㉞ 기쁨과 희망을 주는 바산바연 주야신
선재 동자와 보리가 마가다국의 가비라 성에 다다르자 해는 이미 서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동문으로 들어가서 잠깐 서 있는 동안에, 밤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선재 동자는 바산바연 주야신은 문득 부처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의아해하던 차에 주야신 즉, 밤의 신인 바산바연 주야신 선지식이 허공에 있는 보배 누각의 향 연화장 사자좌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몸은 은은한 금빛으로 빛나고 눈과 머리카락은 검푸르고 용모가 단정하여 보는 이들이 즐거워하고, 보배 구슬로 꾸민 몸에 붉은 옷을 입고 머리에는 범천 관을 쓰고 있었다. 마치 네온사인의 불빛처럼 작은 별들이 몸에서 반짝거려, 나쁜 길로 가려는 중생들을 제도하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에 보리가 물었다.
“오빠, 저 선지식인 님은 마치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 같은 복장을 하고,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신호등처럼 반짝반짝 켜졌다, 꺼졌다하네.”
선재 동자가 대답했다.
“응, 밤을 대표하시는 분이라, 길을 잃고 헤매는 불쌍한 사람들을 반짝이는 별들과 함께 밝은 광명을 비춰서 어둠 속에서 괴로움을 받는 사람들을 구제해 주고 있대. 그러니까 우리도 빨리 가서 인사드리자.”
보리와 선재 동자가 허공의 사자좌에 앉아 있는 바산바연 주야신에게 엎드려 절하고 수없이 돌며 합장하고 말하였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무상 보리심을 내었나이다. 또한 선지식들을 의지하여 보살도를 구하러 하니 제게 온갖 지혜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소서.”
바산바연 주야신이 말했다.
“좋다. 나는 밤을 주관하는 신으로, 원래의 이름은 바산으로 봄을 뜻하고 바연저는 이들을 담당한다는 것으로 봄에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은 것을 주관한다는 뜻의 이름이다. 하지만 부처님을 오랫동안 공양한 대가로 밤을 담당하는 신, 주야신이 되었다.”
이에 보리가 물었다.
“밤의 신은 무엇을 하는 분인가요?”
바산바연 주야신이 대답했다.
“선남자여! 나는 모든 중생의 어둠을 깨트리는 법 광명 해탈을 얻었노라. 어둠을 깨트리는 법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생각 부정적인 생각, 안 좋은 상황, 이런 것들을 깨트리는 그런 광명 해탈을 얻었다. 선남자여! 나는 나쁜 꾀를 가진 중생에게는 크게 인자한 마음을 일으키고, 착하지 못한 업을 짓는 이에게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고, 착한 업을 짓는 중생에게는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착하고 나쁜 두 가지 행을 한 중생에게는 둘이 아닌 마음을 일으키고, 잡되고 물든 중생에게는 깨끗함을 내게 하는 마음을 만들게 한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밤이 깊고 사람이 고요하여, 귀신과 도둑과 나쁜 중생들이 쏘다닐 때나 구름이 끼고 안개가 자욱하고, 태풍이 불고 비가 퍼붓고 해와 달과 별빛이 어두워 지척을 분별 못 할 때, 중생들이 바다에 들어가거나 육지에 다니거나, 산림 속에서나 거친 벌판에서 거나 험난한 곳에서 도둑을 만나거나, 양식이 떨어졌거나 방향을 모르거나 길을 잃었거나 해서 놀라고 황급하여 벗어나지 못하는 이를 보고는 가지가지 방편으로 구제하여 주노라.”
그러자, 보리가 두 손으로 머리를 탁탁 치며 말했다.
“아이고 머리야, 도대체 뭐라고 말씀하시는 거야? 나는 복잡하고 어려워서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오빠는 다 알아듣겠어?”
선재 동자가 머리를 치고 있는 보리를 안아 주며 말했다.
“지금 선지식인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법문이라고 그래, 부처님의 말씀인 거지. 바산바연 주야신은 부처님을 대신해서 우리에게 대자대비 광명을 일러주고 있으신 거야.”
선재 동자의 말이 끝나자, 검푸른 눈으로 보리를 쳐다보며, 부드러운 금빛 손으로 보리를 잡고 바산바연 주야신이 말했다.
“하하하, 내가 어린아이에게 너무 어려운 말을 했구나. 쉽게 말하면, 밤의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반짝거리는 별빛으로 밝고 환한 곳으로 데려다주는 일을 하고 있어. 참, 너를 보니까 생각나는데 저기를 보렴.”
주야신이 손을 들어 가리키는 곳에 웬 아이가 어두운 벤치에서 울고 있었다. 아이는 조그맣고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였다. 주야신이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가, 찰랑찰랑하는 보배 구슬의 영롱한 소리와, 몸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별들을 보여 주었다. 울음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고 숨죽인 채 울고 있는 아이에게 야신이 물었다.
“아가, 우는 이유가 뭐지?”
선재 동자와 보리도 궁금하여 아이 곁에 섰다. 아이는 자기와 비슷한 보리를 보고 마음이 놓이는 듯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친구들이 저를 싫어해요.”
선재 동자가 물었다.
“왜? 착하게 생겼는데?”
“제가 시골에서 와서 촌스럽대요. 그리고 말에 사투리가 많아서 듣기 싫대요.”
보리가 위로하듯 아이의 손을 잡았다.
“뭐라는 거야? 사투리가 왜 듣기 싫어? 나는 구수하니 재미있어서 좋더구먼….”
아이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나는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싶어 일주일 내내 엄마를 돕고 받은 용돈으로, 친구들과 오래 놀고 싶어 사달라는 것을 다 사 주었지요. 하지만 친구들은 내가 돈이 떨어지면 나를 버리고 저희끼리 놀아요.”
“그건 왕딴데! 그리고 돈 떨어지면 버리는 거 친구도 아니야.”
갑자기 선재 동자가 분노하면서 말했다. 그에 보리도 화를 내며 물었다.
“그러니까 왜 사달란다고 다 사줘? 너는 혼자 쓰지도 못하고….”
아이는 다시 울먹거리며 말했다.
“나는 친구들과 같이 떡볶이도 사 먹고 마라탕도 함께 먹는 게 좋아요. 친구들과 놀면 자꾸 웃게 되고 즐겁거든요."
그때 바산바연 주야신이 아이를 안아 주며 말했다.
“어머니는 알고 계시니?”
“네, 하지만 엄마는 친구를 너무 좋아하는 저를 말릴 수가 없어 계속 용돈을 주세요.”
아이의 대답에 주야신이 보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자, 보리야. 너 같으면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겠니.”
보리가 당황하며 선재를 쳐다보았다.
“엥? 저, 저요? 글쎄…. 저 같으면 그 애들과 안 놀겠어요.”
선재 동자가 대답했다.
“그럼, 시골에서 와서 같이 놀 친구가 없는데….”
보리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치! 그럼, 혼자 놀지 뭐.”
주야신이 다시 아이에게 물었다.
“그럼 너는 이 밤중에 혼자 울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그냥 슬퍼서 울기만 하는 게냐?”
아이가 대답했다.
“아니요. 밤중에 여기 나와서 우는 것은 엄마가 마음 아파할까 봐, 쓰레기 버리러 간다고 하고 나왔어요. 그리고,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싫어 하는 지 되돌아 보며 반성하고 생각 중이에요.”
보리가 화를 내며 말했다.
“반성은 무슨 반성!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냥 딴 친구 사귀면 되지.”
“좋은 친구 사귀는 것도 쉽지 않아, 그러려면 우리처럼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참을 줄 알아야지.”
선재 동자가 보리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보리가 얼굴을 붉히고 선재 동자에게 주먹을 날리며 말했다.
“오빠!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고? 사랑, 사랑?”
선재가 하하하 웃으며 저만치 달아난다. 그 모습을 보고 울고 있던 아이가 빙그레 웃는다. 하얀 이를 조금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보리는 아이를 꽉 안아 주었다.
바산바연 주야신이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 이제 친구들과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일러주겠다. 근본적으로 나를 왕따 시키는 친구들을 미워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쌍한 아이들이야. 아까 선재 동자 말처럼,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참을 줄 모르는 아이들이니까…. 하지만 근본적으로 미워하면 다음 생에 미워하는 사람으로 태어나니까. 미워하면 또 안 된다는 거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그런 논리지…. 그리고 나를 따르고 좋아하는 사람이 되게끔 해야 해. 그러려면 내가 마음의 양식을 많이 준비해야 해. 그건 바로 책을 많이 읽어서 어떤 풍파가 다가와도 견뎌내는 힘이 되는 거지.”
그 말에 아이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는 책 읽는 거 싫어하는 데….”
주야신이 말했다.
“요즘 아이들, 책읽는 거 싫어하지. 하지만 배가 고프면 밥 먹듯이 마음에도 밥 같은 양식이 있어야 해, 그게 책을 읽는 거란다. 책이라는 양식은 마음에 쌓이면 절대로 없어지지 않아. 또한 생각도 깊어져서 친구들이 잘못을 해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고, 혼자서도 잘 노는 방법을 찾게 되지. 그게 책이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는 방법이야. 또 신기한 것은 책을 많이 읽게 되면 친구들이 다시 찾아온단다. 이제 잘 알아듣겠니?”
같이 듣고 있던 보리도 가슴이 찔렸다. 자신도 책을 싫어했는데 싶어서였다.
선재 동자가 합장하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것이 어둠 속에서 기쁨과 희망을 주는 방편이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얻은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바산바연 주야신이 말했다.
“자, 이제 선재 동자여.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나의 스승인 보덕정광주 야신을 만나 그에게 묘한 법의 보살도를 물으라.”
-2022년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