㊴ 전륜성왕의 후신 수호일체 주야신

 

선재 동자와 보리가 수호일체 주야신을 만나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면서 서로 손을 잡고 기뻐하며 춤추고 뛰놀다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예배를 올리고, 합장하며 선재 동자가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지만, 아직도 보살이 보살행을 수행할 때, 어떻게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어떻게 위없는 거둠으로 중생들을 거두고, 어떻게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에 수순하고, 어떻게 법왕의 자리에 가까이하는지를 알지 못하니, 오로지 인자하고 가엾게 여기시는 마음으로 저희를 위하여 말씀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때 보리가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근데, 오빠. 저 선지식을 만나니까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왜 춤을 추고 싶지?”
선재 동자가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여태 만나 뵈었던 분들과는 느낌이 좀 달라.”
수호일체 주야신이 아주 편안하고 기품 있는 얼굴로 말했다.
“선재 동자야, 나는 보살의 아주 묘한 음성으로 이야기하면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큰 법사가 되어 항상 기쁘고 거리낌이 없단다. 따라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자비심을 내게 하여 세상을 이롭게 하고 즐겁게 살아가기를 늘 기도하고 있지.”
선재 동자는 생각했다.
‘선지식들은 모두가 다 중생들을 이롭게 하려고 노력하시는구나. 그리고 보리심을 내어 모든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애쓰시는구나.’
그리하여 존경하는 마음으로 두 손을 합장한 채 물었다.
“수호일체 주야신님은 어떻게 하여 묘한 음성으로 해탈을 성취하셨습니까?”
수호일체 주야신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 꼬마 아가씨는 이름이 뭐지?”
보리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는 보리라고 합니다.”
“보리! 음, 보리는 좋은 이름이야, 깨달음의 성취를 꿈꾸는 이름이지. 그래서 오빠 옆에 딱 붙어 있었구나. 한 번도 서로 싸운 적이 없네. 정말 착하고 착한 아이들 이로군. 내가 선물로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아주 오래전 이야기야.”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때 처음 부처님은 법해뇌음 광명왕 여래이셨다. 그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전륜성왕이 출가하여 부처님의 정법을 수호하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의 불교 역사에도 수많은 왕이나 왕족들이 출가하거나 불법에 귀의하여, 불교를 보호하고 유지한 역사가 많다. 반대로 왕들이나 대신들이 불교를 폐망시킨 경우도 적지 않다. 소위 수많은 폐불 사건이 그것이다.
호불 역사와 폐불 역사를 다 기록하자면 끝이 없으나, 전륜성왕 시절은 페불 직전으로 일천여 명의 비구들이 서로 잘난 척하며 비방을 일삼았다.
어떤 식이냐면, 옷은 항상 풀을 먹여 깨끗하게 다려입고, 신도들에게 위엄을 갖추고,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제1 큰스님이 있었다. 그의 절에 신도들은 넘쳐났으며 절도 깨끗이 장엄하고 돈도 많았다. 큰 스님은 신도들에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베풀라고 하면서, 자신은 주변의 모든 땅을 사들이고 팔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부처님의 선몽을 받았다며 헐값에 내놓게 하고 사들였다.

삽화=서연진 화백.
삽화=서연진 화백.

 

두 번째 제2 큰스님은 공부를 많이 하다 보니 아는 게 많아, 항상 나서기 좋아하여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받들고 최고라고 말해 주기를 원했다. 신도들이나 스님들 앞에 나서서 잘난 척하며 자기를 최고라고 말해 주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든 구설수를 만들고 모함하여 다시는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하였다.
제3 큰스님은 제1 큰스님의 상좌였다가 따로 나와서 절을 차린 후, 내가 제일 잘 나간다며 뽐내고 다녔는데, 자신을 키워준 제1 큰스님을 틈만 나면 욕심쟁이에 심술쟁이, 고집불통이라고 흉을 보고 다녔다. 그러나 제1 큰스님이 하던 대로 신도들에게 구역을 정해 마당을 쓸고 밥을 짓고, 빨래하고 밭농사를 짓게 하였다. 그리고 신도 외에는 절 출입을 막았다.
“내가 보고 배운 게 이것밖에 없어서 이렇게 하는 거야, 이게 다 부처님께 공덕을 짓는 거지. 나 아니면 누가 신도들 복을 짓게 해주겠어? 고마운 줄 알라고. 그러니까 내가 제일 잘 나가는 스님이야.”
제3 큰스님은 입에 침을 묻혀가며 말했다. 그러다 보니 천여 명의 스님들이 편을 나누어 싸우기 시작했다.
“제1 큰스님이 최고야. 좀 있으면 세계 최고의 땅 부자가 되어서 불교 왕국의 중심지가 될 거야.”
“누가 그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제2 큰스님이 제일 잘 생기고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것도 많아, 그래서 보살들이 줄을 서잖아. 얼굴 한 번 보고 법문 들으려 시주도 많이 하잖아. 한번 친견하려면 적어도 삼천만 원은 내놔야 해.”
“아이고! 우리 제3 큰스님은 제일 젊어서 추진력도 좋고 모든 걸 조직적으로 짜임새 있게 일하셔. 모든 일을 번개같이 일사천리로 척척 하시잖아. 두 큰 스님은 이제 나이가 들어서 얼마 못 가.”
그들의 싸움은 점차 거세져서 온 세상이 흔들거렸다. 번뇌와 업은 두터워지고 비구들은 이제 산적 떼들처럼 때려 부수고 난리를 쳐, 스님인지 속인인지 분간이 안 되고 스님다운 행동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때 전륜성왕인 비구가 말하였다.
“도대체 스님들이 왜 저러는 거지? 부처님의 자비로운 사랑은 다 어디로 가고 아상만 높아지니 스님의 본분을 잊어가는 게 슬프고도 괴로워라. 다 같은 부처님의 제자로, 그 뜻을 받들고 함께 힘을 모아 도와주고, 의지하며 불법을 키워서 넓게 펼쳐야 하는데, 부처님의 자비로운 큰 바다에서 어찌하여 그대들은 서로 잘난 척하고 욕심을 내며 함께 비방하고 없애려 하는가.”
전륜성왕인 비구가 무슨 방법을 동원하여 불법을 다시 일으켜 세울까…. 생각하다가 이 상황에서 꼭 필요한 신통한 방편을 내었다. 전륜성왕 비구는 하늘 높이 올라가서 몸으로, 한량없는 여러 가지 빛 불꽃 구름을 내며, 가지각색 빛의 광명 구름을 놓아, 묘한 음성으로 노래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비구들에게는 심술 궂고 욕심에 가득 차, 남을 비방만 하는 뜨거운 번뇌를 없애고, 보리심을 내게 하였다. 그리하여 여래의 불법이 다시 성행하게 되었고 천여 명의 비구들은 반성하고 참회하며 조용히 안거에 들어갔다. 당연히 세 큰스님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 또 비구니가 있었으니 이름이 법륜 화광이다. 전륜성왕의 딸로서 백천 비구니로 권속을 삼았는데 부왕의 신통한 힘을 보고 보리심을 내어 삼매를 얻었으니 이름이 ‘모든 부처님 가르침의 등불’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수호일체 주야신이 말했다.
“이토록 폐불 위기에서 호불로 흥성하게 한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보현보살이며, 법륜 화광 비구니는 곧 나다.”
선재 동자가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말했다.
“그, 정리해 보면 그 시절의 전륜성왕은 곧 보현보살 님이시고, 전륜성왕의 딸로서 비구니가 된 분이 지금의 수호일체 주야신이라는 거지요?”
수호일체 주야신이 말했다.
“당연하지, 그 후부터 세계의 미진수 겁 동안에, 부처님들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이들을 내가 다 공양하고 그 법을 수행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그때부터 나고 죽는 밤중의 어두운 무명 속에 있는 모든 중생에 홀로 깨어서 중생에게 마음을 수호하고 일체 지혜의 위없는 법의 성에 머물게 하였다. 그래서 나의 이름이 일체 성을 수호하는 밤 맡은 신, 즉 수호일체 주야신이다. 선재 동자야, 그러나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이 부처님 회중에 주야신이 있으니 이름은 모든 나무에 꽃을 피우는 개부일체 주야신이다. 그대는 그에게 가서 보살이 어떻게 일체 지혜를 배우며, 어떻게 일체 중생을 편안히 있게 하며 온갖 지혜를 가질 수 있는지 물어보아라.”
선재 동자와 보리가 그의 곁을 세 번 돌며 합장하고 하직하려는 순간, 매우 깊고 자유자재한 묘한 음성의 해탈 속으로 들어갔다.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마음이 편해지고 환희심이 불같이 솟아올랐다.

-2022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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