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제일 의문을 가지는 것이 생(生)과 사(死)의 정체성이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생과 사의 해석은, 창세기Genesis 창조주가 ”6일째 되는 날 인간을 창조했다.“라고 했고, 사후에는 ”천국에 가서 영생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반면에 불교의 학설을 살펴보면, 생사유전(生死流轉)이라 하여, 유정물 모두가 지은 업(業:근본 성질)에 의해 태어나 활동하고 늙고, 병들어 죽어간다는 원리를 주장하고 있다. 유교나 다른 종교에서는 생(生)에 대해 조물주를 내세우거나, 조상을 주장을 하며, 사死후 자연으로 돌아간다든가, 단멸론으로 종결한다.

이렇게 각각 주장하는 관점이 다르지만. 생자필멸(生者必滅)이란 진리에는 모두 동의한다. 그렇지만 생(生)은 무엇이며, 사(死)는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어느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미얀마 우 아찐나 스님이 연구한 아비담마 번역서 《업과 윤회의 법칙》을 살펴보면, 뿌르나 까싸빠가 주장하는 “생사는 영원하다.”라는 상견(常見)과, 아지따 께사깜발라 견해인 “모든 것은 끊어진다.”라는 단견(斷見), 마깔리 고살라의 견해인 “상견과 단견이 모두를 인정한다.“라는 논설이 있다. 그 내용 중, 업(業)과 윤회(輪回)에 대한 견해를 다각적으로 서술해 놓았는데 여기에서 생사를 주관하는 정체는 업(業)라는 중요한 단서를 찾게 된다.

사실 업이라는 용어가 불교에서 널리 쓰여왔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불교에서 발생된 용어로 착각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업이라는 개념은 기원전 1500년 고대 인도 문헌인 ’베다‘에서 카르마(karma)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 카르마란 용어는 산스크리트어로 행동이나 행위를 뜻한다. 카르마를 힌두교에서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라 하고 ”끌어당김“ 또는 우주의 법칙이라고 해석을 했다.

이후 불교에서 카르마 법칙을 수용하여 연기설(緣起說) 그리고 생존의 에너지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으로 연구해 왔다. 그후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면서 카르마를 업(業), 업장(業藏)이라 한역하게 되었다.

카르마는 중국에서 한역되기 훨씬 이른 시기, 부파시대에 <설일체유부>에서 논의된 자료를 바탕으로 불교 유식학파인 무착(Asanga)이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을 정립하면서 카르마의 해석은 더욱더 명료해졌다. 여기에서 밝힌 카르마란 자기가 지은 업력(業力)이 생사의 근간(根幹)이 되며, 일체 만유가 연기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만물이 인연의 원리에 의해 서로 인(因:근본원리)과 연(緣:보조원인)이 만나 개체를 생성시키고 멸하게 하며, 그 가운데 근본적으로 ’인간의 내면의 습성과 행위에까지 집요하게 영향을 미치게 한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업감(業感)이란 선악의 행위에 따라 과보(果報)를 만든다는 뜻이며, 모든 유정(有情)들은 각자의 자기가 지은 업이 있어 그 업에 따라 자신의 환경을 만들고, 그 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속(相續)하게 된다고 하였다.

한편 선업(善業)은 선과(善果)로, 악업(惡業)은 악과(惡果)로 자신이 지은 업대로 받는다고 했는데, 이를 두고 업보(業報) 또는 과보(果報)라고 한다. 여기서 상속된다는 뜻은 「번뇌⤍업⤏고통」, 「습관⤍과보⤍업」으로 진출된 것들이 제8식〔아뢰야식〕에 쌓이게 되고, 쌓인 카르마가 다음 생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이 같은 현상을 윤회(輪回)라고도 말을 하고 있다.

카르마는 이렇게 미래의 생과 연결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고 있으며,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단서가 된다. 그러나 불경에서 선악일여(善惡一如)라고 하여 ”본래 본 마음은 청정하여 선악이 없다.“라고 하여 선악에 대해 논할 계제는 아니지만, 선악으로 분별하게 된 동기를 살펴보면, 몸[身], 입[口], 생각[意]이 근간이 되어 행위로 나타나 그 행위가 습성으로 고착된 것을 인간들이 분별하여 선업(善業), 악업(惡業)이라 단정 지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카르마를 단순한 개인의 행위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공업(共業)이 있다.

앞서 밝힌 업설(業說)은 자신이 지은 업의 결과는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공업(共業)은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타인의 행위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즉 사회적인 연대성을 가지고 있어 어떤 선악이든 업의 성격에 따라 너와 나 공동책임과 혜택이 주어진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 흔하게 목격되고 있다.

이처럼 카르마는 우리 내면에서 보이지 않게 왕성하게 활동하는 한편, 모든 행위 들이 낱낱이 아뢰야식〔장식藏識〕에 저장되어 있다가 다음 생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했으니, 생사는 물론, 생로병사와 현재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모든 현상들이 카르마의 법칙에 의해 상응한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철학박사ㆍ시인ㆍ 청정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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