㊵ 밤마다 꽃을 피우게 하는 개부수화 주야신(상)
트롬은 마가다국 보리도량의 바즈라 동산에서 제일 무서운 고양이다. 말이 고양이지 덩치는 새끼 호랑이만 해서 사람들은 ‘짬 타이거’로 불렀다. 바즈라 동산에는 고라니, 사슴, 원숭이, 고양이, 토끼, 닭, 가끔 두더지와 삵도 살고 있다. 물론, 하늘에 사는 새들도 있는데 봄에는 까치, 굴뚝새, 동박새, 청딱따구리, 꿩, 직박구리가 있고 여름에는 호반새, 팔색조, 할미새, 꾀꼬리, 긴꼬리 딱새, 새호리기, 소쩍새가 있다 특히 소쩍새는 밤마다 밤마다 “소쩍소쩍” 하고 우는 데 소쩍새 우는 소리는 아주 슬프고도 처량하다. 두견새로도 불리고, 남도 지방에서는 ‘담사리새’ 라고도 하는데 여름철에서 가을이 다가오면 우는 소리가 힘이 없고 횟수도 점점 줄어들게 된다. 가을 새는 기러기와 물떼새, 울새, 도요새가 있다. 겨울에는 박새, 참새, 콩새, 노랑턱멧새 등이 있다.
그중 트롬이 좋아하는 새는 참새와 굴뚝새, 콩새들이다. 굴뚝새는 굴뚝에 숨어있다가 잡아먹고, 참새와 콩새는 기와지붕 속에 숨어서 새끼를 낳으러 들어오면 잡아먹는다.
그래서 바즈라 동산에서는 트롬을 ‘정복자’ 혹은 ‘파괴자’로 불렀다. 그러나 요즘은 노랑턱멧새들이 날아와서, 배롱나무 숲에 잠시 쉬어가려고 하면 나무숲에 숨어있다가 잡아먹는데 노랑턱 멧새가 ‘치치’ ‘슈이슈이’ 하고 울면 잡았다가 놓아 주기도 한다.
선재 동자와 보리가 개부수화 주야신이 갖가지의 보배 향나무 누각 안에서, 보배로 이루어진 사자좌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합장하여 삼배를 올린 뒤 보살도를 물었다.
개부수화 주야신이 말했다.
“선남자여! 나는 해가 지면 연꽃이 오므라지고, 모든 사람이 구경하기를 마쳤을 때, 산이거나 강이거나 성이거나 동산이거나, 여러 곳에서 모두 다 그들이 머물렀던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그때 내가 모두를 비밀스럽게 보호하여 바른 생각을 얻게 하고, 그들의 처소에 가서 안락하게 잠이 들게 하고자 하였다.
선남자여! 만약 어떤 중생들이 혈기가 왕성하여 교만하고 방일하여 다섯 가지의 욕락에 스스로 방자하게 되면, 나는 그들을 위하여 늙고 병들고 죽는 모양을 보여서 두려운 생각을 내게 하여 모든 나쁜 짓을 버리어 여의게 할 것이다.”
보리는 선지식인 말투에 이제는 익숙해진 듯, 눈만 깜빡거리며 선재 동자를 쳐다보았다. 이에 개부수화 주야신이 보리의 귀여운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귀여운 아가씨로군! 아까 오는 길에 바즈라 동산을 보았느냐?”
선재 동자가 대답했다.
“예, 보았습니다. 거기서 커다란 고양이도 보았습니다.”
개부수화 주야신이 웃으며 말했다.
“그 고양이는 트롬이라고 하는데 우리 동네를 주름잡고 있는 놈이지. 새들이 짹짹거리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아이야.”
보리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고양이는 사료를 먹는 게 아닌가요? 작고 예쁜 새들을 왜 잡아먹어요?”
개부수화 주야신이 말했다.
“트롬은 아직 혈기가 왕성하고 교만해서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는 놈이야. 내가 지켜보고 있다가 때가 되면 일러 줘야지. 자기 자신도, 잡아먹은 새들처럼 잡아먹히게 된다는 것을….”
그때, 트롬은 배롱나무 숲, 기와 담장 위에 앉아 있었다. 웬일로 굴뚝새는 안 잡고 배롱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야, 트롬. 내 말 좀 들어봐, 어제 꽃들이 날 보고 자기들도 새처럼 날아가겠다는 거야. 나 참, 기가 막혀서….”
트롬이 말했다.
“뭐라고? 꽃들이 어떻게 날아? 바람이 불어야 나뭇잎처럼 후두두 떨어지기 지기나 하지.”
배롱나무가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사람들이 꽃구경하면서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지들 세상인 줄 알아. 그러니까 잎사귀들도 날뛰지.”
트롬이 꼬리로 배롱나무를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어?
배롱나무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라고 하기는, 지들이 누구 때문에 꽃망울이 생기고 꽃이 피게 됐는지도 모르면서…. 개부수화 주야신님이 고통스러운 겨울의 눈보라를 이겨내어, 봄에 찬란하게 꽃을 피우게 해주시고, 모든 번뇌와 괴로움을 맑고 아름다운 꽃으로 장엄하여 주시는 줄도 모르고…. 바보 같은 꽃들이야. 정말 대답도 하기 싫어.”
트롬이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배롱이 너도 없으면 꽃들이 어떻게 가지에 열리냐. 개부수화 주야신님도 너에게 고마워해야 해.”
배롱나무가 큰일난다는 듯, 가지를 막 흔들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나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데, 나무들은 땅으로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줄기와 잎으로 꽃을 아름답게 피우도록 받쳐 줘야 해. 그게 내가 할 일이고, 또 싱싱하게 잘 자라줘야 사람들이 좋아하지. 특히 내 경험으로 봐서, 사람들은 꽃만 좋아하지 않아. 겨울이 오기 전에 춥지 말라고 우리들을 짚으로 감싸주고 얼지 않게 보호해 주잖아. 그 모든 것을 개부수화 주야신님이 관장하고 계신 거야.”
트롬이 담장에서 뛰어내리며 빈정거렸다.
“그래, 잘해봐라. 나는 굴뚝새 사냥이나 하러 가야겠다.”
배롱나무가 나뭇가지들을 마구 흔들면서 소리쳤다.
“이제 제발 그만 잡아. 작고 어린 새들을 왜 자꾸 잡아. 너 그러다 천벌 받는다, 진짜 너도 삵한테 잡아먹힐 거야.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니. 나는 네가 죽을까 봐 겁나,”
급기야 배롱나무는 엉엉 울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배롱나무에게 바즈라 동산을 돌아다니며, 이런 이야기 저런 풍경을 알려주던 트롬이었다.
“그래도 네가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는데…. 엉엉…. 트롬아, 작은 새 사냥 그만하고 꽃구경이나 하면서 놀자. 개부수화 주야신도 널 벼르고 있으실 거야.”
트롬은 들은 둥 마는 둥, 꼬리를 흔들며 동산으로 사라져갔다.
개부수화 주야신이 트롬과 배롱나무가 말하는 것을 다 들으시고 선재 동자에게 말했다.
“잘 보았느냐. 내가 밤에 하는 일이 다 바라밀을 행하는 일이다. 저 배롱나무는 나의 제자로 나의 가르침과 학습을 배운 몇 안 되는 제자야.”
그러자 보리가 물었다.
“나무가 제자예요? 나무에게 무엇을 가르치셨는데요?”
개부수화 주야신이 허허! 너털웃음을 웃으며 대견한 듯 보리를 쳐다보았다.
“나무도 좋은 기운과 영험함이 있어 다 알아듣지. 너희들도 나무에게 소원을 빌지 않니?”
그에 선재 동자가 손뼉을 딱 치며 말했다.
“아아 맞아요. 오래된 나무, 서낭당! 오색 띠를 두르고 돌로 단을 쌓아 빌지요.”
“맞아. 그래서 내가 배롱나무에게 매일 가르쳤지.”
보리가 다시 한번 물었다.
“무얼요?”
개부수화 주야신이 배롱나무를 가리키며 노래하듯 말했다.
“인색함보다 자비를 베풀고
화를 내기보다 인자하게 웃고
복수를 꿈꾸기보다 사랑으로 용서하고
게으르기보다는 부지런하고
남을 해치기보다 서로 도우며 살게 하고
나쁜 꾀를 가지기보다 반야 지혜로
모든 탐진치를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지.”
-2022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