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관휴의 나한도

관휴, 십육나한도, 견본설색, 92.2ⅹ45.4 cm 일본궁내청 장
관휴, 십육나한도, 견본설색, 92.2ⅹ45.4 cm 일본궁내청 장

 

 

관휴(贯休, 832~912)의 성은 강(姜)이며 호는 선월대사(禪月大師), 당 말 오대시기 활동한 시승(詩僧)이자 서예가 겸 화가이다. 그의 작품으로 〈유마힐상〉, 〈고승상〉, 〈존자상〉, 〈나한상〉 및 몇 점의 산수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중 일본 왕실 소장의 〈십육나한도〉 가 가장 유명하다.

나한(羅漢)은 범어 아라하트(aratha)의 음역인 아라한의 준말로 붓다의 제자가 도달하는 최고 깨달음의 경지를 말하며 십육나한은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 아라한과를 증득한 열여섯 명의 붓다 제자를 일컫는다. 이와 같은 붓다의 경지에 오른 아라한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붓다처럼 신성 장엄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 합당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관휴가 그린 나한상은 그런 존귀함이나 성스러움은 전혀 보이지 않고 세속적인 현실 인간의 모습이다. 그 헤 벌어진 입, 튀어나온 이마, 깡마른 몸매는 흔히 보는 시정 사람으로 높은 좌대에 앉아 있어야 할 귀족풍의 보살과는 다르다. 이런 모습은 나한의 정신적 수행의 깊이를 암시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표현이 고박치졸(古朴稚拙; 예스럽고 순박 단순)한 이 그림에는 그림의 필치와 흡사한 전서체 제발(題跋)이 쓰여 있는데, 이에 의하면 관휴는 고향인 절강(浙江) 난계(蘭溪) 살 때 880년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호북(湖北)에 살던 894년에 완성했다. 고졸한 구륵(鉤勒) 선묘로 인물 형상은 극도로 과장되게 표현하여 각 나한의 신체적 특징과 정신 기질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나한상들은 넓은 머리와 튀어나온 광대뼈, 드러난 이빨과 두꺼운 입술, 날카로운 눈, 커다란 귀, 깡마른 볼과 몸매... 등 등 이 모든 것들은, 여전히 당 왕실의 우아하고 고전적인 인물 묘사를 추구하던 당시의 전통적인 미적 기준과는 전혀 다르다. 이 이상한 모습은 그 표현에 있어서 해괴(駭怪)하고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꿈에서 본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인도 간다라 양식의 나한 조각상을 근원으로 범상호모(梵相胡貌, 인도 형상, 서역 모습)를 그렸을 것이라 짐작된다. 우리는 여기서 상상과 환상이 어우러진 풍부한 시각적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관휴의 나한상은 단순히 해괴한 모습의 외적 형식미에 머물지 않고, 세속을 초월한 순수한 내면의 모습까지도 잘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허위의 귀족적 외모가 아닌 현실 인간의 모습으로 깊고 오묘한 내면의 진실을 보여주려 함이다. ‘깨달음’도 ‘예술’도 다 같이 인간 내면의 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국대 명예교수, 수묵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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