿌리를 지키는 종단으로서, 더욱 분명한 정체성과 현대적 소통력을 바탕으로 미래불교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청정한 승풍회복, 불자교육 강화,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는 자비행 등은 태고종이 시대 속에서 실현해 가고자 하는 불교의 가치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우리는 연등 하나 하나에 서원을 담는다. 그 불빛이 마음의 어둠을 걷어내고, 세상에 따뜻한 자비를 전하기를 발원한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알고, 내 고통 뿐 아니라 이웃의 아픔에도 응답하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다.
부처님오신날은 단지 과거의 성인을 기리는 날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가 다시 부처의 마음을 새기는 날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연등이 되고, 자비가 되며, 수행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봉축의 의미일 것이다.
태고종의 육부대중 모두가 한 마음으로 서원을 세우며, 불법의 정통을 계승하고 실천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발원한다. 이 시대의 중생이 고통을 벗고, 평화와 지혜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행동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첫째, 생명존중의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해야 한다. 모든 생명은 불성을 지닌 존귀한 존재다. 인류는 탙욕으로 인한 생태파괴를 멈추고 지속 가능한 삶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작은 생명 하나도 귀히 여기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길을 걸어야 한다.

둘째, 자비와 평화의 문화를 사회 곳곳에 확산시켜야 한다. 다름을 포용하고 혐오를 멈추며, 약자를 보호하는 실천은 자비의 구체적 표현이다. 가정과 공동체, 사회와 국가 안에서 분열이 아닌 화합, 경쟁이 아닌 상생의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셋째, 내면의 수행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 명상과 참회, 계율의 실천은 자기 중심적 삶에서 벗어나 이웃을 향하는 출발점이다. 수행 없는 자비는 공허하고, 실천 없는 깨달음은 허상이다. 참된 불자는 선정과 지혜, 자비와 방편을 함께 실천해야 한다.

부처님 오신 뜻을 세상에 펼치기 위해 우리 불자들의 정진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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