㉚ 세상을 자유자재로 보살피는 관자재 보살

 

선재 동자와 보리가 보타락가산 위에 올라가 관자재 보살을 찾으니 산 서쪽 언덕에 그 분이 있는 것이 보였다. 서쪽 골짜기에는 시냇물이 굽이쳐 흐르고, 곳곳에 연못이 있었으며 수목이 우거지고, 부드러운 풀들은 향기롭게 땅에 깔려 있었다.
관자재 보살은 금강석 바위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계셨다. 그리고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친견하기 위해 둘러싸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선재 동자를 보고 관자재 보살이 말하였다.
“잘 왔구나, 선재 동자여. 그대는 자비심으로 중생을 널리 거두어 주고, 오로지 부처님의 묘한 법을 구하러 다니는구나. 그대는 무상 보리심을 내었으니, 너에게 보살도를 일러 주겠다.”
선재 동자와 보리는 너무 기뻐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정말 거룩하시고, 거룩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중생을 구호하시니 정말 훌륭하십니다. 제게도 보살도를 일러 주소서.”
관자재 보살이 은은한 미소를 띠며 그들에게 말했다.
“선남자여! 나는 사람들을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머물렀으므로, 모든 여래의 처소에 항상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앞에 항상 나타나 보시하는 마음으로 거두어 주기도 하고, 사랑하는 말을 하기도 하고, 원하는 대로 도와주고 중생을 거두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를 관세음 보살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항상 모든 사람이 나를 찾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기 때문이다.”
그러자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이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한 청년이 일어나 말했다.
“저는 신라국에서 관세음 보살님을 친견하러 왔는데, 태어날 적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저를 부모님이 키울 수 없게 되자, 분황사 일주문 앞에 저를 버렸습니다. 포대기에는 ‘간샘보살’ 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해요. 절에 밥을 해주던 공양주 보살님이 저를 발견하고 아들처럼 업어 키웠지요. 좀 더 자라서 절 마당에 놀고 있으면 동네 아이들이 저를 놀려댔어요. ‘야 간샘! 눈먼 봉사! 니가 무슨 보살이냐?’ 하고 돌을 던지곤 했지요. 그럴 때마다 놀라서 우는 저를 꼭 안아 주시며 공양주 보살님이 말했어요.”
갑자기 보리가 궁금해졌는지 저도 모르게 소년 앞으로 다가갔다. 소년이 보리를 쳐다보는 눈빛은 너무나 순수해서 맑고 청청하게 빛났다.
“내 아들, 간샘아! 걱정 하지 말아라. 부처님의 인연으로 너를 키우면서 눈이 없어도 잘 놀고 씩씩해서 참으로 기뻤고 즐거웠었지. 나는 매일 기도했단다. 그러니 너도 네 가슴에 부처님을 모시고 새기면서 노래하듯 기도하렴. 네 마음에는 관세음보살이 항상 자리 잡고 계시기 때문이야, 그래서 네 이름도 간샘이잖아. 호호호….”
청년은 어머니 말씀을 흉내 내면서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리고 말했다.
“그 후로 저는 밤마다 잠들 때 까지 노래 부르듯 기도했지요.”
보리가 급히 물었다.
“뭐라고 노래했어요?”
소년은 두 팔을 벌리고 춤추듯 노래했다.
“즈믄(천) 손, 즈믄(천) 눈을 가지고 계신 관세음보살님. 당신은 눈이 천 개인데 저는 한 개도 없습니다. 눈이 한 개도 없는 저를 불쌍하게 여기시고 제발 눈 하나만 주세요. 관세음 보살님, 아아 관음 보살님! 저를 키워 주신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게 도와주세요.”
조용히 듣고 있던 보리가 선재 동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오빠, 듣고 보니 굉장히 슬픈 노래네. 기도 공덕으로 눈은 떴을까? 근데 저 분은 관자재 보살님을 관세음 보살이라고 했다가, 관음 보살이라고 했다가, 자기 마음대로 부르네. 어느 게 맞는 거야?”
선재 동자가 보리의 귀에다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 바보야, 눈을 떴으니까 여기 왔지. 그리고 부르는 이름은 다 같은 말이야. 관자재 보살님은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이 보이는 대로, 부르기 편한 대로 불러.”
그러자 보리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 이름이 여러 개나 돼? 어떻게?”
관자재보살이 깜짝 놀라는 보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찾거나 생각을 하면, 잘 듣고 살펴서 중생들의 두려움과 공포를 면하게 해주고 걱정 근심을 덜어주는 데, 여러 이름으로 변하여 나타난단다.”
보리가 물었다.
“어떤 이름으로요?”
“천수경에 나오지 않니? 천수 보살, 여의륜 보살, 대륜 보살, 정취 보살, 만월 보살, 수월 보살, 군다리 보살, 십일면 보살….”
선재 동자가 보리에게 이름을 설명해 주자 보리가 다시 물었다.
“오빠, 다른 이름은 나중에 설명해 주고 지금 궁금한 것은 왜 군다리 보살이라고 하는 거야?”
“으응, 군다리 보살님은 여덟 개의 팔을 가지고 감로의 약병을 들고, 마귀들을 항복시켜 모든 병과 액난을 소멸시켜주시는 관세음 보살님의 화신이야.”
그때, 곁에서 얌전히 염주를 돌리고 있던 할머니가 말했다.
“맞아요. 관세음 보살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지요. 제가 친구들과 단체로 카브리 설산에 놀러 갔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들 먹고 떠드느라 정신없을 때, 저는 노는 게 싫어서 조용히 기도했지요. 염주를 돌리며 ‘관세음 보살, 관세음 보살’ 염송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관세음 보살님이 저를 안아 넓은 바위에 내려놓으시는 거예요. 정신 차려보니 버스가 설산에서 굴러 절벽 아래로 떨어졌는데, 저만 무사한 겁니다. 정말 관음 보살님의 원력과 가피가 없었으면 저도 함께 죽었을 거예요.”

삽화=서연진 화백.
삽화=서연진 화백.

 

“우와! 죽었을 거라고?”
그 소리에 보리가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고 입을 틀어막았다.
관자재 보살이 말했다.
“보리야, 내가 저 청년의 눈을 뜨게 해주었지. 밤마다 울면서 기도 하는 노래 소리가 너무 간절해서 가슴이 아팠단다. 또 노래 가락처럼 천수경에 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손으로 세상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진언이기 때문에 너도 열심히 독송하여라. 이 다라니는 너무나 고귀해서 그 어떤 말로도 번역이 안 돼,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산스크리트어’로 염송하고 있지. 그래서 중국에서는 ‘천수 천안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라고 한단다.”
보리가 두 손을 합장하며 물었다.
“광대원만 무애대비심은 어떤 뜻일까요?”
그러자 선재 동자가 대답했다.
“그 뜻은 보살님께서 세우신 원력이 한없이 크고, 자비심과 공덕이 끝없이 넓고, 두루두루 원만하여, 우리 모두의 고통과 걱정을 자유자재한 신력으로 구해주시는 것을 말해.”
“우와아! 그러면 노랫말에 있는 하늘같이 높고 바다같이 넓으신 어머니 은혜처럼? 그러면 관세음 보살님도 우리 엄마네….”
보리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나라가 어렵거나 힘들 때, 그리고 병들어 아프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아이가 엄마를 찾듯 부르는 이름이 ‘관세음보살님’이야.”
그 속에서 젊은 아주머니가 일어나 말했다.
“정말, 그 말이 딱 맞아요. 어느 날 밤, 저는 밤길 운전을 할 줄 몰라 쩔쩔 매며, 간신히 남편을 태우고 집에 오는 데, 지나가는 차들이 너무 쌩쌩 달리지 뭡니까. 한밤중이라 차들이 속력을 내며 달리는 걸 보니, 손발이 덜덜 떨리는 거예요. 너무 무서워서 저도 모르게 ‘관세음 보살님, 관세음 보살님, 도와주세요’ 하면서 계속 염송하며 운전하는데, 갑자기 옆 차가 '탁' 치고 가서 핸들을 팍 꺾다가 가로수를 들이받고 의식을 잃었지요. 얼마나 지났을까? 순경 아저씨가 저를 깨웠어요.”
보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어머나!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순경이 물어보더라고요. 어젯밤에 두 분이 차에서 부부 싸움을 크게 하셨냐고요. 제가 옆 차가 치고 나가서 피하려다 나무에 부딪혔다고 하니까, 정말 운 좋게 하늘이 도왔다고 하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누가 도와줬는지 알았습니다. 바로 관세음 보살님이셨죠.”
아까 바위에서 살아남았다는 할머니가 물었다.
“그럼, 그 댁 남편은 어찌 됐수? 죽었수? 살았수?”“아이고 죽긴요. 차는 박살이 났는데, 다친 데 없이 멀쩡하게 살았지요. 단지 기절을 했을 뿐이에요.”
그러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손뼉을 쳤다.
“정말 관자재 보살님은 대단하셔!”
“아니야, 관세음 보살님!”
“줄여서 말하면 관음 보살님.”
황금빛 광명의 관자재 보살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말했다.
“누구든지 모든 중생들이 정말 간절하게 내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면, 저는 언제든지 달려가서 그들을 구원합니다. 대신 간절한 만큼 꼭 믿고 따라야 하지요. 글을 몰라 ‘간샘보살’ 이라든가 ‘간재이보살’이라고 해도 다 알아듣고 구해줍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저를 의지처로 삼고 기도 하세요! 나무 관세음 보살!”
그 말을 듣고 모두가 환희심에 불타 올라 합장하니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었다. 보리만 팔짝팔짝 뛰면서 노래를 불렀다.
“이 말, 어디서 많이 듣던 건데….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짜 짱가! 엄청난 기운이 틀림없이 틀림없이 생겨난다. 짱가 짱가 우리들의 짜앙가~! 엥, 근데 여기서는 관세음 보살님이잖아.”
선재 동자가 놀라서 후다닥 보리의 뒷덜미 잡아채자, 허공에서 정취 보살이 홀연히 날아와 관자재 보살 뒤에 섰다. 관자재보살이 선재 동자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 정취보살이 여기로 날아오는 것을 보았느냐?”
“보았나이다.”
선재 동자가 답했다.
“그대는 그에게 가서 보살도를 물어라.”

-2022년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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