㉙ 전단좌 부처님께 늘 공양하는 비슬지라 거사
선재 동자와 보리가 서로 끌어안고 웃으며 ‘불설소재길상다라니’ 진언을 매일 하자고 맹세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바수밀다가 말했다.
“둘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나는 이제 너희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야. 여기서 저 남쪽 선도성에 계신 비슬지라 거사님한테 가서 보살의 지혜 방편을 성취하는 것과 공덕행에 관해 물어보아라.”
그에 보리가 깜짝 놀라 오빠 품에서 나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어머나, 벌써 가시게요? 저는 바수밀다 선생님과 며칠 동안 같이 있다 보니 헤어지기가 싫은데요. 아마 그새 정이 들었나 봐요. 우리 선도성에 함께 가요, 네?”
선재 동자가 보리를 쳐다보며 슬슬 웃었다.
“아이고, 이젠 떼도 쓸 줄 알고… 많이 컸네. 하지만 선생님은 가셔야 해. 우리랑 계속 놀 수는 없어.”
바수밀다가 보리의 손을 잡으며 같이 웃었다.
“보리는 어린 나이에 못다남이 죽는 모습을 보았으니 큰 충격을 받았을 거야. 그래도 오빠가 있어 꿋꿋이 잘 버티고 슬픔을 이겨 냈으니 참으로 기특한 아이지. 나야 어차피 사람들과 같이 여행하며 안내하는 가이드가 직업이니까 따라가 줄게. 비슬지라 거사님은 항상 전단좌 부처님 탑에 예불하고 공양하고 계시니까….”
보리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 엥! 전단좌 부처님요? 그분은 또 누구실까요?”
선재 동자와 바수밀다가 서로 마주 보며 하하하 웃었다.
“정말 귀여운 아이로구나. 질문도 아주 예쁘게 잘하네. 전단좌 부처님은 전단좌 여래라고도 하는데 전단은 향나무 이름이야. 향의 좋은 냄새 때문에 독사에게 물렸을 때 독을 빼주고, 냄새를 맡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심한 괴로움과 걱정 근심을 덜어주는 나무야. 또 그것으로 의자를 만들면 전단좌가 되는 거지. 하지만 부처님이 앉아 계시지는 않아. 비슬지라 거사님은 매일 거기에 앉아서 공양하고 기도하다가 삼매에 들어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었어. 정말 대단하신 분이야. 자, 이제 선도성으로 가 보자.”
선도성의 비슬지라 거사는 집에서 그들을 맞았다. 원래 비슬지라는 편안하게 포용하고, 반야바라밀을 중심으로 지혜와 자비를 성취하며 많은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선재 동자 일행이 그에게 예를 갖추고 절을 올리자 비슬지라 거사가 말했다.
“선재야,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므로 여래가 이미 반열반에 들었다거나, 지금 열반에 들었다거나, 앞으로 열반에 들리라는 생각을 하지 아니하노라. 나는 시방의 모든 세계 부처님이 결국 반열반에 드는 이가 없는 줄을 알며 중생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보이는 방편은 제외 한단다.”
보리가 물었다.
“반열반이 뭐예요?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비슬거사가 보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반열반이라는 것은 ‘빠리 니르바나’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으로 빠리라는 것은 완전하다는 뜻이지, 반열반이라는 것은 ‘완전한 열반’을 말해. 부처님께서 성도 하셨을 때 열반을 얻으셨지만 그것은 일단 분별심, 마음이 쉰 것이고 아직 몸이 남아 있었어. 몸이 남아 있으니까. 늙고 병들고 죽음이 아직 남아 있었는데, 이 몸마저 소멸한 경지! 그것이 바로 빠리 니르바나, 반열반이라고 하는 것이야. 그래서 몸과 마음이 완전히 소멸해서 법의 진리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반열반이지. 하지만 법신불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보신불과 화신불로서 다시 몸과 마음으로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오시는데 완전히 법신불 자리에만 있으면 보지도 듣지도 못하기 때문에 제도가 안 되거든. 그래서 중생들에게 보고 들을 수 있는 몸으로 나툰다고 하는 거야. 일부러 보여주는 것을 ‘나툰다.’ 이렇게 표현하지. 계속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투시는 걸 ‘불종무진삼매’ 라고 해.”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선재 동자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보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몸을 흔들었다. 바수밀다가 흔들고 있는 보리를 말없이 안아 주었다.
“아이고, 어려워. 또 불종, 무진, 삼매는 뭐야? 진짜로 선지식님들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야. 엄청 유식하네. 머리가 딱딱 아프다!.”
비슬지라 거사가 같이 몸을 흔들며 말했다.
“불종무진삼매란 부처님의 ‘종자’ 즉 씨앗에 다함이 없다는 거지. 이것은 부처님들이 계속 이 세상에 나타나신다는 소리야. 지금은 석가모니불이 제도하는 시기이지만 그 시기가 지나가면 또 다른 부처님이 나타나시고…. 이렇게 해서 모든 과거 불부터 진짜 모든 부처님을 다 차례차례 볼 수 있는 그런 삼매를 내가 얻었다. 그래서 이것을 불종무진삼매라고 하는 것이다.”
선재 동자가 공손히 합장하고 비슬지라 거사에게 물었다.
“거룩하신 이여, 그 삼매의 경계는 어떠하나이까?”
비슬지라 거사가 대답했다.
“내가 전단좌 여래의 탑문을 열고 삼매에 들어보니 먼저 과거 칠불을 보게 되었다.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불, 가섭불, 석가모니불이다. 또 잠깐 동안에 백 부처님을 친견하고, 천억, 백 천억 부처님등 말할 수 없는 세계의 미진수 부처님을 다 친견하였다. 또한 그 부처님들이 처음으로 마음을 내고, 선한 마음을 심고, 뛰어난 신통을 얻어 큰 원을 성취함과 마군을 항복 받고 바라밀다를 구족함과 보살의 지위에 들어감과 청정한 법의 지혜를 얻음과 마군들을 항복 받음과 정등각을 이룸과 국토가 청정함과 대중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보리가 말했다.
“도대체 무슨 말인 지,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천억, 백 천억 부처님이라니 숫자는 굉장하다. 비슬지라 거사님은 정말 대단하시네. 그 많은 것을 언제 다 보았대! 그지 오빠?”
“보리! 말 조심해. 거사님한테 공손해야지.”
선재 동자가 야단을 치자, 바수밀다가 말했다.
“아이고, 요즘 아이들 말버릇이 다 그렇지, 비슬지라 거사님도 이해하실거야. 말씀이 아이들이 이해하기는 좀 어렵잖아.”
보리가 오빠를 피해 바수밀다 뒤로 숨으며 기어들어 가는 말로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거사님. 제가 버릇없게 말해서요.”
비슬지라 거사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모든 것에 옳고 그름도 없고, 있고 없음이 없고, 오고 감도 없으니, 일체중생의 분별심은 여래의 지혜 종자에는 생멸하는 모양이 없음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나는 매일 전단좌 탑을 열고 예배 공양할 때, 좌상에 형상을 모셔두지 않은 까닭은 부처님을 모시지 않아도 마음속을 보면서 부처님이 반 열반에 들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은 탓이다.”
선재 동자가 마음으로 한없는 존경심을 느끼며 비슬지라 거사에게 말했다.
“불종무진삼매를 얻으신 것은 정말 존경하고 또 존경하옵니다. 저도 이제 아상을 밖으로 내지 않고 마음에 담아서 기도하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를 듣고 거사가 칭찬하였다.
“역시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심을 깨달은 선남자는 틀리는구나. 깨달으면 어렵지 않은데 깨닫지 못하면 아주 어렵지. 흐흐흐”
비슬지라 거사가 보리를 쳐다보며 웃는데 보리가 몸을 비튼다.
“에에…. 저 보고 하신 말씀인가요? 저도 이제 열심히 기도해보겠습니다. 하지만 화엄경 약찬게는 잘 외우는데, 헹!”
그에 바수밀다가 보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이고! 그 나이에 화엄경 약찬게를 다 외우고…. 우리 보리도 대단해. 그렇지요? 거사님.”
바수밀다가 보리를 칭찬해 주자 어깨가 으쓱해진 보리가 맞지? 하는 표정으로 오빠를 쳐다본다.
선재 동자가 웃으며 말했다.
“보리도 삼 년 동안 가족을 위해서 화엄경 약찬게를 매일 외웠대요. 참 기특한 아이예요.”
비슬지라 거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재 동자에게 말했다.
“나는 열반에 들지 않는 해탈을 얻었지만, 보살들의 한 지혜로 법계 중생들을 깨우치는 공덕행을 내가 어떻게 알고 말하겠는가. 여기서 남쪽,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보타락가산에 관자재 보살이 있으니, 그에게 보살도를 물어보아라.”
선재 일행은 절을하고 여러 번 돌며, 은근히 우러러보면서 작별 인사를 하고 선도성을 떠났다.
-2022년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
