㊷ 룸비니동산의 묘덕원만신
㊸ 부처님의 셋째 부인 석가 구바녀

 

선재 동자와 보리가 가비라성 동쪽 룸비니 동산에서 대원정진력구호 주야신이 일러준 대로 묘덕원만신을 친견하였다. 그는 온갖 보배 나무로 장엄한 누각 가운데 아름다운 연꽃으로 만든 사자좌에 앉아 있었는데 선재 동자와 보리는 그의 곁을 세 번 돌고 엎드려 절한 뒤 합장하고 물었다.
“거룩하신 이여, 보살들이 어떻게 보살행을 닦으며 여래의 가문에 태어나서 세상의 큰 광명이 되었는지 알려주세요.”
묘덕원만신이 얼굴에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말했다.
“선재 동자야, 마야부인이 부처님의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나도 전생에 첫 부처님의 어머니 희광의 유모로서, 보살들을 정성껏 받들고 공경하였더니 이 룸비니 숲 주인이 되었다. 따라서 나를 묘덕원만 룸비니 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그때 보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전생에는 이름이 뭐였어요?”
“응, 나는 깨끗한 빛이라는 이름의 정광이라고 했는데, 천왕들이 보살을 목욕시켜 나에게 주면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정성껏 받들다 보니 ‘보안 삼매’라는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이 생겼고 그리하여 많은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었지.”
보리가 선재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오빠,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만 있는 게 아니야?”
선재 동자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으응…. 내가 알고 있는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아미타 부처님, 약사여래부처님 등 등 인데….”
묘덕원만신이 보리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이야기했다.
“맞아, 부처님은 한 분만 계시는 게 아니야. 준제 보살님이 키워내신 부처님만도 칠억 명이 넘는단다.”
선재 동자가 기억난다는 듯 손뼉을 쳤다.
“천수경에 준제 진언! 나무 칠구지 불모 대준제 보살. 칠억 부처님의 어머니.”
묘덕원만신이 따뜻한 미소와 사랑스러운 눈길로 선재 동자와 보리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또 그 전생에도 부처님이셨지. 또 옛날 옛적 일억 세계의 수 많은 겁을 지나면서 80억 나유타 부처님이 나시었느니라.”
보리가 깜짝 놀라 물었다.
“예에? 80억 나유타요?”

삽화=서연진 화백.
삽화=서연진 화백.

 

묘덕원만신이 말했다.
“응, 1 나유타가 10의 60승이니까 80억은 어마어마한 숫자로 불가사의한 부처님들이지.”
선재 동자가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며 조용히 말했다.
“정말 존경하고 또 존경할 만한 숫자군요. 그래서 마야부인이 비로자나 부처님도 낳으셨다는 이야기가 있군요.”
“내가 유모였지만 무상보리심으로 보살들을 돌 본 결과, 룸비니 동산의 주인이 되어서 모든 부처님들을 봉양하고 섬기면서 말씀하시는 법을 듣고 말씀하신 대로 수행하였다. 하지만 여러 부처님 앞에서 중생을 제도할 시기를 알고 태어나서, 이 세상의 신통 변화를 나타내고 공덕을 베푸는 것은 알지 못한다. 이 가비라 성안에 구바녀 아씨를 찾아가거라.”

㊸ 부처님의 셋째 부인 석가 구바녀

선재 동자가 보리를 데리고 지혜 광명이 넓은 광명 강당에 들어갔다. 강당 안에는 8만 4천의 시녀들이 구바녀 아씨를 모시고 있었으며, 그 시녀들도 모두 왕가에서 태어나 지혜와 슬기로움을 겸비해 부드럽고 덕성스러운 얼굴이었다.
선재와 보리는 보배 연꽃 사자좌에 앉아 있는 구바녀 아씨에게 나아가 엎드려 절하고 말했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무상보리심을 내었으나, 보살이 어떻게 해야 살아가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걱정에 물들지 않고 부처님 법성을 깨달을 수 있는지요?”
구바녀 아씨가 답했다.
“좋다. 그대가 이제 보살의 이와 같은 행을 묻는구나. 보현의 모든 행원을 닦는 이라야 능히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내가 자세히 일러줄 테니 잘 듣고 생각하라. 나는 특히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그대에게 전하노라.”
선재 동자와 보리는 그녀의 친절함에 고개 숙이며 말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일러주시는 말씀을 마음속에 잘 새겨듣겠습니다.”
구바녀 아씨가 8만 4천의 시녀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 나오며 또박또박 말했다.
“만일 보살들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인드라 그물 같은 넓은 지혜 광명인 보살행이 능히 원만해질 수 있느니라. 또한 각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선지식들을 의지하여 수행 정진하여야만 보살행이 원만해진단다.”
선재 동자가 물었다.
“열 가지 법이란 게 무엇인가요?”
구바녀 아씨가 말했다.
“선지식들에 잘 지도받고 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법은 ➀ 자기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➁ 세상의 쾌락을 탐내지 않으며 ➂ 모든 법이 성품이 평등한 줄 알며 ➃ 지혜와 서원을 항상 지니고 ➄ 모든 법계의 진실한 모양을 관찰하며 ➅ 마음속의 집착을 항상 버리며 ➆ 법이 공함을 알아서 마음을 비우고 ➇ 보살들의 큰 원을 성취하고 ➈ 모든 세계의 바다에 항상 몸을 나타내고 ➉ 보살들의 걸림 없는 지혜를 깨끗이 닦는 것이니라.”
이 말을 듣고 보리가 갑자기 풀이 죽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오빠 나는 너무 어려워서 하기 힘들 것 같아. 구바녀 아씨가 하시는 말도 이해 하기 힘들어.”
선재 동자가 보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당연하지 아직 어리니까…. 하지만 내가 천천히 가르쳐 줄게. 선지식이 아무나 되는 게 아니야. 열심히 기도하고, 욕심을 버리고, 오랜 시간 부처님 말씀을 잘 따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선지식이 될 수 있단다.”
구바녀 아씨가 선재 동자와 보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더니 활짝 웃었다.
“역시 무상보리심을 낸 선남자이구만. 동생한테도 아주 따뜻하게 위로해 주면서 가르쳐 주고…. 너희들도 나중에는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선지식이 될 것이야. 나도 해탈을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었지.”
선재 동자가 물었다.
“그 해탈을 얻은 지는 얼마나 오래되었습니까?”
구바녀 아씨가 답했다.
“지난 옛적에 티끌 수 겁 전에, 부처님의 전생인 위덕 대왕 시절에 세 번째 부인이 되었다. 위덕 대왕은 이미 중생들의 괴로움을 딱하게 여겨 보리심을 내었으므로 나도 응당 거두어 주시리라 믿었다. 때문에 나는 부귀영화도 바라지 않고 다섯 가지 욕심과 쾌락도 탐내지 않고 바른 법을 행하며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해탈하게 된 거지. 그러니까 너희들도 열 가지 법을 잘 지키고 행하다 보면 분명 훌륭한 선지식인이 될 거야. 내가 기도하면서 지켜봐 줄게.”
선재 동자는 구바녀 아씨의 자비롭고 원만한 성품에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러 나왔다. 구바녀 아씨는 보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보리를 많이 칭찬해 주었다.
“그래도 어린아이가 오빠를 잘 따라다니네. 보고 들은 것도 많고 선지식님을 많이 만나면서 배운 것도 많았겠네. 엄청 기특하다. 대단하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정말 칭찬해 주고 싶어. 그리고 당부하는데, 이 세계 안에 부처님의 어머님이신 마야부인이 있으니, 선재는 그에게 가서 보살들이 어떻게 보살행을 닦으며 모든 중생을 거두어 주는지 물어보도록 해라.”
선재 동자와 보리는 편안하고도 한결같은 존경심으로 절을 올리고 그의 곁을 떠났다.

-한국불교신문 2022년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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