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호(1964~)
신장개업한
자리 몇 없는
동네 평양냉면집
행여 문 닫을까
가끔 들른다
자주 가기도 어색해
걱정만 한다
내 입에 맞는 심심한 맛
당신도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우주는
언제나 간신히 열려 있다 (《세상의 모든 연애》, 파란, 2019)
음식에도 중앙 집중이 있어 도로와 철도에 따라 갈수록 맛이 평준화되어 간다. 그 지역 고유의 식재료와 솜씨, 계량화할 수 없는 저마다의 풍토로부터 나온 개성을 잃어버린 음식은 다양한 기호의 백가쟁명이 사라진 시대의 우울을 닮아 있다.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자극적인 감각들의 그늘에서 희미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냉면의 심심한 맛을 지키고자 하는 시인의 노고는 그래서 겨우 존재하는 것들의 안위에 대한 염려와 근심을 넘어 소수자로서의 삶에 대한 옹호로 나아간다. 내놓고 활짝 개방된 것이 아니라 비밀을 감춘 채 ‘언제나 간신히 열려 있는’ 것들로부터 매혹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짠 맛 중의 어느 하나를 선택해 나머지를 소외시키지 않는 '심심'은 그 담백한 기질로 모든 맛을 공존케 한다.
-시인ㆍ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