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태고 10.
살얼음이 낀 냇가에 이르러서 일양은 지게를 짊어진 채 뒤돌아서 산을 올려다봤다. 내리는 눈발 때문에 하늘과 땅이 온통 희었다. 마치 천지간(天地間)에 설산(雪山) 하나만 솟아 있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부는 대로 눈송이들이 정처 없이 떠돌았다.
일양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 정상에서 추위를 견디며 몸을 떨고 있을 옆집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쓰렸다. 머지않아서 할아버지는 숨을 거둘 것이고, 할아버지의 시신은 까마귀 떼나 승냥이 떼의 먹이가 될 것이리라. 이런 끔찍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서 일양은 머리를 흔들었다.
살얼음이 낀 이 냇가도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막힘없이 흐를 것이고 그러면 이 산야에도 신록이 돋아서 새 생명이 충만할 것이라고 마음을 달래면서 일양은 걸음을 뗐다. 잰걸음으로 냇가를 건너고 나니 마을의 집집마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올랐다. 옆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밥상머리에는 아침과 달리 할아버지는 없을 것이었다. 아버지를 산에 두고 돌아와서 저녁을 들어야 하는 옆집 아저씨의 심정을 헤아렸다. 마음속에 깊은 동굴이 생기고, 그 동굴에 상처 입은 짐승이 숨어들어서 신음하는 것만 같았다.
지게에 싣고 온 땔감을 창고에 쟁여둔 뒤 일양은 손을 씻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오래지 않아서 어머니가 부엌에서 밥상을 들고 왔다. 밥을 먹는 내내 가족 중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일양도 산에서 옆집 할아버지를 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땔감을 구하러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했는데도 일양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외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갓 지은 밥과 구수한 된장국을 보는 순간 제사음식이 떠올라서 숟가락을 들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일양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이 세상에 숨을 타고 난 모든 존재들은 언젠가 숨을 거두고 죽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지상의 존재들은 숨을 타기 전에는 어디에 속해 있었고 숨을 거둔 뒤에는 어디에 속해 있을 것인가? 해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연속적으로 떠올라 일양은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야 했다. 밤하늘에는 눈송이들만이 가득했다.
이튿날에도, 그 이튿날에도 일양은 밤이 되면 마당에 나가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폭설이 내리고 난 뒤여서인지 밤하늘에는 별들이 총총 반짝였다. 광대한 밤하늘에는 끝도 없이 펼쳐진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은하수는 별들의 바다인 동시에 별들의 하늘이자 별들의 들녘이었다.
별들은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일양은 밤하늘의 별들이 당최 독해할 수 없는 천문(天文)처럼 여겨졌다. 별들은 각기 외따로이 떠서 빛을 발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별들과 어우러져서 하나의 별자리를 만들었다. 손가락으로 별들을 이으면 무엇이든지 만들어졌다. 은하수를 담을 수 있는 물병이 되었고, 은하수에서 지느러미를 펄떡이는 물고기들이 되었고, 크고 작은 물고기들을 잡는 그물이 되었다. 그물로는 잡을 수 없는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이 되기도 했다.
다시 손가락으로 별들을 이으면 밤하늘은 날짐승들이 날아가는 허공이 되었다. 검은 까마귀가 되었고, 흰 두루미가 되었고, 넓은 날갯죽지를 펼치고 쏜살같이 날아가는 매가 되었고, 크고 작은 날짐승들을 잡는 궁수가 되었다. 활로는 잡을 수 없는 극락조가 되기도 했다.
다시 손가락으로 별들을 이으면 밤하늘은 들짐승들이 뛰노는 산야가 되었다. 살쾡이가 되고, 승냥이가 되고, 곰이 되었고, 순한 들짐승부터 사나운 들짐승까지 덫을 놓아서 잡는 수렵꾼이 되었다. 덫으로는 잡을 수 없는 해태가 되기도 했다.
일양은 밤하늘의 별들 중 하나를 올려다봤다. 밤이 되면 지상에는 수많은 집들이 불을 밝히듯이 천상에는 수많은 별들이 빛났다. 항하(恒河)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인 자신이 은하수의 조약돌만큼이나 많은 별들 중 한 별을 보고 있다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일양은 혼잣말을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지금 이 순간 너는 나를 위해서 빛나고 있고, 나는 너를 위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서 있다. 나는 여기 지상에, 너는 저기 천상에 있다. 너는 나를 만나기 위해서 아득히 먼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나도 너를 만나기 위해서 무량한 전생의 시공간을 거듭 살았는지도…….’일양은 올려다보고 있는 별이 오래전부터 만나온 친구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저 멀고도 광대한 우주의 끝은 어디인지 자못 궁금해졌다.
겨우내 일양은 이런저런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간에는 왜 신분고하가 있고, 자연에는 왜 약육강식이 있는가?
강자는 먹고 약자는 먹히는 관계가 이 세상의 법칙인가?
그렇다면 공공선(公共善)은 왜 필요한가?
이 세상은 어떻게 시작됐으며 어떻게 끝나는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선뜻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이 떠오를 때마다 일양은 하늘을 올려다봤고 하늘에는 겨울철새 떼가 안행(雁行)을 하면서 날아갔다. 그러던 중 하루는 땔감을 구하러 산에 갔다가 내친 김에 산 정상으로 향했다. 옆집 할아버지의 시신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옆집 할아버지가 묶여 있던 나무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짐작컨대 옆집 아저씨가 시신을 수습해 묻어준 모양이었다. 발길을 돌리려는데 짚신 끝에 툭 걸리는 게 있었다. 일양은 허리 숙여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주었다. 나무를 깎아서 만든 염주였다. 그러고 보니 그 염주는 옆집 할아버지가 항상 들고 다녔던 것이었다. 일양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고 코가 시큰해졌다. 염주를 보니 일양은 옆집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사문유관(四門遊觀)이 떠올렸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서른 살 무렵 궁중 밖 세상을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뒤 마부 찬타가와 함께 마차를 타고서 궁궐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부처님이 궁궐 밖에 나가서 직접 목도한 것은 인생의 4고(四苦)였다. 동문 밖에서는 흰 머리 굽은 등에 지팡이를 짚고 괴롭게 걸어가는 노인을 봤다. 이 노인의 모습을 보고서 부처님은 자신도 언젠가는 늙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문 밖에서는 숨결이 가늘어져 있는 병자(病者)를 보았다. 이 병자의 모습을 보고서 부처님은 자신도 병드는 것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서문 밖에서는 죽은 사람의 뒤를 따르며 섧게 우는 유족들을 보았다. 이 유족들의 모습을 보고서 부처님은 자신도 언젠가는 가족들을 잃을 것임을 깨달았다. 북문 밖에서는 머리카락과 수염을 짧게 자르고 법복을 입고 손에는 바릿대를 든 출가 수행자를 보았다. 이 수행자를 보고서 부처님은 삶과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출가임을 깨달았다.
사문유관의 체험을 한 뒤 부처님은 부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왕궁의 부귀영화를 벗어던지고 출가의 길을 떠났다.
옆집 할아버지가 남긴 염주를 굴리면서 산길을 내려오다 보니 일양은 겨우내 자문한 해답을 찾은 것 같았다.
옆집 할아버지는 산 정상에 날짐승, 들짐승의 먹잇감으로 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머지않아서 정토로 갈 것”이라며 기뻐했다. 가부좌를 틀고서 두 눈을 질끈 감고 아금발원원왕생[唯願慈悲哀攝受]을 되뇌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정각(正覺)을 이룬 부처님을 떠올리게 했다.
부마국 출신인 까닭에 온갖 설움을 겪어야 했던 정화 궁주는 전등사에 옥등을 시주함으로써 시름을 달랬다고 했다.
일양은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마음에 불법(佛法)의 등불을 켜고 어둠 속을 헤쳐서 지혜의 길을 찾아야 했다.
그날 밤, 일양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했다. 별들이 염주 알들과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하나의 염주 알이 모여서 108개의 염주가 되듯이 별들이 모여서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었다.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