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부처님오신날’이 양력 5월 5일이다. 부처님은 우리 인류가 맞이한 가장 지혜로운 현자(賢者) 중의 한 분이다. 이분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인해서 인간들은 무지 속에서 광명의 빛을 보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자비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서 성숙하고 높은 인격적 존재로서 인간의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처님오신날을 즈음해서 한창 물오른 만춘(晩春) 신록의 아름다움은 말로써 형언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날을 전후해서 산사나 도심의 사찰에는 형형색색의 연등이 걸려 봄바람에 흔들리면서 뿜어내는 은은한 등의 불빛과 봄꽃 향기는 황홀경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봄날의 이런 아름답고 지극한 풍경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부처님오신날은 국내에서는 1975년에 처음 법정공휴일이 됐고 그 이전 ‘석가탄신일’로 불리던 것이 2018년부터 ‘부처님오신날‘로 명칭이 변경됐다. 1975년에 내가 입학한 고등학교가 불교종립학교여서 기초 불교 교리를 배우고 당시에도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해서 연등 행사를 했다. 모교가 있던 대구 시내 수도산에서 출발해 동화사 말사인 보현사가 있는 반월당을 돌아서 학교 교정으로 돌아오는 그 행사가 당시 학생의 신분으로서는 토요일 오후인데 쉬지도 못하고 동원돼서 사실 좀 불만스럽기도 했다. 그 후 또 무슨 인연인지 딸애가 사찰부설 불교유치원에 다니게 돼 3년을 연등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대구 두류산공원에서 반고개를 거쳐 반월당에 이르는 꽤 먼 코스로, 악기를 연주하는 어린 유치원생들에게는 부담이 되는 거리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연등 행렬을 따라다니면서 마냥 즐겁기만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것은 아마 내가 부모의 마음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부처님오신날 도심을 밝히는 연등 행사는 신라의 팔관회와 함께 불교 행사로 시작돼 천년 세월을 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서 우리나라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초파일 연등 행사에서 연등의 형태가 연꽃 모양이 많아서 사람들이 연등이 연꽃 등인 것으로 오인하기 쉬운데, 연등(燃燈)은 연꽃 등(蓮燈)이 아니라 등에 불을 밝힌다는 의미로 인간의 탐욕과 집착 때문에 어두워진 마음에 지혜의 불을 밝혀 광명의 삶을 살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옛날에는 이 연등을 만들기 위해 부처님오신날 훨씬 이전부터 사찰에서는 스님과 보살 등 불자들이 삼삼오오 울력으로 등을 만든다. 등 만드는 손끝에 온갖 인생 고락의 축원과 비원을 얹어서 정성을 다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불자들은 부처님오신날과 땀 흘리는 노동과 협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연등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미리 배우는 셈이다.
부처님오신날 대웅전 실내나 절 마당에 걸린 연등 속의 양초가 행여 바람에 꺼질세라 연세가 많은 노 보살이 밤새 잠자지 않고 깨어서 연등을 지키고 있다가 혹여 봄바람에 불이 꺼지면 조용히 다가가서 연등에 다시 불을 붙여 그 불빛이 밤새 이어지도록 지켜준다. 졸음에 무거운 눈꺼풀에 안간힘을 써가면서 잠들지 않고 남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그 마음은 과연 어떤 마음일까?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일화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가난한 여인 난타가 구걸해서 얻은 돈으로 기름을 사서 밝힌 등 공양이 간밤의 바람에 부자나 권세가의 등불은 다 꺼졌는데도 난타의 등은 꺼지지 않았다는 현우경(賢愚經)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난타의 이야기는 청빈하게 사는 게 바르게 사는 길이라는 부처님의 진리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탐심과 욕망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이 시대, 무소유와 함께 빈자일등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보는 부처님오신날이다.
-시인ㆍ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