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섭(1965~ )

초당 순두부는 초당에 가서 먹어야 합니다
가는 길에 연한 풀로 엮은 집 한 채를 지어야 합니다

눈으로 먼저 먹어도 좋습니다
눈으로 먹고 배가 부른 적도 많습니다

살다가 열목어처럼 눈이 뜨거워지면
연한디 연한 풀로 지은 집 한 채를 지으며 초당으로 갑니다

초당 순두부는 초당에 가서 먹어야 합니다       (《네루다의 종소리》, 달아실, 2024)

 

 

동해 쪽에 바짝 붙어 사는 시인들에겐 태백산맥 너머의 서늘한 기운과 초식동물의 순한 눈빛이 감돈다. 이 시에선 연하디 연한 초당 순두부의 슴슴한 맛이다. 아동바동 사노라 핏기가 오른 열목어의 열을 가라앉히는 그늘의 감각이다. 그들이 령을 넘어 와서 서울 볼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은 그냥 보내질 못하고 밥을 먹거나 술국을 펐다. 터미널 근처까지 따라가서 버스 뒷꽁무늬를 향해 손이라도 흔들어주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때 우리에게 있던 그 먼 곳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언제나 갈 수 있는 곳이 되어버린 동해처럼 초당 순두부도 주문으로 맛볼 수 있는 흔한 음식이 되어버렸다. 비록 불편하고 더디기는 하지만 ‘연하디 연한 풀로 지은 집 한 채’를 기꺼이 지켜가고자 하는 출판사와 시인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시인ㆍ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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