㉜ 광대한 몸으로 수많은 공양물을 보시하는 대천신
선재 동자와 보리가 남쪽 타자발지 성의 대천신을 찾아갔을 때 그는 네 개의 손으로 네 개의 바닷물을 움켜쥐고 세수를 하고 있었다.
보리가 대천신의 크고 광대한 몸을 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
“우와아, 손이 네 개나 되네. 바닷물을 네 군데에서 떠서 세수를 하셔!”
선재 동자가 늘 그러하듯 보리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기고 대천신의 발 앞에 절한 뒤, 합장하며 물었다.
“거룩하신 이여, 저에게 보살도를 일러 주십시오.”
대천신이 황금꽃을 흩뿌리며 말하였다.
“선남자여! 모든 보살은 보기 어렵고, 듣기 어렵고 세간에 나오는 일이 드물어서 만나보기가 어렵도다. 백련화처럼 오직 몸과 말과 뜻에 신(身),구(口),의(意)에 허물이 없는 이라야 문수 보살이나 관세음 보살 등 여러 보살들의 형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항상 어느 때나 언제나 앞에 계신데 내 스스로의 몸과 말과 뜻에 허물이 있기 때문에 못 보는 것이다.”
선재가 다시 물었다.
“그럼 도대체 그 인과의 과보는 어떻습니까?”
대천신이 선재 동자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앞에다 각종 보배를 산같이 쌓아놓고 또 그와 함께 꽃과 향과 의복과 음악과 보배 관, 보배 팔찌, 보배 귀걸이를 그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선재는 이 물건들을 가져다가 여래께 공양하여 복덕을 짓고, 모든 중생들에게 보시하여 그들이 보시바라밀다를 배우고,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을 버리게 하고, 착한 마음을 내게 하여 위없는 보리심을 갖도록 하여라.”
보리가 갑자기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맸다.
“아이고 또 시작이시네. 보시바라밀다! 위없는 보리심!”
“하하하”
보리의 짜증이 귀여워 보였는지, 대천신이 크게 웃었다.
“아직 어린아이에게는 좀 어려운 말이긴 하지. 자, 보리야! 내가 알아듣기 쉽게 천천히 가르쳐 줄테니 잘 들어 보거라.”}
보리가 짜증 난 얼굴을 펴면서 두 손을 공손하게 합장하며 대천신에게 고개 숙여 절을 하였다.
“예에, 예에, 대천신님.”
대천신이 네 개의 팔로 보리를 감싸 안아 들어 올리더니 하늘을 둘러보게 했다.
“자 보아라,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욕심을 내는 데, 나는 욕심이 많으면서도 게으른 사람에게는 욕심 많고 게으른 것은 더러운 짓이라는 걸 보여준다. 마치 더러운 돼지우리의 돼지를 말하는 거야. 또 어떤 중생이 화 잘 내고 교만하여 언쟁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매우 무서운 형상을 보여주는데, 눈에는 눈, 불은 불로써 끄는 것과 같은 이치란다. 쉽게 말하면 내가 더 무서운 형상으로 교만함을 없애주는 거지. 나찰이나 도깨비 따위가 피를 빨고 씹는 것을 보여주어서, 놀래고 공포스럽고 두려웠다가 이게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 분노가 차츰 가라앉게 되지. 마음이 편안해지도록 기다리는 거야. 그러면 차츰차츰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니까 저절로 위없는 보리심을 갖게 되는 거란다. 이제 알아듣겠니? 위없는 보리심이 어떤 건지….”
보리는 특유의 고갯짓으로 어깨 한쪽을 배배 꼬며 말했다.
“듣고 보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는 대충 알 것 같은데, 확실하게 말하라면 잘 모르겠어요.”
선재 동자가 대천신의 네 팔에 안긴 보리를 받아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보리. 이제 철 좀 들어라. 그간 많은 선지식들을 만나 뵈면서 깨달은 바가 없니? 아직도 선지식님에게 버릇없이 뜻을 알겠네, 모르겠네…. 버르장머리가 없어.”
“아이고 어지러워, 두 팔에 안겨도 어지러운 데, 네 팔에 안겨서 이리저리 돌려 대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네. 오빠, 뭐라고?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내가 정말 그랬나?”
선재 동자가 보리의 얼굴에 종주먹을 들이댔다.
“으이그, 그러니까 이제 철 좀 나라고. 너도 빨리 깨달아서 선지식이 돼야지.”
그 말에 보리가 메롱! 하더니 저만치 도망을 가면서 선재 동자를 놀리듯 말했다.
“흥흥! 오빠가 먼저 선지식인이 돼야지. 뭐든지 차례가 있잖아요, 차례차례….”
그 말에 선재 동자가 얼굴이 빨개져, 보리의 뒤를 쫓아가다 발을 멈추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 대천신님의 말을 정리하자면 대천신님이 우리를 교화시켜 주려고 나타나셨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야.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 잠잘 때도 무서운 꿈을 꾸게 될 때, ‘내가 화를 잘 내고, 교만하거나 언쟁을 좋아해서 그것을 부드럽게 만들려고 대천신이 나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줬나 보다.’하고 생각하면 무서운 꿈이 사라지지. 그러면 장애가 없어지고 한없는 자비심이 생기면서 결국은 위없는 보리심이 생긴다는 거야.”
선재 동자의 말에 대천신이 함빡 웃으며 말했다.
“나는 모든 이치에 맞게 널리 베풀고 응해서 ‘대’라고 하고, 지혜가 청청하고 자유자재하므로 ‘천’이라 하며 장애가 없도록 미묘한 법문의 방편을 두루 갖추어서 ‘신’이라 한다. 또 구름 그물 해탈을 얻었으나 저 보살들의 제석천왕과 같이 모든 번뇌의 아수라를 항복 받거나 소멸시키는 법을 알지 못한다. 여기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잠부드비이파 마가다국의 안주 주지신을 찾아가서 보살도를 물으라.”
선재 동자는 보리와 함께 대천신을 하직하고 마가다국의 안주 주지신을 찾아갔다.
㉝ 땅의 터주신, 안주 주지신
선재 동자와 보리가 마가다국의 보리도량에 안주 주지신의 처소로 찾아갔다.
잘 머무는 땅의 백천억 땅 신들은 선재 동자를 보고 서로 말하였다.
“여기 오는 선재 동자는 곧 부처님의 빛이니, 반드시 모든 중생의 의지할 곳이 될 것이며 곧 부처님의 곳간이 될 것이다. 모든 중생들이 의지할 곳은 바로 보살이고 부처다. 저 동자는 반드시 보살로서 무지함의 껍데기를 깨뜨릴 것이다.”
그러고는 환영의 뜻으로 큰 빛을 쏘아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비추니, 온 땅이 한꺼번에 진동하며 모든 잎과 나무들은 동시에 자라나고, 꽃들은 한꺼번에 피기 시작했으며 바로 열매를 맺었다. 시냇물은 강물 속으로 서로 들어가 흐르고, 가늘고 향기로운 비는 땅을 적시며 바람들은 꽃을 불어 흩날리게 하였다.
이에 보리가 아름다운 풍경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우리를 너무 심하게 반기는데…. 환영식이 마치 디즈니의 만화를 보는 것 같아. 그렇지? 오빠!”
선재 동자는 꽃들이 서로 피어나는 모습에 혼이 빠져 말을 더듬었다.
“어, 어, 뭐라고 디즈니 뭐? 만화? 그게 뭐니?”
“오빠, 디즈니 만화! 디즈니 만화 몰라? 인어공주, 겨울왕국 그런 거….”
보리가 선재 동자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말했다.
“디즈니 만화? 우리 땐 그런 거 없었는데.”
선재 동자가 시무룩해 있으니 안주신이 그에게 말했다.
“잘 왔도다. 동자여, 그대가 이 땅에서 갖가지의 착한 마음을 심었을 때, 내가 그대를 위하여 나타났으니, 그대도 나를 보고자 하는가. 나는 토지를 주관하는 신, 주지신으로 내 이름은 안주라 한다.”
“거룩하신 이여, 제가 보고자 하나이다.”
선재 동자가 안주 주지신의 발 앞에 예배를 올린 후, 합장하고 말하였다. 선재 동자의 말을 듣고 발로 땅을 누르니, 수많은 보배 창고가 저절로 솟아올랐다.
보리가 그 광경을 보고 선재 동자에게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이야아! 안주 주지신도 대천신처럼 금은보화랑 보배들이 땅 위로 가득가득 쏟아지네. 저 보배들은 우리가 가져가도 되는 거야?”
선재 동자가 ‘쉿, 조용히 해’하고 말하자, 보리도 지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가 귓속말로 조용히 말하고 있잖아.”
이에 안주신이 말했다.
“이 보배 광은 그대를 따라다니는 것이다. 이것은 옛날에 네가 심은 선근 공덕의 대가이며, 그대의 복덕으로 유지되는 것이니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
보리가 그 말에 손뼉을 ‘탁’ 치며 말했다.
“우와! 우리도 이제 부자가 되었네. 하지만, 이걸 집에 가져갈 수 없으니 여기서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자.”
안주 주지신이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이제는 보리도 많은 깨달음을 얻는 것 같구나. 나도 옛날에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 수행하셨을 때 내가 땅신, 그러니까 터주신으로서 부처님을 많이 지켜드렸었지. 나는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 가족처럼 편안하게 머무르는 땅이 되어 주려고 노력했단다. 하지만 나는 부처님의 몸과 같고, 부처님의 마음을 내며, 불법을 세우는 것 등은 하지 못한다. 여기서 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면 가비라 성에 바산바연 주야신이 있으니 그에게 가서 보살도를 물으라.”
선재 동자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보리의 손을 잡고, 일심으로 잘 머무르게 하려고 애쓰는 안주신의 가르침에 깊은 감동을 받으며 작별인사를 하였다.
-2022년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